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의 새로운 연재, 독립기념일!

성인이 된 20대가 왜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독립기념일'은 가상의 화자 '나'가 부모님의 품을 떠나 독립하면서 겪는 일들을 다루는 연재 소설입니다. '나'의 독립 스토리를 통해 20대의 독립에 필요한 정보들을 전달하고, 20대의 독립에 대한 고민을 유도하고자 합니다. 


1화

왜 나는 이러고 있는가? 고등학교도 졸업했고, 스무 번째 생일도, 성년의 날도 보냈는데 왜 지금도 성인이 되지 못했는가? 왜 지금까지도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갖가지 구속에 묶여있느냔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20대 초반 대부분이, 다시 말해 사회에 나가지 못한 20대 거의 모두가 부모님과 함께 지낸다. 그러니까 이건 나 혼자의 문제가 아니다. 20대가 독립하지 못하는 데엔 사회 탓도 있는 거다. 교육과정부터 문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연스레 대학생이 되는 거라고 가르치지 않던가, 성인이 아니라. 대학생 만드는 게 교육목표라서 그런지, 독립에 필요한 것들을 배운 기억이 없다. 당장 독립하려 해도 집은 어떻게 알아보고 계약하는 건지, 이사한 후에 전입신고는 어떻게 하는지, 집에 곰팡이가 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사비는 주인집과 세입자 중 누가 내는 건지... 전혀 못 배웠으니 독립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니, 집을 얻을 돈부터가 문제다. 일자리는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근로계약서 쓰는 법도 모르니 툭하면 사장님들한테 물먹고, 그만두면 임금 떼일까봐 마음대로 관두지도 못한다. 이게 어디 제대로 된 성인인가?

성인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교육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20대 초반을 아이처럼 대한다는 것을 매일 확인하기 때문이다. 사실 고등학교 다닐 때도 존댓말을 들어본 기억은 잘 없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곳곳에서 반말을 듣고 다닌다. 학교에 가는 버스에서도, 교수님께도, 밥을 먹는 식당에서도 일면식조차 없는 어른들은 나름 어른인 내게 반말을 건넨다. 그들의 인식 속에서 20대 초반은 아직 어른이 아닌 걸까?



사회가 나를 아직 아이로 대하기에, 부모님께 독립을 주장하는 내 목소리에도 힘이 빠진다. 나가 살겠다고, 내 앞가림은 내가 하겠다고 주장한다면 들려올 뻔한 말들. “대학생이라고 다 큰 줄 알아?”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겁도 없이” “나가 살면 행복할 것 같지? 분명히 후회할 거다 너” 이렇게 핀잔하시는 부모님께 “20대면 완전한 성인이에요!”라고 멋지게 응수하고 싶지만, 대한민국에서는 20대가 불완전한 성인임을 알기에 부모님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자신과 함께할 때의 이점들을 말씀하시는 부모님께 마음이 기울어 독립을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나도 혼자 보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생활이 나은 것에는 이견이 없다. 이곳에는 익숙한 내 방이 있고, 집에서 나를 맞아주는 얼굴들도 있다. 무엇보다 몇 십년을 내 입맛과 함께 해온 ‘집밥’이 있다. 만약 집을 떠나 독립하게 된다면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시급 5000원 내외의 알바로 그게 가능할까. 게다가 청소, 빨래는 물론 매 끼니를 고민해야 할 텐데 과연 독립이 맞는 길일까 의문을 떨치기 힘들다.

아니다. 진리를 고민하는 대학생이 몸의 편안함만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독립해야할 명분들은 편안함을 덮을 만큼 넓고 뚜렷하다. 먼저 아직도 부모님께 몸을 의탁하고 있는 상태는 스스로에게 성인으로써 당당하지 못하다. 성인이 무엇인가. 다 자란 사람 아닌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을 만큼 다 자랐기에 부모님 동의 없이 학자금 대출도 받을 수 있고, 술을 마셔도 담배를 해도 부모님께 꾸지람 듣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지 않은가. 성인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의식주와 그에 수반되는 비용을 부모님께 의지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반면 독립을 통해 내가 되찾을 중요한 권리들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를 경험할 권리이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학생이 되면서 나는 아직 사회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함께 생활하면서 부모님이 제공하시는 울타리는, 내게서 사회의 쓴맛을 경험할 기회를 박탈한다. 집을 구해보면서 복덕방아저씨께 데어도 보고, 집주인과의 마찰 속에서 의견조율을 배우고, 생활비마련에 힘쓰면서 돈의 소중함을 아는 일은 쓰지만 중요한 경험들 아닌가. 독립을 통해 매순간 사회와 만나고 이를 헤쳐 나가는 일은 놓치기엔 너무도 값진 권리이다.

나의 독립은 나만의 독립이 아니다. 성인이 되었음에도 아이로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 20대들을 대표하여 나는 독립한다. 부모님의 품에서 응석받이로 살기 보다는 이를 깨고 나가 배고픈 성인으로 살고자 한다. 잃을 것은 집밥이요 얻을 것은 사회 짬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