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눈에 한국은 휴대폰 천국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대리점들이 공짜로 휴대폰을 바치겠다고 아우성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모두가 공짜폰을 파는데 고지서에는 다달이 할부금이 찍혀 나온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한국의 휴대폰 판매 구조는 기형적이다. 먼저 휴대폰 제조사에선 상당한 수준의 가격으로 제품을 출고한다. 일례로 삼성의 갤럭시S2의 경우, 미국에서보다 20만원 비싼 가격인 94만 9000원에 출고된다. 당연히 100만원 가까이되는 가격을 수용할 소비자는 적다. 이 때 제조사와 소비자 사이에서 이동통신사가 개입한다. 수십 만원에 이르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물론 보조금은 공짜가 아니다. 보조금은 소비자가 사용하는 요금제를 기준으로 차등적용 된다. 기본료가 비싼 요금제를 사용할 수록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이다. 보조금은 천차만별이니 보조금보다 할부금이 더 많이나오는 경우도 있을 텐데, 왜 모든 대리점에서는 공짜폰을 강조할까? 할부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단말기 가격은 할부로 지불되니, 구입 당일에는 공짜라는 논리다. 한국에서의 휴대폰 구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비싼 휴대폰을 할부로 사지만 약정기간 동안 비싼 요금제를 사용하면 공짜가 될 수도 있어.'

출처: 베타뉴스

소비자들이 이처럼 복잡한 과정 속에 들어가야만 하는 비극의 원인은, 제조사와 이통사의 관계에 있다. 만드는 이와 서비스하는 이가 서로의 이해관계를 맞춰가면서 기형적인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3월 15일, 공정거래 위원회는 이 같은 부적절한 관계의 전말을 밝혔다. 통신 3사(SKT, KT, LG U+)와 제조 3사(삼성전자, LG전자, 팬택)의 담합사실에 과징금 453억 3000만원을 부과한 것이다.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공급가보다 출고가를 높게 책정하면서, 이를 보조금으로 치장했다(2008~2010). 이통사는 싸게 산 상품을 비싸게 산 상품처럼 속이고 소비자에게 인심 쓰듯 보조금을 지급했고, 제조사는 싼 제품이 비싼 제품으로 포장되는 상황을 ‘고가이미지 형성’이라며 좋아한 것이다.

이처럼 제조사와 이통사 간 담합에서 오는 소비자의 불이익은 대리점을 통해 더욱 심화된다. 복잡한 구매과정을 정확히 판단하기 힘든 소비자가 판매원의 의견에 의존함에 따라, 판매원은 보다 높은 위치에서 소비자를 우롱할 수 있다. 일례로 ‘퇴근폰’이 있다. 뭘 모르는 소비자에게 최악의 조건으로 판매해버리면, 그 한 건으로 당일 목표량을 채운다는 뜻이다.

소비자들의 피해가 큰 만큼,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방송통신위원회와 정치권에서도 움직임이 있다. 방통위는 다음달부터 블랙리스트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분실, 도난 단말기 목록을 제외한 모든 단말기의 제한을 풀어, 유심카드만 갈아 끼우면 자유롭게 개통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블랙리스트제가 도입되면, 이통사를 변경할 때 단말기를 새로 마련하지 않아도 되므로, 이통사와 제조사의 관계를 약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민주통합당은 4월 3일, ‘한명숙의 공개제안 네번째- 반값 생활비 시리즈1’을 통해 휴대폰 기본료, 가입비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같은 개선노력의 배경에는 다음의 아이러니에서 나오는 자명한 문제의식이 있을 것이다.

'세계를 휩쓰는 갤럭시 S2의 나라, 이동통신 대표주자 한국의 소비자들은 OECD에서 두 번째로 높은 가계통신비를 부담하고 있다.'(OECD 발간 커뮤니케이션 아웃룩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