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 남짓한 한국 대학생 포럼(이하 한대포) 소속 학생들이 국회앞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SUV 차량에서 ‘종북 주사파 의원 사퇴하라’등의 구호가 담겨있는 현수막과 피켓 등을 꺼냈다. 그리고 국회 앞에서 대기중이던 방송사 기자들 앞에 섰다. TV조선, 채널A등의 종편채널에서 취재하러 왔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반면 진보매체로 분류되는 곳에서는 한 곳도 오지 않았다.

티셔츠에 청바지, 캡 모자에 추리닝 차림이었던 한대포 소속 학생들은 누가 봐도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전달한 메시지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한대포 “종북 주사파의 국회 입성을 막아야”

5일 오후5시 한대포는 국회 앞에서 ‘19대 종북 주사파 국회의원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대포는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주사파를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한지 25년이 흐른 지금, 주사파는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인 국회까지 들어와서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며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위험하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해치는 종북 세력의 국회 입성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나아가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국회를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서 국가관이 의심되는 의원들을 검증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됐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문 낭독이 끝난 후 회장 박종성씨(23)는 “종북 주사파의원들이 대한민국을 위협에 빠트리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경고하고 싶다.”며 삭발을 한다고 발표했다. 다행히 한대련 등록금 시위 때처럼 여자 대학생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삭발을 하는 안타까운 광경은 벌어지지 않았다. 박종성씨 혼자서만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애국가를 틀어놓은 채 삭발을 했다. 사뭇 진지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국가'라는 최상의 가치를 상정하고, 자신들의 행위를 국가라는 이름을 통해 '정의롭게' 포장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거북스러웠다.

 




삭발식을 끝내고 박종성씨를 비롯한 3~4명의 한대포 학생들은 김재연·이석기 등, 그들이 주사파 국회의원으로 규정한 6명의 국회의원에게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의원회관으로 향했다. 그러나 의원회관에 들어갔다고 해서, 바로 의원들에게 그들의 서한을 전달할 수는 없었다. 의원실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고, 의원실과 연락이 닿아서 서한을 받아가면 그나마 다행인 상황이었다. 의원회관 직원 한 분은 “의원 측에서 서한을 받겠다고 해야 전달해줄 수 있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와서 출근시간에 전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생각했던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한대포 학생들은 상당히 난감한 눈치였다. 그러던 중 다행히 김선동 의원실에서는 연락을 받아서, 의원회관 입구로 나와 한대포의 서한을 받아갔다. 다른 의원들과는 연락이 닿지 않거나, 연락이 되어도 서한 받기를 거부한 모양이었다.

의원회관 로비

 


박종성씨는 “앞으로도 주사파 의원들이 사퇴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텐트치고 단식까지 하겠다. 종북 주사파 국회의원들이 대한민국의 체제를 인정하는 그 날까지 이러한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라며 앞으로도 종북세력을 압박하는 활동을 지속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한대포가 말하는 ‘자유’에, ‘사상의 자유’는 포함되어있지 않나
 

사실 한대포는 극우파 단체들과 결탁했다는 의심을 받는 곳이다. 실제 어버이연합의 후원금을 받기도 했으며, 한대포가 만드는 신문인 scoop을 만들 때는 ‘뉴데일리’가 협력하기도 했다. 또한 끝장토론에서 이름을 알린 윤주진 전 한대포 회장은 트위터 상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부정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기자회견 역시, ‘극우세력’의 시각을 고스란히 대변해주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한대포는 이석기 김재연의 의원 자격 논란은 본질적으로 ‘부정 경선’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종북 주사파’이기 때문에 의원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또한 임수경 의원의 ‘변절자’ 발언 역시 ‘김씨왕조에 대한 변절자’라고 표현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확대해석해서 임수경 의원에게 종북 혐의를 씌운다.

한대포는 ‘주사파 국회의원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서에도 끊임없이 ‘종북세력’이 대한민국을 위험하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종북’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인지는 알 수 없다. 북한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종북’인것인지, 아니면 북한에게 기밀문서를 전달하는 ‘간첩행위’를 하는 것이 ‘종북’인 것인지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대체 이들이 ‘종북’을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있는걸까? 박종성 회장의 말에 의하면 그들의 ‘종북’ 판단기준이 어디 있는지 조금이나마 추측이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한다는 의혹이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국가보안법 등의 혐의가 있는 사람은 일반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과정하고는 다르게, 그들을 검증할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법안을 만들기 위해 어느 당이든 저희와 같은 마음이 있으면 함께 하고 싶다.”


그들은 ‘국가보안법’ 또는 과거의 ‘반공법’ 위반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전부 ‘종북’으로 추정하는 듯하다. 나아가 ‘종북’의혹이 있는 자들은 소위 ‘사상검증법’을 만들어서라도 검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험한 발상이다.

한대포가 줄곧 지켜야 한다고 외치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북한의 전제왕조 체제보다 우월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월함의 근거가 어디서 나오는지는 알아야 한다. 바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점이다. 생각을 통제하지 않고, 양심을 강요하지 않는 ‘자유’말이다. 북한에 그런 ‘자유’가 있을 리가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면 이 체제 하에서는 주사파든, 극우파 일각의 전쟁 불사론자이든 전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한대포 박종성 회장의 말은 주사파에게는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 양심을 강요하자는 말로 들린다. 심지어 이들은 아예 법적으로 자유를 제한해버리는 '사상검증 법안'까지 만들겠다고 한다.

사실 한대포뿐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나 새누리당 역시 사상검증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종북’ 논란을 가속화시키면서 특정한 이념을 가진 사람만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 한다면, 보수세력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스스로 해치는 행위가 될것이다. 이에 대해 자유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고종석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트위터에서 “정치인들은 제 사상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은 옳아 보이지만, 매우 위험하다. 그 한계를 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잘못하다간 모든 수준의 공직자에게 사상고백을 강요하게 된다. 그리고 이 악행이 민간인에게 이행되는 건 순식간이다.”라고 지적했다.

한대포는 홈페이지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및 헌법적 틀 안에서의 다양성을 존중합니다.’는 말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한대포는 스스로 그들의 정체성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 만약 그들이 주장하는 ‘사상검증 법'이 시행된다면 북한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단 한 가지 태도만 허용하게 되는 꼴이다. 하나의 이념만이 ‘맞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한대포에서 말하는 ‘자유'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우익 또는 극우 집단만의 ‘자유’를 일컫는 것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