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경이 종종 남자의 자존심처럼 여겨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여성이 가슴으로 자신의 여성성을 과시하려는 것처럼 남자에게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잴 수단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것으로 우열을 가리는 게 동물의 본성이다. 그리고 그 눈에 보이는 것이란 성별 대비가 확실하고 시각적으로 부각되면서, 같은 성에 한해서는 모두가 지니고 있는 것. 기준으로 삼기에 편리하지 않은가.
페니스 크기가 남성들 사이에서의 서열을 결정한다? - 사회학
'남자의 페니스 크기'는 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 떠돌던 흥미로운 얘깃거리들 중 하나였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페니스 크기를 그 사람의 다른 신체 부위로 알 수 있다는 얘기가 돌았기 때문이다. 코가 크면 페니스도 크다는 가설이 가장 유력했다. 목소리가 굵은 만큼 페니스도 굵다는 얘기도 있었다. "손가락 길이가 중요하다", "아니다 발가락 길이를 봐야한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게 큰지 작은지가, 실제로 보기도 전에 다른 신체 부위로 유추해야 할만큼 중요한건가? 어찌 됐든 끝나지 않는 토론의 대전제는 '남자의 페니스가 크면 좋다'는 것이었다.
보브 코넬은 여러가지 방식을 통해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표현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코넬은 '여성에 대한 남성 지배'를 중심으로 그 방식들에 대해 서열을 매겼다. '남성다움' 또는 '여성다움' 하면 떠오르는 이념형을 가지고 만든 서열 도식 그 맨 위에는 '패권적 남성다움'이 있다. 코넬은 이성애와 결혼하는 것이 패권적 남성다움을 만드는 가장 최우선 요소라고 말하지만, 그 외에도 패권적 남성다움과 연계되는 '육체적 거칢'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성다움의 이념형이 돼버린 '패권적 남성다움'은 단순히 여성다움의 모든 형태를 복종시킬 뿐 아니라 '공모적 남성다움', '복종적 남성다움' 등 다른 모든 '남성다움'들을 누르고 특권을 차지해왔다. 육체적으로 매력적인 남성이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심지어 모든 섹슈얼리티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브 코넬은 이 '젠더 위계'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계가 미디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회화됐음은 물론이다.
ⓒ BK1news
현대 사회의 여성들이 성형외과를 찾아가 가슴을 키우고 엉덩이에 보형물을 넣는 것만큼 남자들이 페니스 크기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코넬이 말했던 것처럼 육체적으로 매력적이면, 즉 페니스 크기가 크면 특권을 차지할 수 있지만, 굳이 페니스 크기를 키우지 않아도 남자의 권력을 지지해주는 것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넬은 '위기'를 이야기한다. 남자들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던 제도-이를테면 가부장제-들이 점진적으로 붕괴하고 있다는 것과, 동성애 등 다른 섹슈얼리티들이 득세하게 됐다는 것이 그 요인이다.
코넬이 시대의 변화에 따른 '위기'와 '패권적 남성다움'의 추락을 이야기했음에도 현대의 여성들은 '남성다움'의 상징인 페니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권상우같은 몸 좋은 연예인들에 열광하는 시대는 물론 갔다. 여성들은 몸 좋은 '몸짱' 남자 연예인들에 열광하기보다는 곱상한 외모나 젠틀한 행동같은 '훈남'적 요소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얼마 전 한 여초 커뮤니티의 게시물에서 아직도 여성들이 페니스에 열광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뽀얀 얼굴에 바른 언행으로 사랑받는 남자 연예인이 의외로 페니스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진에 '다시 보인다'는 호감의 댓글들이 달린 것이다. 매력적인 남성의 얼굴이나 태도, 행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기준이 바뀌었지만 '큰 페니스'에 '남성다움'이 인정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남성다움'을 인정하는 주체는 변했다. 패권적 남성다움이 존경받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페니스가 크면 좋다'는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더 이상 남성들끼리 서로의 권력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이렇게 여성들은 페니스에 매력을 느끼고 열광하기까지 하는데, 왜 그건 교실에 그저 떠돌아야 하며 여자들끼리의 커뮤니티 안에서만 머물러야 할까. 아마도 그것은 '패권적 남성다움'이 다른 남성다움들보다 우위에 있던 시절은 지났지만, '여성다움'이 본질을 벗어나 서열에서 올라올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올라올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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