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머리가 아팠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계속해서 게임의 장면이 생각났다. 내 캐릭터가 칼을 던진다. 그 칼이 적 캐릭터에 맞으면서 나는 둔탁한 소리. 퍽! 내 캐릭터는 이동속도가 느려진 적 캐릭터를 마저 쫓아가서 죽이고야 만다. 칼을 명중시켰을 때의 쾌감. 적 캐릭터를 죽였을 때의 쾌감. 그 모든 강렬함에 내 뇌는 중독됐다. 그리고 나도LOL(League of Legend)에 중독됐다.
 
2주 정도는 정말 정신을 놓고 살았다. 시간만 나면 LOL을 하러 달려갔다. 아니, 시간이 없으면 만들었다. 친구들과 고등학교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밤을 새기까지 했다. 머리가 띵하고, 가슴 언저리가 아픈 협심증 증세가 느껴지고, 입안은 까끌까끌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환한 아침 햇살을 보며 이렇게 생각하기 까지 했다. ‘아, 게임은 이렇게 해야지’. LOL을 안 할 때는 뭐하고 놀았는지 궁금할 정도로 그렇게 동네친구들과 LOL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차츰 문제가 시작됐다.
 
 


못할 때는 문제가 없었다. 그저 게임을 하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그러나 조금 실력이 붙자 다툼이 생겼다. 게임을 하면서 무슨 다툼이냐고 말할 수 있다. 모르는 소리다. 팀을 짜서 게임할 때, 게임에서 지면 정말 열불난다. 자연스레 희생양을 찾는다. 누구는 무엇을 잘못했고 누구는 무엇이 부족하다고 ‘지적질’이 시작된다. 여기서 한판 더하고 또 지면 게임은 게임이 아니다. 스트레스를 풀고 재미를 느끼기 위해 시작한 게임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어이없지만 게임 더하는 수밖에 없다. 운이 나쁘거나 실력이 출중한 사람들을 만나서 연전연패하는 날은 이길 때까지 한다. 기어이 이기고 나면 상처 입은 가슴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늘의 패배를 분석하며 답답하고 응어리진 그 가슴을 안고 말이다.
 
이제 부터는 악순환이다. 게임 이외에 재미있는 게 없는 거 같다. 그래서 게임한다. 이기면? 너무 재미있다. 계속한다. 한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더욱 게임에 빠진다. 그런데 지면? 그래도 계속하지만 스트레스가 추가된다. 가슴이 뜨끈뜨끈해지고 성질난다. 역시 머리에서 게임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말그대로 열불나게 생각한다. 어찌됐든 게임은 계속되고 자극적인 게임 영상도 머리 속에서 계속 재연된다. 자극의 바다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자극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그 이후의 허무함도 강력한 법이다. 게임에 빠졌다가 그 게임의 여운이 어느 정도 가셨을 때의 허무함, 이루 말할 수 없다. 물론, 문제는 그 허무함 채우기 위해 또 게임하러 간다는 것이다.오해하지 말아 달라. 그렇다고 게임 중독은 아니다. 이것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까지 읽고 이놈의 게임, 정말 무시무시하구나. 한국 남자들 다(?) ‘오덕’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주변 남자들이 말은 안 해서 그렇지 다 비슷비슷할거다. 그래도 그 사람들 다 정상인이다. 사실 한국 남자들 정말 게임이외에 할 거 없다. 술 마시고 게임하고 술 마시고 게임하고. 좀 더 나이 먹으면 이상한 데 간다는 데 아직 잘 모르겠다. 여기에 뭐 몇 개 더 추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큰 틀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게임 한번 빠지면 다른 거 할게 없어서 더욱 빠지는 거다! 이렇게 쓰니 한국 남자들 좀 불쌍하다.
 
하여튼 이렇게 정신없고 중독자처럼 빠져 살다가 필자는 저번 주말에 우연히 운동을 했다. 처음엔 귀찮았다. 빨리LOL하러 가야 되는데 운동은 무슨 놈의 운동이냐고. 날씨도 덥고 땀나기 싫다고. 뭐 어찌됐든 운동하러 갔다. 그리고2시간 풋살(소규모 인원으로 하는 축구)을 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그 때 느꼈다. 왜 운동은 안 해도 게임은 하고 살았는지. 운동과 게임, 둘 다 재미있다. 그런데 운동은 체력소모가 극심해서 힘들다. 자극을 장시간 유지하면서 놀 수 없는 이유였다. 게임은 6시간, 아니 10시간도 할 수 있지만 운동은 6시간 넘게 하면 정말 죽는다. 그래도 다음 주에 운동을 한번 더 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끝난 후에 기분이 상쾌하고 뭔가 건강해진 듯 한 느낌까지 들었다. 이렇게 쓰고 나니 정말 ‘오덕’같지만 별 수 없다. 정말 그랬으니.
 
집에 가면서 친구들과 맹세했다. 이제 운동‘도’ 많이 하자고. 매번 게임만 하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몸도 안 좋아지는 것 같다고. 실제로 이번 주말에는 관악산도 같이 등반했다. 매번 게임 얘기만 하고 서로 지적질하다가 좋은 공기 마시면서 사는 얘기도 하고 땀도 빼니까 정말 기분이 괜찮았다. 허무함 대신 만족감이 찾아왔다. 뭔가 여유롭고 악순환이 선순환으로 대체된 느낌이랄까. 아줌마 아저씨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등산하는 것도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됐다.
 
그리고 그날 필자는 조금 더 고민에 고민을 한 끝에 LOL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그만뒀으니까 이런 글을 쓰는 거다. 자신을 되돌아보니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이 끝나고 동네 친구의 지인들과 게임을 하고 처참하게 진 게 결정적인 이유인 것 같지만. 뭐, 어찌됐든 운동이 더 심신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굳혔다. 다음 주에는 군대 기억 되살리며 족구를 하기로 했다. 뛰놀기 좋은 여름, 땀이나 삐질삐질 흘리며 운동해야겠다. 게임에서 처참하게 져서 이러는 거 절대 아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다 심신 때문이다.



LOL이란?
 
LOL의 캐릭터 수는 99플레이어들은 그 중 1개를 골라 다른 플레이어들과 팀을 짜고 게임을 시작한다게임은 간단하듯 간단하지 않다먼저 게임의 목표는 간단하다적의 본진 넥서스를 부시면 승리한다그러나 목표로 가는 길은 간단하지 않다. ‘넥서스로 가는 길목에는 적의 타워와 적의 캐릭터들이 즐비하다어떻게 타워를 부시고 어떻게 적의 캐릭터를 죽여 더 많은 돈을 차지하느냐가 승부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