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압박감에 대한 고함20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깎아지른 듯 높은 코와 커다란 눈 등 균일화된 '선망의 미모'를 지녀야만 할 것 같은 외모에 대한 압박이 그 첫 주자였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잘 나가는 주류에 속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주류(마시는 주류가 아니라는 것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에 대한 압박, 요즘 20대 대부분이 짊어지고 가는 제일 큰 짐인 취업에 대한 압박, 나만은 특별한 괴짜이고 싶어하는 차별화에 대한 압박까지 섬세한 시선으로 훑어 내려갔다. 왠지 마지막에 나와야 제 맛일 듯한(앗 그런데 정말로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이번 기사의 주제는 바로 '마감에 대한 압박'이다. 마감은 그저 두 글자로 된 가벼운 글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마감은 엄청난 무게와 압박을 선사하는 고달픈 글자이기 때문이다.

 

(※ 여기서는 마감의 기준을 대학생들의 과제 마감 수준으로 정의하기로 한다) 


 이 그림을 아는가 ? 이것은 대학생 능률 그래프다. 처음 친구 싸이에서 그걸 보았을 때 나는 '오호 통재라'를 마음속에서 외쳤다. 어쩜 이렇게 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아 냈는지! 두 축과 곡선 하나로 된 매우 간단한 구조였지만, 그 단순한 그래프에서 진리를 얻은 것이다. 사설을 다 접어두고 핵심만 말하자면 결국 마감 시간에 가까워올수록 일의 효율은 급격하게 높아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의 효율은 다른 말로도 바꿀 수 있다. 잠재력이라든지 초능력(?)이라든지. 물론 모든 대학생들이 다 이 그래프의 결과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조금씩 일을 해 두는 꼼꼼하고 성실한 이들과는 거리가 먼 얘기일 테다. 대체 왜 마감 기한이 코 앞까지 들이닥쳤을 때가 되어야만 그제야 일을 시작하는 것일까?

 
 어릴 적에는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았던 마감이란 말이 가슴에 와닿기 시작하는 때는 아마도 대학교 시절부터가 아닐까. 과제 제출 기한이 중고등학교 때도 있었지만 그 꼬꼬마였던 시절에는 이렇게까지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았으니 마감에 대한 압박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게다가 그 무시무시한 '수행평가'에 반영된다는 말 한 마디가 엄포가 되어 가슴에 머릿속에 박혔으니 제 때 숙제를 해 가지 않는다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빡빡한 6년 간(적어도 필자가 초등학생일 때에는 지금처럼 일제고사 같은 걸 보며 어린애 어깨를 처지게 하는 일을 정부에서 주도하진 않았다. 그러니 중학교 입학 후부터~)의 교육기간을 거쳐 대학에 입학하니 새 세상이 열렸다. TV 드라마 속에 나올 법한 화창한 잔디밭에서 까르르 웃는 싱그러운 신입생의 판타스틱한 대학생활까지는 못 되더라도, 감당키 어려운 자유를 선물받았기 때문이다.  안 해 온다고 때리기를 하나 다그치고 채근하기를 하나, 그저 학점에만 상당한 타격이 가해질 뿐 나의 몸과 정신은 평온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여기까지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아버리면 안 된다. 우리는 단군 이래 최고의 평균스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늘의 별 따기나 냉장고 안에 코끼리 집어넣기보다 어려운 취업에 도전하고 또 도전해야 하는 '사명'을 띠고 태어난 이들인 까닭이다. 학점관리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선택이 아닌 필수 행동강령이 되고, 따라서 우리는 마감 기한에 딱딱 맞춰 내는 모범생으로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람들은 자기 정신상태나 행동양식을 쉽게 바꾸려고 하지 않는 고집까지 갖고 있다. 준비성 따윈 이미 개나 줘 버린 지 오래고 마감 기한을 그나마 알고나 있으면 다행인, '바빠죽는 시크한 도시여자/남자'인 요즘의 20대에게 '미리 끝내기'는 이미 몇 광년 쯤의 거리를 두고 있는 말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짧은 시간을 최대한 이용해 서둘러 일을 마쳐야 해서, 역량부족이라는 한계까지 느끼게 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마감에 대한 이런 압박감을 그대로 둔 채 살아갈 수는 없다. 문제에는 분명 원인도 있고 동시에 그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존재한다. 왜 우리는 마감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는가? 앞에서 말한대로 역시나 다들 바쁘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도시여자/남자이기 때문일까?

 
 1. 진짜로 바쁘기 때문이다
 - 이건 제일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가장 갸웃하게 되는 말이다. 대학생이 아무리 바쁘다고 하더라도 학업 외 일을 1순위로 두는 것은 어불성설 아닐까? 이는 다시 말하면 우선순위를 잘못 설정했다는 얘기가 된다. 분명 가장 먼저 해치워야 할 일이 있는데도 굳이 그 일을 미루었거나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2. 벼락치기가 능률면에서는 최고이기 때문이다
 -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 경우, 기존의 경험으로 충분히 마감에 대한 압박을 느꼈으면서도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 이른다. 벼락치기를 하면 좀 빠듯하긴 하지만 그만큼 엄청난 잠재력을 바탕으로 썩 준수한 결과를 낸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넉넉하게 여유를 갖고 일을 하나 짧은 시간 온종일 하나 똑같다고 생각하기에, 이미 몸으로나 정신으로나 '시간부족'의 압박을 마구 느끼면서 계속 같은 방법을 쓴다.

 3. 고칠 수 없는 습관이기 때문이다
 - 앞서 나온 2번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이 경우 상황이 더 심각하다. 아예 자기 태도를 바꾸려는 노력을 안 하는 게 가장 핵심적인 문제다. '내가 뭐 그렇지' 이런 식으로 자기 비난을 하면서 단 하루 남기고, 혹은 몇 시간 앞두고 그제서야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습관이 괜히 습관이 아니긴 하나, 인간의 강인한 의지로 고칠 수 없는 습관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먼저 다루어진 다른 압박들에 비해 이 압박은 굉장히 발전 가능성이 높다. 가장 먼저 고쳐야 할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개인적인 노력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며 따라서 스스로 압박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 미리 앞일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 두 가지만이 마감 압박을 잠재울 수 있는 길이다. 괜히 웹서핑하면서 새벽시간을 버리지 말고 과제부터 훑고 끝내려는 고지식함(!)을 보이자. 마시멜로 이야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조금 더 참을성을 갖자. 하기 싫어 던져두고 싶어도 미리 과제를 차근차근 해 두면 한꺼번에 몰려올 마감의 압박에 의연히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제일 늦게 마감을 마친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한결 같은 성실함과 효율적인 시간관리가 주는 이득은 매우 크다. 꾸준히 조금씩 움직이는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