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팰리스는 부동산 시장이 절정에 달했을 때, 아파트 안에서 운동,문화,금융 등 모든 것을 해결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했던 초고층주상복합아파트, 즉 부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 타워팰리스에서 1.4km 도보로 20분 정도만 가면 25만미터제곱(8만평)의 크기에 달하는 1200세대의 판자촌이 존재한다. 타워팰리스와 마주하고 있는 그 곳은 ‘구룡마을’이다.

@노태윤 기자의 발가는대로 블로그


  구룡마을을 가기 위해 분당에서 8100번 버스를 탔다. 8100번 버스를 타면 창가 너머로 천당이라고도 불리는 분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쭉 뻗은 공원을 안고 있는 아파트단지와 깨끗한 상가들을 보면 천당이라는 별명이 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에 한번 갈아타 도곡역에 도착했다. 구룡역에 내려야 하는 걸 깜빡하고 잘못 내렸는데 덕분에 타워팰리스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다. 63빌딩보다 더 높은 타워팰리스는 뒷덜미가 당기도록 고개를 들어야 꼭대기를 볼 수 있다. 현기증이 나는 높이에 사는 사람들은 어떨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말해도 득 될게 없어. 자치회관가서 물어봐”

  도곡역에서 20분 정도를 걷자 구룡마을이 보인다. 안내문은 없지만 남의 땅에 있는 듯 어색해 보이는 모습이 구룡마을을 나타내고 있다. 마을초입에는 정부의 공영개발에 반대한다는 민간개발지지 선언문이 서있다. 마을을 살펴보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의 반감 섞인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 친절한 아주머니는 익숙한 듯 “학생들 뭐하러왔어? 숙제하러왔어?”라며 말을 걸어오신다. 휴게실이라고 써 있는 곳에 들어가서 주민들과 대화를 시도해보았다. “저... 대학언론(편의상 이렇게 말했음)에서 취재차 나왔습니다. 간단하게 인터뷰해주실 수 있나요?” “학생이야?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이런 거 싫어해. 괜히 말해서 득 될게 없거든.” “학생이라 도와주고 싶긴 한데, 정 그러면 저 입구에 마을자치회관가서 물어봐.” 언론이라는 말에 인상이 변하던 주민들에게 더 부탁할 수가 없었다. 타인의 시선에 의해 대상화되어온 구룡마을에는 상처가 많아보였다.
 

"정부는 무슨 염치로 갑자기 끼어드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민영이

  마을자치회관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우리 마을에는 학생들이 많이 오네.”라며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다. 반가움보다는 경계심이 더 깊어보였다. 마을자치회의 부회장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가 진행되자 속에 있던 얘기를 다 털어놓으며 연신 “잘 좀 써줘요. 학생”이라는 말을 덧붙이신다. 구룡마을에 무슨 일이 있을 때 힘이 되어달라며 핸드폰번호도 남겨달라고 하셨다. 원래 이런 거에는 다른 번호를 적곤 하는데 그럴 수가 없어 진짜번호를 적어놓고 나왔다. 아까 들어올 때 봤던 백구하나가 자치회관을 나서는 나를 따라온다. 뒤에서 “민영아. 이리와.”라고 부르자 개가 쪼르르하고 제자리로 간다. “개 이름이 민영이에요?” “네. 이 개가 구청에서 나왔는데, 공영개발하지 말고 민영개발하자고 민영이라고 지었어요.” 개의 이름도 민영이라고 지을만큼 그들의 바람은 절박해보였다.
 

  현재 구룡마을의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닌 공영개발이냐, 민영개발이냐 라고 볼 수 있다. 기존 언론을 통해 볼 수 있는 내용은 ‘서울시에서는 공영개발을 추진하여 구룡마을 거주민들에게는 임대아파트를 제공하겠다는데 구룡마을 주민들은 분양권을 받을 수 있는 민영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는 나도 당연히 공영개발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이는 ‘민영개발을 하게 되면 개발이익이 민간에게 귀속되고 강남의 노른자 땅인 만큼 그 액수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라고 말하는 서울시의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기 때문이다.

