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대학가는 분주했다. 입학식, 신입생환영회, 개강파티 등 여러 가지 행사와 각 종모임이 많았기 때문이다. 식당과 커피전문점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저녁이 되어도 사정은 마찬가지, 식당가는 물론 주점과 주변의 공원까지 모두 대학생들 차지였다. 긴 겨울방학 동안 조용하던 대학가가 활기를 뛰기 시작한 것이다.

개학을 하면 모든 상가가 바쁜 하루를 보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학교 근처 ‘제본소’였다. 학생들이 수업에 필요한 전공서적이며 교양서적을 ‘제본’해서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수업시간에는 책으로 된 교재가 아닌 제본으로 된 교재가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서적을 ‘짜집기’한 제본 교재를 수업 교재로 사용하는 교수들도 있었다. 학기 초, 제본소는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저적권법에 의해 책 한권 전체를 ‘제본’ 혹은 ‘복사’하는 것은 불법이다. 저작권과 관련된 조항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대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제본의 경우 ‘불법 복사’에 해당한다. 

불법 복사(illegal copy)란, 저작권을 포기한 프로그램 이외의 프로그램 코드는 서적이나 영화와 같이 그 저작권이 보호되고 있다. 이러한 저작권에 반하는 불법으로 복사된 프로그램 및 소프트웨어를 불법 복제물 또는 불법 복사물이라고 한다. (출처: 컴퓨터인터넷IT용어대사전, 전산용어사전편찬위원회 엮음, 2011, 일진사)

대학가에 위치한 제본집의 모습

                                                                      


무단 복제를 하는 대학생들의 대 다수는 ‘경제적 압박’이 심해서 제본 교재를 이용한다고 했다. 대구의 K대학을 다니는 김모씨(25)는 “난 공대생인데, 전공서적이 비싼 책은 10만원이 넘는다. 알바를 하더라도 재값 주고 교재를 구매하는 것이 힘들다 ” 고 말했다.같은 대학에 다니는 이모씨(23) 역시 “전공서적은 책을 사도 크게 아깝지는 않은데, 타전공이나 교양 수업까지 책을 사는 것은 돈이 너무 아깝다.”라고 말하며 불만을 표출했다. 평균적인 전공서적의 가격은 3만 원. 한 학기에 5과목을 듣는 다고 가정하면 책값은 15만원이 된다. 반면 한 권에 1만 5천 원 정도 하는 제본 교재를 구입할 경우 가격은 7만 5천 원으로 거의 절반 수준이다. 지갑이 얇은 대학생들에게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인 것이다.

당국은 이와 같은 대학가 불법 복사와 제본행위를 ‘저작권 침해’로 간주하고 단속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제본소와 학생들은 군사작전을 연상시키는 작전으로 단속망을 피해가고 있다. 우선, 학생들은 제본소에 책을 가져간다. 그러면 제본소에서는 이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컴퓨터 파일을 검색해 동일한 책이 있는지 검색을 한다. (만약 없을 경우 학생이 들고 온 책을 컴퓨터에 스캔해서 저장을 한다. 책을 숨기는 것은 어렵지만 파일은 숨기기 쉽고 유사시 삭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부탁 받은 책이 컴퓨터에 있는 것을 확인 한 후, 학생의 연락처를 받은 뒤 가지고온 책과 함께 돌려보낸다. 그런 다음, 그날 저녁이나 다음날 아침에 제본소는 학생에게 연락을 한다. (단속반이 지나간 뒤 학생들을 부르는 것이다.) 제본소는 큰 검은색 비닐(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에 들어있는 제본 교재를 학생에게 주는 것으로 작전은 종료된다.


대학생들이 제본을 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지적재산권을 아무 범죄 의식 없이 무단으로 훔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 전공서적이 한 두 권도 아니고, 이를 4년 동안 매 학기 구입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다.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경기 침체로 당장의 생활도 어려운 학생들에게 비싼 책값은 또 다른 경제적 부담인 것이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대학생들에게 무조건적인 단속보다, 이들을 위한 지원 정책이 선행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