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의 새로운 연재, 동상이몽!
다양한 전공을 가진 20대들이 모인 고함20. 같은 주제를 보고도 전공에 따라 다른 생각을 가집니다. 하나의 키워드를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진 두명의 필진이 풀어내는, '동상이몽'입니다.



'돈'에 병든 강남. 역학조사에 들어간다. -도시사회학

새로 사귄 친구가 강남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아이를 다시 한 번 보게 된 적이 있을거다.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주민등록증에 기재된 주거지를 봐라‘ 이런 속담이라도 나올 기세다. 우리는 어떻게 학교에서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적지 않은 사회생활로부터 스스로 터득한 방식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알고 있다. 돈이 잘 통한다. 강남에선. 그래서 그런 것일까 나에게 강남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를 대라면 일단 ‘돈’부터 시작된다. 높은 물가, 부자 동네, 부동산 투기까지. 이상하게 돈과 관련된 키워드만 떠올려지는 강남의 모습은 언제부터인가 낯설지 않다.

강남이 이렇게 돈과 얽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강남이 돈과 얽혀있다는 표현보다는 돈에 병이 들어버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강남이 걸린 일명 ‘돈병’에 대한 역학조사를 해봐야겠다. 참고로 여기서 언급하는 강남은 한강이남 전체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한강이남 동부인 강남구, 송파구, 서초구를 뜻함을 알아두자.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강남은 논과 밭으로 이루어진 한적한 시골동네에 불과했다. 하지만 산업화 도시의 길을 걷고 있던 서울 강북의 인구가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고 이에 팽창하는 강북의 대안으로 강남이 선택된다. 제3 한강교(현 한남대교)의 건설은 강북과 강남의 접근성을 만들어주었으며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은 강남개발의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이후 강남일대는 정부의 지휘아래 빠른 속도로 개발되어 현재 모습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강남의 역사 때문일까 강남은 지극히 ‘돈’으로만 이루어진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당시 도시의 개발과 성장과정에 있어서 투기는 불가분의 관계였으니 그리 이상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아무튼 강남의 개발과정에서 강남의 땅값은 수십 배 뻥튀기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익을 얻게 되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단군역사 이래 어느 때보다도 수많은 졸부들이 강남개발로부터 탄생하게 되었다. 심지어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주부를 뜻하는 ‘복부인’이란 신조어까지 탄생하게 되었으니 당시 강남의 땅 투기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이 간다.

땅 투기의 원인을 살펴보자면 ‘개발이익의 사유화’를 들 수 있다. 개발이익의 사유화는 강남지역개발 사업으로부터 나오게 되는 우발적 개발이익이 개발 사업의 비용부담자인 전 시민에게 돌아가도록 사회에 환수되지 못하고 이것이 토지소유자에게 유보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발적 개발이익이란 토지사업이 시행됨에 따라 예기치 아니하게 그 주변의 지가(地價)가 현저히 상승하여 발생하는 이익을 뜻한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이것이 투기의 직접적 원인이 되어 버려 토지가 단순히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인식되어 버린다. 이에 우발적 개발이익을 기대하는 토지의 가수요가 발생하게 되면서 토지의 투기는 증가한다.

강남의 이러한 모습을 도시사회학에서는 'City As a Growth Machine'이라 부른다. 이 용어는 교환가치의 확대를 위한 성장 기구에 의해 도시발달이 이루어지는 도시를 일컫는다. 쉽게 생각해 성장에만 매달리는 도시로 봐도 무방하다. 여기서 성장 기구는 땅주인, 부동산개발업자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처음 강남 개발에 이들이 뛰어들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헌데 여기서 이들만이 유일한 도시의 성장 기구는 아니다. 이들은 일단 1차 성장기구로 분류되고 이외에 정치가, 지방미디어로 이루어진 2차 공조집단과 대학, 극장, 스포츠 집단으로 이루어진 3차 보조집단이 추가로 더 존재한다. 결국 도시전체는 성장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고 만다.

