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겪는 여러 종류의 압박감 중 이번 편에서 다룰 것은 바로 '외모에 대한 압박감'이다. 물신주의만큼이나 우리 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하는 이념(?) 중 하나가 외모지상주의가 아닐까 한다. 어떤 법칙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나이가 어리면 어린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저마다 외모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고, 자신의 외모를 좀 더 낫게 가꿔내려고 애쓴다.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피부관리실에 다니며, 화장을 할 때에도 온 정성을 다하고, 1달에 1번 정도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하고, 재정적인 여유가 있거나 보다 과감한 변신을 꾀할 때에는 성형수술도 마다 않는다. 성형수술 공화국이라는 독특한 수식어를 가진 대한민국에서는 오늘도 '예쁘고 잘생긴 사람 권하는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신인스타가 나왔을 때는 그 사람의 연기력이나 노래실력보다는 외적인 부분을 주로 부각시켜 이목을 끌곤 한다. 기획사의 마케팅 기법도 언론의 홍보 방법도 매한가지다. 올 여름에 나왔던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란 곡과 관련돼 가장 많이 나왔던 얘기는 '제복 패션'과 '제기차기춤'이었다. 늘씬한 각선미를 뽐낼 수 있는 춤솜씨와 '너무 짧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짧은 핫팬츠 이야기만 가득했단 소리다. 올해를 강타한 꿀벅지 열풍은 소녀시대를 통해 다시 한 번 빛을 발했고 이제 여성들은 탄탄하면서도 늘씬한 종아리, 허벅지에 대한 압박도 받기 시작했다. 얼굴, 몸매 무엇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분위기가 점차 단단해지고 있는 것이다.


 





 
 예쁜 여자, 잘생긴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구간반복을 해 놓은 mp3의 음성마냥 계속해서 생산되고 되풀이된다. 하도 자주 접하다 보니 당연히 미를 우선시하고, 외모에 대한 코멘트들은 아주 자유롭게 부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일까, '알고 보면 예쁜 여자는 ~하기까지 하더라-'는 식의 설문조사는 의외로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파고들어, 외모+α의 자질을 갖춰야 하는 압박감을 만든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내적인 것을 중시하며 외적인 것에는 소홀하던 분위기가 완전히 역전되었다. 예전에는 외모를 가꾸고 치장하는 행동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상당히 달라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당당하게 외모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며 실행에 옮기는 '적극적인 자세를 지녔다. 게다가 자기관리와 자기계발을 신봉하는 21세기 사람들에게 '외모를 가꾸는 일'은 자기관리의 일부가 되는 대단한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에 따른 부담도 커지게 된 것이다.

 
 외모에 대한 압박감은 여러 가지 느낌으로부터 시작된다. 다들 예뻐지려고 노력하는 분위기에서 나만 그렇지 않으면 왠지 도태될 것 같은 느낌, 덜 예쁜 얼굴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성으로 다가가지 못하게 만드는 드한 느낌, 내 외모는 회사에서 원하는 정갈한 모습에서 한참 떨어져 있을 것만 같은 느낌, 특출나지 못한 외모 덕에 주변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 외모가 훌륭해야 인생이 펴질 것 같다는 느낌 등등.

 
 저것들은 단순한 느낌이나 감이 아니라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다. 정말로 기업에서는 그쪽에서 요구하는 '참신한 용모'의 기준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얼마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회사에서 화색을 띠며 반길 만한 '선호하는 신입사원상' 연예인 사진이 올라온 적도 있었다. 그 게시물을 본 대부분의 네티즌이 공감했고 결국 기업이나 사회에서 원하는 '참한 이미지'는 형상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주 딱 부러지는 자세한 기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옛 성현들의 말을 따라 취업 성형을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아예 '취업'이라고 검색어를 치면 자동으로 저장된 '자주 검색된 단어' 중 자연스레 '취업 성형'이 나오는 편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필자도 얼마 전 이런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다. 친구 중에 아주 매력적인 외꺼풀 눈을 가진 귀여운 동기가 있는데 취업 준비를 약 1년 정도 앞둔 상황에서 쌍커풀 수술을 하겠다고 폭탄발언을 한 것이다. 아무리 쌍커풀 수술은 애교인 수준이 됐다지만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취업 시를 대비해 사측에서 '적합하다'고 느낄 만한 얼굴이 되기 위해 칼을 댄다니. 게다가 그 친구 특유의 귀여운 분위기를 더해 주었던 가장 큰 매력포인트를 건드릴 생각을 했으니 얼마나 많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일지 짐작이 갔다.


 취업을 제외하고 나서도 '외모에 대한 압박'을 받는 상황은 무궁무진하다. 아르바이트 면접, 소개팅/맞선 자리, 옷을 살 때, 사람들을 만나는 모든 자리가 압박감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무대가 된다. '왜 예뻐지고 싶은 것인가?'라는 질문에 나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지만 달리 말하면 그건 남 앞에 보이기에 자신 있고 싶어하는 마음 아닐까. 결국 타인의 시선에 의해 자신의 모습이 좌우되고, 본인 역시 매우 자연스럽게 그 시선들에 얽매인다. 압박감이 무서운 것은 그것이 자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자신의 명확한 기준이나 잣대가 존재한다기보다, 다른 이들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기에 기대치는 끝간 데 없이 올라가게 마련이고 자기만족을 느끼는 것도 무척 어렵게 된다.





 무시무시한 무한경쟁체제에 돌입해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서 있는 20대에게 압박감이 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외모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 때문에 적극적으로 '손질' 혹은 '튜닝'에 나서는 그 열정과 몰입이 씁쓸한 이유는, 현재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의 흔적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예쁘지 않다면 살아갈 수가 없다'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장면을 보았을 때, 10대의 나는 적당히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취업 준비생으로 거듭난 20대의 나는 그럴 수 없다. 다른 의미로 절실하게 공감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