그 갈등 만큼이나 복잡한 이해관계

  그런데 자치회관에서 들은 얘기는 그렇게 간단히 생각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주민들은 서울시와 강남구청에 대한 반감이 엄청났다. 99년부터 재개발사업을 추진했는데 당시에는 세대 수가 너무 많아 정부도 손을 놓았다고 한다. 이때 나서서 도와준 것이 민간개발업자였고, 그들의 도움과 주민들의 노력으로 2,500세대를 1,200세대까지 줄여 재개발요건을 갖췄다고 한다. 근데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정부에서는 공영개발을 하겠다고 언론에 발표를 해버린 것이다. 발표 이틀 전에 20년 동안 해주지 않던 주민등록까지 해주면서 공영개발을 추진하는 정부의 모습에 주민들은 오만 정도 다 떨어졌다고 한다.
 

  현재 구룡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도 재개발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다. 민영개발을 주장하는 자치회는 공영개발을 주장하는 이들은 뭘 몰라서 그런다고 주장하고 있고, 공영개발을 주장하는 주민들은 자치회는 민간개발업체의 똘마니라며 경시하고 있다. 이미 주민들 간의 의사소통은 없어진지 오래이다.


구룡마을의 희망은 지켜져야한다

현재 구룡마을에는 크게 세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서울시 - 공영개발을 통해 임대주택을 짓겠다. 구룡마을 거주민들에게는 소득분위별로 평생임대주택과 임대주택을 제공하도록 하고(약1200세대), 나머지(약1300세대)는 일반인들에게 임대하도록 하겠다.

민영찬성 주민 - 민영개발을 해야한다. 마을에서 투기꾼을 내쫓고 세대를 정리할 때 손놓고 있던 정부는 우리에게 이러면 안된다. 공경개발을 통해 임대주택을 제공을 수 있다고 해도 그 요건에 안맞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민영개발을 통해 분양권을 받아야한다!

공영찬성 주민 - 공영개발을 통해 임대주택을 제공받겠다. 민영개발 주장하는 주민들은 자신들끼리 정회원/예비회원/비회원 등급을 나눠놓고 민영개발 시에 분양권을 차등지급하려 하고 있다. 그런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고, 서울시가 더 믿을만 하다.
 

구룡마을의 재개발 조감도(강남구청 제공)


   공영개발을 하게 되면 그 수혜가 구룡마을 거주민들뿐 아니라 임대주택이 필요한 또 다른 국민들에게도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공공성 측면에서는 손을 들어줄 수 있다. 그리고 판자촌개발에 대한 좋은 선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영개발로 하는 것이 맞다. 그런 반면에 민영개발은 구룡마을의 개발이익이 민간사업자에게 돌아간다는 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으나, 20년 넘게 살아온 주민들의 주거권보장 측면에서는 더 안정적일수는 있다. 하지만 주민자치회와 거기에 속하지 않은 주민들 사이의 대립을 풀어나가는 것이 숙제로 남아있다.

  사실 구룡마을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살만한 주거공간’이다. 인터뷰에 응해주었던 주민자치회 김원신 부회장은 “현재 마을에는 기반시설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씽크대가 세면대고 샤워장이다. 전기도 겨우겨우 공급받아 산다. 불이 한번나면 몇 십 가구에 옮겨 붙는 건 순식간이고, 폭우에도 대책이 없다.”며 열악한 환경에 대해 설명했다. 십년이 넘게 표류하고 있는 재개발계획은 현재 그 방법론에 대해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실정이다. 공영개발이든 민영개발이든 구룡마을 주민들의 거주권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88올림픽이라는 나라의 축제에 의해 희생되었던 이들의 희망을 짓밟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