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와 민주주의. 그리고 인간 - 정치학

악의 침공이 시작됐다. 로키와 치타우리 종족은 세계의 중심부 뉴욕을 유린한다. 요절복통 끝에 화합한 영웅들이 나섰다. 화끈하게 때리고 부수고 패대기쳤다. 악의 침공은 제압됐다. 이야기의 짧음만큼이나 과정도 속전속결이다.

후련하고 또 후련함이다. 지진한 정치적 절차도 누구의 통제도 없다. 쉴드 국장, 닉 퓨리의 간섭과 계략이 있지만 커다란 영향력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영향력이 없는 데 통제는 어불성설이다. 초월적 존재들은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다가 자기들끼리 화해하고 자기들끼리 문제를 정리했다. 영웅들끼리의 갈등만 없었다면 이 사건, 훨씬 빨리 정리됐을 터다. 정말 화끈하고 속 시원한 자기 멋대로의 존재들이다.

이쯤에서 ‘현실 세계도 저렇게 후련했으면 얼마나 좋을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요즘 우리 주변에 워낙 답답한 일이 많지 않나. 캡틴 아메리카처럼 정의감에 불타는 인물이라면 그 간절함, 더하고 또 더했을 것이다.

100 분 토론에서 북한 핵, 북한 인권, 3대 세습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이상규 당선자, 종북이므로 즉결 처분. 1672억원의 추징금이 미납됐지만 29만원밖에 없다며 골프치고 호화로운 저택에서 지내는 전두환 전 대통령, 재산 즉결 몰수. 측근들의 비리가 줄줄이 터져 나오고 불법 사찰 의혹까지 제기된 이명박 대통령, 즉결 탄핵. 이외에도 각기 각각의 수많은 바람들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현실이다. 너무나도 ‘명백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들’이 명백하게 처리되지 못하는 현실.

그러나 먼저 짚고 넘어가자. 모든 문제가 명백하다면 민주주의는 왜 존재하는가. 어벤져스의 영웅들과 같은 인물들이 모두 판단하고 통치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들과 같은 초인적인 힘이 아니라 초인적인 지능으로 말이다. ‘천재들한테 정치 맞기면 되지 않냐’는 이야기다.

생뚱맞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양철학의 정초를 닦은 플라톤은 실제로 국가는 ‘철인왕’이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은 각기 자신들의 특성에 맞는 일에 종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예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2000년 전 이야기로 치부하고 싶은가. 20세기 레닌은 공산혁명을 위하여 조직적이고 명민한 혁명가 집단, ‘전위당’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는 입바른 얘기였다. 딴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고 싶은가. 북한과의 극한 대립 속에서 경제성장을 위하여 독재정치를 몸소 행하신 박정희 전 대통령도 있다.

이놈의 민주주의, 자꾸 생각해보니 은근히 필요 없는 존재인 것 같다. 역사의 성공사례들이 증명해준다. 국민들을 대표하랬더니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기만 하고 비리나 저지르고. 답답함이 지배하는 시대, 어벤져스의 영웅들, 아니 그들만큼은 못될지라도 우리를 이끌어줄 현실적 영웅들이 국가를 이끌어주길 바래야 우리의 이 답답함이 풀릴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해야겠다. 현실이 어벤져스와 같이 선악이 명백하게 갈리는가. 그리고 민주주의는 효율성을 위한 체제인가.

100 분 토론에서 시민논객이 이상규 당선자에게 돌직구를 던졌고 이상규 당선자가 그에 대해 대답을 하지 못한다고 종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종북이 선인지 악인지 우리는 검토해봐야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에 관련된 질문들도 마찬가지이며 사실상 우리네 삶은 매순간이 질문과 생각이다.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 오직, 모호함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모호함을 풀기 위해서 효율성이 대두되지만 민주주의는 오히려 그 모호함을 더욱 증폭시키는 게 문제다. 민주주의는 갈등 그 자체다. 모든 이들의 자유로운 발언이 보장되고 모든 이들의 자유로운 정치 개입이 보장된다. 역사상 이만큼 갈등의 빈도가 높았던 정치체는 없다. 그럼에도 이 비효율적인 정치체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당성 때문이다.

명백한 선과 악이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다만 자신들의 선택을 말할 수 있을 뿐이며 그리고 그에 대한 설득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국민, 다수가 선택을 했으면 그에 따르는 것. 그것이 사람들이 자명하다고 믿고 있는 정치적 평등을 존중하는 길이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생각해보자. 화끈하고 후련함은 사실 존재할 수 없다. 아니, 존재해도 문제인 것이다. 인간의 정치는 답보다 과정이기에. 과정은 빠름보다 느림이기에. 우리에게 어벤져스는 없다. 다만 역사를 같이 만들어가는 인간 군상만이 있을 뿐이다.











