“시간강사의 계약기간이 늘어나면, 나태해져서 강의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교육투쟁에서 시간강사․미화노조 지지 항목을 삭제하자는 취지로,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학생회장이 내뱉은 말이다. 단 한 사람의 말이긴 하다. 하지만 이 말은 생각보다 많은 대학생들과 20대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실제로 학내 구성원들의 시위나 투쟁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고려대만 해도, 지난 달 김영곤 강사가 본관 앞에서 벌인 텐트 시위를 일부 학생들이 비하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작년 봄 대학가를 달궜던 청소․경비노동자의 파업 당시에도 다수의 학생들이 파업을 부정하는 모습을 대학 커뮤니티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언론과 사회는 이러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비난한다. 개념도 없고 이기적인 대학생들로 규정짓고 몰아가면 그만이다. 물론 개념 없는 것 맞다. 그러나 그런 사고들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젊은이들을 길러낸 것은 누구인가. 노동 시장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정부는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되고 최저 임금 제도도 오히려 노동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거짓말’을 교육하는 학교, 주류 경제학의 주류 담론들을 설파하는 주류 언론, 그리고 반노동적이고 친경제적인 담론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회. 이런 사회 속에서 시간강사와 학교 측의 경제적 계약 관계는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하게 두자는 의견은 사실 학교가 가르친 ‘모범 답안’이다.

젊은이들은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다. 연대 속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해 본 체험을 해 본 적은 더더욱 없다. 초중고교에서 가르친 것은 연대가 아닌 경쟁이었고, 학교는 뭉쳐서 무언가를 바꿔보려는 자연스러운 시도를 하는 학생들이 보이는 족족 싹을 잘라냈다. 심지어 학생이 주인이 되어야 할 학교의 문제에도 학생들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빼앗긴 권리를 학생들에게 찾아주자는 ‘학생인권조례’가 이렇게나 큰 반대에 부딪히는 걸 보면, 이 사회와 이 사회의 교육이 가진 한계가 드러난다. 경쟁하는 방법을 열심히 익히고 체득하며 자란 오늘날의 20대. 20대가 내 일 아닌 것에 나 몰라라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시간강사․미화노조와의 연대를 철회한 고려대 학생회의 결정에 대한 비판 대자보를 쓰고, 왜 사회적 약자들 간의 연대가 중요한지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는 20대들이 있다는 사실이 차라리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다.

20대들이 잘 했다는 것 아니다. 20대들의 잘못과 허물들을 ‘쉴드’ 쳐 줄 생각도 없다. 이유가 어찌됐든 욕먹을 짓을 했으면 욕을 먹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개인의 행동을 비난하고, ‘20대, 대학생, 고대생’ 같은 식으로 집단을 싸잡아 폄하하는 행동들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인식은 ‘사회를 위해 몸을 던져 투쟁하던’ 486 등 어른들이 원하는 수준과 괴리가 크다. 겉으로는 연대를 말하면서도 심정적으로는 완전히 연대를 믿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동안 그렇게 ‘사회화’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대는 이런 일들을 겪으며 변하고, 단단해지고, 확고해진다.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학생회장을 두고 논쟁하면서,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목격하면서 서서히 말이다. 진짜 20대가 변하길 원한다면, 비난이 아닌 ‘토론’으로 담론의 형태를 이끌어가야 한다. 그게 어른들, 특히 언론들이 20대를 위해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