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식단을 바꾸기로 결정한 것은 아주 개인적인 이유에서 출발했다. 아토피 피부염이 나이를 먹고 대학생이 된 이후 점점 심해진 것이다. 나는 나의 성장통인 그 피부병을 이겨내기 위해 지난 몇 개월간 육식과의 작별을 고했다. 미루고 미루었지만 드디어 내린 결정이었다. 어류와 유제품 등은 포기하지 못한, 그리고 그것도 몇 개월 도전하겠다는 어줍지 않은 채식선언이었지만, 그동안 육류를 무척이나 즐기던 나에게는 아주 큰 결단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채식의 단계를 지칭하는 전문용어를 알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나는 채식 4단계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인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 vegetarian)이었다. 그렇게 나는 새내기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쉽지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기특한 결정을 내린 이후, 즐겨 먹었던 것은 방울토마토, 양상추, 감자, 고구마 등이었다. 그리고 고기의 단백질은 두부가 담당했다. 집에서 엄마가 차려주시는 찌개, 나물반찬도 즐겨 먹었다. 초기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또 무얼 먹어야 하나?’ 라는 고민을 가장 먼저 할 정도로 식단 구성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만큼 먹을 수 있는 것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니 자연스레 식단이 풍성해졌다. 이것저것 넣어 나만의 샐러드도 만들고, 더 많은 종류의 과일과 채소를 찾아 먹었다. 특히 즐겨먹었던 것은 월남쌈이었다. 채식을 하기로 결정하기 전에는 거의 먹어보지 않았던 것인데 생각보다 아주 괜찮은 음식이었다. 라이스페이퍼 안에 마음에 드는 각양의 채소를 넣고 상큼한 소스를 찍어 입에 넣을 때면 아주 만족스러웠다. 물론 같이 먹는 이들이 노릇하게 구운 훈제오리를 함께 넣어 먹을 때 마음이 약간 흔들리기도 했지만 잘 이겨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정말로 변화가 찾아왔다. 채식의 가장 큰 이유였던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밤낮없이 가려웠던 피부는 점차 진정되었고, 피부염으로 인해 울긋불긋했던 상처들도 확 줄어들었다. 실제 미국 아토피 학회지에서 발표한 결과, 두 달간 채식을 한 아토피 환자들에게 아토피 점수를 나타내는 'SCORD'수치와 아토피 피부 염증 세포인 호산구 수치가 유의하게 줄었다고 한다. 또한 이전보다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 지난 몇 달간 ‘내가 지금 다이어트를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채식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체중도 감량됐다.





 

하지만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과 불편함도 있었다. 집에서 식사를 할 때에는 상관없었지만, 외식을 할 때에는 사정이 달랐다. 친구들을 만날 때면, 내 결정을 아직 몰랐던 친구들이 고른 이런저런 맛있는 음식에는 고기가 안 들어가는 것이 거의 없었다. 결국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더니 이해심 넘치는 친구들은 비빔밥과 청국장이 맛있는 한식당을 선택했다. 물론 맛있게 먹었지만 함께 먹는 친구들에게는 너무 미안한 마음이었다. 앞으로도 나와 만날 때에는 친구들의 메뉴 선정에 항상 제동이 걸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최근 채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분위기라고 하지만, 채식인들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육류 위주의 외식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채식인들이 집 밖에서 식사를 할 때에는, 채식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을 특별히 찾아가야 한다. 또한 일반 음식점에 가서도 “이것, 이것 빼주세요.”라는 주문을 할 경우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가게 주인이나 함께 먹는 일행에게 까다롭다는 인상을 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식점에서 제값을 주고 먹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먹지 않는 것들을 빼다 보니, 완성되지 않은 음식을 먹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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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채식을 선언한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매스컴을 통해 자주 접한다. 가수 이효리와 방송인 김제동은 채식을 통해 동물보호를 실천하고 있고, 배우 김효진은 책 <육식의 종말>을 읽고 채식을 결심했다고 한다. 나의 경우 채식을 결단한 이유가 동물을 보호하고 지구를 살리기 위함이라는 큰 뜻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건강의 문제로 시작한 개인적인 실천이었을 뿐. 그러던 중 학교과제를 준비하며 동물사육과 관련된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오로지 육류 생산을 위해 길러지는 닭들이 딱 제 몸집 크기 정도밖에 안 되는 공간에 한 마리씩 들어가 장치에 의해 몸이 고정돼 있었다. 수많은 동물들이 아파트 같이 생긴 그곳에 다닥다닥 고정되어 먹이를 쪼고 항생제를 맞는 그 영상이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 이후, 건강을 위한 내 개인적인 실천에 담긴 또 다른 의미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육식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육류의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행해지는 비윤리적인 사육과 도살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나의 채식생활은 철저한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에 비하면, 그리고 오랜 기간 채식을 해 온 사람에 비하면 솔직히 많이 어설펐다. 하지만 나의 작은 행위가 갖는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한 이상, 이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