사회학자 하버마스는 이러한 도시의 체계가 결국 시민들의 생활체계까지 지배한다고 본다. ‘체계에 의한 생활 체계의 식민화’라 불리는 이것은 인간이 경제 성장으로부터 마련되는 물질적 풍요가 그들의 생활세계 속으로 침투되어 시장경제를 원활하게 해주는 일원으로 전락하는 것을 뜻한다. 시민들이 자본으로부터의 주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지금의 강남이 바로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회의원, 공무원 등을 포함 220여명이 연루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처럼 돈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은 줄줄이 돈에 눈이 멀어버린다. ‘투기’와 같은 부정한 방법에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도시의 성장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생활체계에 스며들어 버렸다. 강남이 돈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속부터 병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돈에 오염된 강남에 대한 역학조사의 결과는 결론적으로 ‘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행심과 한탕주의와 같은 증세를 보이는 강남. 이제 그 원인을 제시할 수 있다. 강남은 탄생 역사부터가 돈에 얼룩져 있었다. 그래서 강남에서 돈이 잘 통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강남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부동산학

'아담스미스’라는 이름은 고등교육과정을 마친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아담스미스가 국부론이라는 걸출한 이론을 제창했던 180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는 지금과 매우 달랐다. 당시에는 자본가와 지주는 엄밀히 구분되었다. 국부론은 그런 상황에서 지주가 얻는 소득은 불로소득이라 비판하며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론이기도 했다. 그 당시의 지주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가에 흡수통일이 되었고, 현대에서 지주라는 개념은 사라졌다. 그런데 나는 강남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를 대체할 단어를 찾다보면, ‘현대판 지주’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강남은 대한민국 부의 상징이다. 1960년대만 해도 그저 시골에 불과하던 강남은 20~30년이 지나자 서울을 상징하던 63빌딩보다 높은 타워팰리스가 들어섰고, ‘강남불패’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한국에 사는 중산층이라면 강남의 좋은 아파트단지에 들어가 좋은 학군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목표가 되었지만, 이제 중산층이 꿈꾸기에 강남은 너무 높기도 하다.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69년 제3한강교(한남대교)와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였다. 그 당시 매년 40만명씩 늘어나던 강북의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 아파트단지가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고, 논밭으로 가득 차있던 강남땅은 금새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 이후 뉴욕제과만 덩그러니 있던 강남역은 빌딩숲을 이루었고 명문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강남8학군’을 이루기도 했다. 영등포의 동쪽이라 하며 영동이라 불리던 강남이 서울의 부촌으로 불리게 되는 과정은 이처럼 빠르고 간단했다. 부동산업계에서 가격이 가장 안정적인 지역을 교통과 학군이 좋은 곳이라는 통설이 있는데 어쩌면 강남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사이 3.3㎡(!평)당 300~500원 하던 집값은 현재 약 3,000만원 정도로 거의 7만 배 가까이 뛰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강남이 태초부터 금싸라기 땅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물론, 강남이 개발되기 전부터 강남에 있던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현재 강남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의 초호황기로 불리는 1970~80년대에 발 빠른 투자를 했던 사람들이다. 사실 그들이 얻은 ‘부’에는 개인의 노력보다는 세금으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강남이 비싸진 것은 강남에 사는 사람이 땅을 잘 이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막대한 세금을 퍼부어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다리를 잇고, 학군을 조성해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 돌아갔어야 할 혜택이었다.

<진보와 빈곤>의 저자이자 사회사상가인 헨리 조지는 토지소유권자가 토지를 이용하는 자에게 받는 돈(임대료)는 불로소득이라 보았다. 따라서 국가에서 모든 토지를 소유하고 국민은 국가에 이용료를 내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그렇게 토지가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거의 모든 땅이 사유화되어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독재자가 나라를 통치하지 않는 이상 도입할 수 없는 제도이지만, 이 제도가 시사 하는 바는 크다. 만약에 강남땅의 소유권과 이용권이 분리된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5.10부동산대책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아주 좋은 투자처로 여겨지는데, 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되면 투자할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소유권이 국가에 되면 개인들은 임대료라는 이용료만 내고 이용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한 투기가 사라지고 부동산거품도 없어질 것이다. 

강남은 그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1000세대가 넘는 판자촌이 2~3개 정도 있다. 그들은 88올림픽 당시 도시미화 사업으로 인해 쫓겨나 그 곳에 판자촌을 이루어 30년 가까이 살아가고 있다. 그 판자촌들은 타워팰리스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존재하는데 판자촌에서 타워팰리스를 바라보면 “여기 사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들이 누리는 것에 대한 권리가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강남의 프리미엄은 천원이 전 재산인 동생의 호주머니에서 천원을 꺼내서, 만원이 전 재산인 형의 호주머니에 넣어주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