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핵안보 정상회의 첫날인 26일, 캠퍼스는 분주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외대를,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가 연세대를,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가 이화여대를 방문해 각각 강연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한미동맹과 남북관계, 핵개발 등에 대한 연설은 25분간 진행됐다. 잉락 총리의 강연 주제는 '여성 리더십, 태국 총리의 비전'이었다. 잉락 총리는 여성 총리가 되기 위해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태국의 여권 신장 노력에 대해 연설했다.

출처 연합뉴스


잉락 총리 방문 행사는 애초 40분으로 예정됐지만 그의 연설은 15분도 채 안돼 끝이 났다. 잉락 총리의 연설을 듣기 위해 행사를 참관했던 변주연씨는 "13분의 연설에는 매끄럽지 못한 통역도 포함돼있었다"며 "총리의 말만 따지면 그보다 더 짧았을것이다"라고 허탈해했다. 연설이 끝난 후에는 질문도 일절 받지 않고 퇴장시켰다고 했다. "한국의 미래 여성 리더를 만나고 싶다"는 잉락 총리의 의사에 따라 성사된 행사라고는 믿기 힘든 진행이었다. "끈기있게 노력하고 견디면 기회가 다가온다"는 당부는 식상하기 그지없었다. 학생들과의 어떠한 상호작용도 없는, 의례적인 보여주기용 행사에 불과했다. 

이번 강연들은 2009년 힐러리 미 국무부 장관의 이화여대 방문을 떠오르게 한다. 그의 강연은 '여성'과 '대학'에 집중돼있었다. 한미관계와 남북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빼놓지 않았다. 학생들이 힐러리에게 궁금했던 것은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삶이었다. 일과 가정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솔직하게 답했다. 당시의 연설과 비교하면 오바마와 잉락의 연설에는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외대로서는 오바마 방문이 큰 영광으로 남을 수 있겠지만 그의 연설에 어떤 특별함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잉락의 연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출처 연합뉴스


다시 말해 각국 정상들의 잇따른 대학 방문에 과연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외대는 보안 상의 이유로 오바마 방문과는 관련이 없는 용인 캠퍼스를 포함해 1교시부터 4교시까지의 모든 수업을 휴강했다고 한다. 수업도 듣지 못하고 오바마를 만나기 위해 모인 대학생들이 단순한 방청객으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연설이 끝나고 어떠한 깨달음 없이 "뿌듯했다", "(오바마가) 한국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 좋았다"고만 한다면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