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2학번 새내기들이 입학한지도 한 달이 지났다. 새내기들은 그동안 신입생환영회, 엠티, 개강총회 등등 많은 과행사들로 정신없이 한 달을 보냈을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이미 몇 년 전에 겪은 이들이 있다. 바로 고학번들이다. 취업이 어려워짐에 따라 휴학이 자연스런 현상이 되면서 적게는 08학번부터 수많은 고학번들이 새내기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 시점에서 고학번들은 한번쯤 과생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다 늙어서 과생활이 웬 말

“1학년 때는 ‘선배들이 우리랑 놀아 주는구나’ 싶어서 그 선배들이 좋고 재밌었는데 2학년이 되니까 ‘후배들이랑 놀아주려고 부른 게 아니라 자기들이 심심해서 부른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선배들이 귀찮을 때도 있고 (할 일이 없나 싶어서)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이제 2학년이 된 김지연(가명. 21)씨의 말이다. 김씨의 말처럼 고학번들이 과생활에 열심히 참여하면 ‘좋은 선배’보다 ‘한심한 선배’라는 오명을 얻기 마련이다. 후배들의 이런 시선을 선배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들도 1, 2학년 때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이 고학번들이 과생활을 기피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 고학번이 과생활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08학번인 정송이(24)씨는 이에 대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답했다. “1,2학년 때는 활동범위가 과에 한정돼 있었다면, 고학번으로 갈수록 대외활동이나 동아리에 치중하면서 외부로 시선을 돌리게 됐다. 또 학년이 올라가면 전공점수는 이미 다 채워서 전공 수업도 들을 일이 없다보니 자연스레 과와 멀어지게 됐다”고 말한 그녀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며 대답을 덧붙였다.

“솔직히 한 학번 선배도 어려운데 4학번씩 차이 나는 선배들이 후배들 노는 데 끼이면 얼마나 어렵겠나. 그리고 학기 초에 과 행사 다 참여해서 여기저기 번호 주고 밥 사주고 해봤자 그때뿐이고 2학기만 되도 연락 안하고 인사 안하는 후배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일을 몇 번 겪다보니 실망이 컸다”는 그녀는 후배들 시선도 신경 쓰이지만 본인 스스로도 과생활에 참여할 의지가 없다고 했다.

▲ tvn 롤러코스터에 등장한 고학번의 이미지


고학번 과생활은 서로를 위해 좋은 일

그러나 이와 반대로 고학번임에도 불구하고 과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본인을 위해서도, 과를 위해서도 과생활이 도움이 될 것이라 말했다. 올해 과회장이 된 용석민 씨(24)는 과생활을 하는 이유에 대해 “개인적으로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컸다. 그리고 과를 잘 운영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서 과회장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1학년 때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참여한 거라 의욕이 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 능동적으로 과생활을 한다”며 오히려 고학번이 된 지금이 더 즐겁다고 했다.

서울시립대에 재학 중인 이한솔 씨(24)는 조금 특별하게 과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과는 내가 1기였기 때문에, 과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그녀는 “처음에는 1기로서 당연히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과에 참여했는데, 나중에는 고생하는 애들이 다 친한 동기고 후배라서 자발적으로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앞서 말한) 후배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냐는 질문에 이 씨는 당연히 의식된다며 “과생활이라는 게, 일과 놀이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예를 들어 축제 때, 저학번들은 죽어라 일하는데 고학번들이 선배랍시고 술 먹고 놀기만 하면 (고학번의 과생활이) 좋게 보일 수가 없다”는 그녀는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취업준비 때문에 시간이 없는 건 사실이니까 전 학번이 함께 하는 과생활이 힘들다”고 구조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한편 윤현희(23)씨는 후배들이 고학번을 보는 시선에 동의하면서도 경우에 따라 다르다고 답했다. 그녀는 “(후배들 말처럼) 취업 준비도 안하고 졸업도 안하면서 과생활만 하는 건 분명 한심해 보인다. 그래도 자기 할 일(취업, 공부) 잘 하면서 가끔 후배들에게 얼굴 비추는 건 오히려 본인한테나 과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보였다.

▲ 복학생의 대표 적인 이미지


고학번의 과생활을 당위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고학번들이 자신을 한심하게 보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선배로서의 역할은 내팽개치고 과생활에만 목숨을 거는 ‘한심한’ 고학번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고학번의 과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더 확고해진다.

이런 고정관념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고학번들이 행동을 바꿔야 한다. 선배로서 모범을 보이면서 과에 애정을 쏟는다면 고학번의 과생활이 더 이상 한심한 눈초리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모범이란 취업 준비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나이에 맞는 성숙한 사고나 태도도 포함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과방에 죽치고 앉아있던 선배들 치고 성공한 사람 못 봤다”는 어느 후배의 말이 가시가 되어 돌아오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