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의 새로운 연재, 독립기념일!

성인이 된 20대가 왜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독립기념일'은 가상의 화자 '나'가 부모님의 품을 떠나 독립하면서 겪는 일들을 다루는 연재 소설입니다. '나'의 독립 스토리를 통해 20대의 독립에 필요한 정보들을 전달하고, 20대의 독립에 대한 고민을 유도하고자 합니다.  


5화

학교, 피자가게, 고시원, 학교, 피자가게, 고시원, 다시 또 학교... 처음엔 ‘독립’이란 말만 들어도 신선하고 설렜다. 독립을 결심했을 때의 그 짜릿함, 모든 게 잘될 것만 같은 기분, 아르바이트를 구했을 때의 그 자신감, 누구보다 최고였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 혼자고 저녁에 잠을 자도 나 혼자다. 2평 남짓한 고시원 방 한 칸에 나를 깨워줄 사람은 없고 서로 볼 기회가 적다보니 아직 고시원 사람들과도 별로 친하지 않다.


힘들다. 확실히 자유롭긴 한데 막막하다.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어렸을 때 엄마가 설거지 하는 게 재밌어 보여서 나도 해보겠다고 했다가 바로 질려버린 그런 느낌이다. 집에서 학교 다닐 땐 시험이나 과제가끝나고 나면 가끔 친구들이랑 술 마시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고 모든 시간을 생산을위해서만 써야한다. 잠깐 나가 노는 것도 나에겐 사치다. 시간이 금이라는 그 흔해빠진 명언이 이렇게 와 닿기도 처음이다. 게다가 곧 내야 할 고시원 방값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고시원에서 하는 거라곤 밤 늦게 와서 자고 아침 일찍 나가는 것뿐인데 피자집에서 64시간 일한 걸 고스라니 내놓아야 하다니... 당연한 건데 갑자기 슬퍼진다.

오늘도 이런 잡생각을 하며 알바를 마치고 고시원에 돌아왔다. 지친 몸을 이끌고 막 침대에 누으려는 그 순간, 또 시작됐다. 옆방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소리와 컴퓨터 음악소리가 섞인 그 소리, 제대로 짜증난다. 벌써 일주일째다. 요즘 아파트 층간 소음이 문제라던데 여긴 벽간 소음이 장난 아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소음 따위 무시하고 자려고 해도 계속 들린다. 잘 자야 내일 또 나가는데 내 잠을 괴롭히는 옆 방 인간이 미워진다. 누구인진 모르겠는데 참 매너 없다. 방마다 벽이 있긴 하지만 엄연히 함께 쓰는 공간인데 이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처음엔 알바 갔다 오면 힘들기도 하고, 굳이 옆 방 사람이랑 분란 일으키기 싫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이젠 안 되겠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계속 내 화를 돋우니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고시원 총무님에게로 갔다.

“저기 총무님, 옆 방 사람이 밤마다 너무 시끄럽게 해서요. 잠을 잘 수가 없거든요. 그 사람 보시면 소리 좀 줄이라고 말 좀 해주세요.”

“그래요!? 보면 말해 놓을게. 그런데 학생 방에 있던 전 사람은 별 얘기 없었는데... 학생이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네!? 아닌데... 어쨌든 말씀 좀 부탁드려요.”

어이가 없다. 내가 내 돈 내고 이용하는 방에서 잠까지 제대로 못자면 이게 말이 되는가. 고시원 와서 하는 거라곤 밤에 잠자는 것뿐인데 이것마저 못하면 내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 총무님이 예민한 거 아니냐고 물어봐서 조금 화가 났지만 말 해주신다고 하니까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도, 또 다음 날이 되도 그 소리는 줄어들 기미를 안보였다. 오히려 더 커지면 커졌지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고시원 총무님은 옆 방 사람한테 몇 번이고 말했는데도 해결되지 않는 걸, 자기가 어떻게 해결 하냐는 식으로 일관했다. 정 안되면 퇴실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까지 말했는데 그건 또 어렵단다. 아... 정말 옆 방 사람이랑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 어쩔 수가 없다. 싸움이 나더라도 이건 얘기해야겠다.

“빠밤빰빰 빠바바밤 빠바밤~”

마침 옆방에서 소리가 난다. 행여나 오늘은 그 소리 안 들리나 했는데 제대로 들린다. 설마 옆방에 무서운 사람이 살진 않을까란 걱정도 살짝 되지만 오늘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 가자.

‘똑 똑 똑’

“누구세요?”

“아... 저 옆방 사는 사람인데요.”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벌써부터 화 내 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말이다.

“무슨 일이신데요? 잠깐만요.”

그러곤 방문이 열렸다. 그런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약 3초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들리는 소리.

“어... 너...!? 승원이 아니야?”

“어... 어 어 맞아. 민준이?”

“야 반갑다. 이게 얼마만이냐. 1학년 때 이후로 처음이지 아마. 나 그 때 군대 간다고 휴학했잖아.”

“그러게... 근데, 너 여기 사는 거야?”

“응. 제대하고 잠깐 살려고 왔는데 괜찮아서 계속 살고 있어. 내 옆 방 사는 사람이 너였구나. 세상 진짜 좁다.”

“그러게... 좁네 좁아... 정말 좁다...”

“근데 너 무슨 일 있다 그러지 않았어?”

“아... 어어... 아니야. 옆방에 누구 사나 궁금해서...”

“그렇구나. 잠깐 얘기나 할래?”

“아니야. 나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응 그래. 그럼 담에 봐.”

결국 나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화가 나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상황이 웃겼다. 내가 매너 없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1학년 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라니, 친구라니, 같은 과 동기라니. 참 신기하고도 재밌는 상황이었다.



며칠 뒤 나는 민준이를 내 방에 초대했다. 초대라고 해봐야 칸에서 칸을 옮기는 정도지만 나름 맥주에 안주거리도 준비해 놨다. 민준이도 기쁜 마음으로 내 방에 왔다. 그렇게 각자 맥주 한 캔씩 들고 1학년 때 있었던 일들, 다른 친구들, 요즘 근황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민준이가 처음에 자기를 찾아 온 진짜 이유에 대해서 물어봤다. 언젠가 말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어서 옆방이 너무 시끄러워서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진작 말하지 그랬냐면서 민준이도 조심하겠다고 했다.

이후 옆방의 소음은 점차 줄어들었고 요즘 나는 잠을 잘 잔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오히려 잘 됐다. 아는 친구를 만난 덕분에 소음 문제도 무리 없이 잘 해겼됐고 말동무도 생겼기 때문이다. 내 동지가 생긴 느낌이다. 비슷한 상황에 있으니 서로를 잘 이해해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래선지 기분이 좋다. 먹구름 같은 하늘에 한 줄기 빛이 내려온 기분이랄까. 언제 또다시 막막해 질진 모르겠지만,적어도 지금은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얻은 것 같다.

‘이런걸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하나. 역시 하늘은 날 버리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