대륙의 어벤져스, 복수자연맹에서 배울 것 - 중국문화학

악의 침공이 시작됐다
. 뉴욕을 침공하는 외계종족에 맞서 복수자연맹(어벤져스)이 출동한다. 독안협(닉 퓨리)이 대원들을 불러 모으고 미국대장(캡틴 아메리카) 필두로 한 강철협(아이언맨), 녹거인(헐크), 뇌신(토르), 응안(호크아이), 흑과부(블랙 위도우)들이 전장에 뛰어든다. 지주협(스파이더맨)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영웅들이 신나게 때려 부수는 동안 악의 무리는 저지되었다. 속편을 암시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어벤져스 개봉이후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한동안 중국식 어벤져스가 화제였다
. 중국식 외래어가 발단이었다. 어벤져스(Avengers)를 복수자연맹이라고 번역하다니, 과연 대륙의 센스임에 틀림없다. 어벤져스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많을 테지만 복수자연맹을 못알아듣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강철협(鋼鐵俠)은 어떤가, 아이언(iron)이 주는 쇠 냄새를 강철로 적절하게 표현했을 뿐더러 일반적인 맨(man) 을 사람으로 번역하지 않고 아닌 협()자를 넣음으로써 평범한 사람이 아닌 협객의 면모를 더 했다. 넷티즌은 이 번역들이 촌스럽다며 비웃었지만 잘 뜯어보면 이보다 적절한 번역이 없다.

이런 독특한 번역은 중국어가 가진 문자의 특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 중국어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발음보다는 뜻 전달을 위주로 한다. 덕분에 광대한 영토에서 한 문자만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사람 인()자는 최남단 해남도에서나 북경에서나 사람을 뜻하며, 심지어 외국인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사람이란 뜻으로 통한다. 그러니 뜻도 모를 어벤져스를 그대로 가져오는 음역音譯이 불편할 수밖에. 단어 자체에서 뜻이 바로 드러나는 의역意譯 형태인 복수자연맹(復讐者聯盟)’이 훨씬 이해가 빠를 것이다.

물론 중국도 외래어에 대해 꽉
막힌 게 아니라 뜻이 원래 없는 외국인 이름은 음역音譯을 해서 웨인 루니는 韦恩 鲁尼(wéiēn lǔní) 같은 식으로 최대한 원음에 가까운 발음을 유지하는 번역을 쓰고 어벤져스처럼 그 자체로 뜻이 있는 단어는 복수자연맹(復讐者聯盟)처럼 뜻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의역意譯을 사용한다. 또 발음과 뜻을 동시에 잡아야 하는 기업명칭은 보통 음역音譯과 의역意譯을 절묘하게 섞어 쓴. 일례로 코카콜라는 可口可乐(크어 커우 크어 러)으로 번역해서 발음상으로도 코카콜라와 비슷하게, 뜻도 입이 즐겁다로 음과 뜻을 적절하게 번역하였다.

반면 표음문자를 쓰는 한국어는 발음을 나타내는데 더 특화되어있다
. 문자가 간단해서 배우기가 쉬우며, 무엇보다 한문을 일일이 외우지 않아도 된다! 언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쉬움이라는 조건이 달성되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한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바로 옆나라 중국은 한자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한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외래어를 적극적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그대로 직수입하는 경우가 많다. 별다방 대신에 스타벅스, 자연공화국 대신에 네츄럴 리퍼블릭 같은 식이다. 화장품 뒷면을 보면 이런 외래어 유입의 극단적인 최후가 보인다

네츄럴 허브 클랜징 폼, 마일드한 식물성 오일이 스킨 트러블을 줄여주며 퓨어한 레몬 추출물이 얼굴을 마사지해 줍니다.

도대체 이런 문구를 한국어에 포함시켜야 하는지도 애매하다
. 영어가 뒤죽박죽 섞여 제대로 이해도 안되는 한국어라면 차라리 알파벳을 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인 선택 아닌가. 이 같은 외래어, 특히 영어의 엄청난 유입 속도를 보면 외래어가 우리말을 잠식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편하자고 만든 한글이지만 편리함을 추구하다 문자자체가 도태될 위기에 처했다.

다시 돌아와서
, 조금 촌스럽더라도 헐크에게 초록덩치같은 이름이라도 붙여주면 어떨까. 녹거인(綠巨人)’이라는 중국산 헐크도 있는데 좀 더 친근한 한국산 헐크도 생기면 좋지 않겠나. 마이클 스코필드에게 석호필이라는훌륭한 한국 이름을 붙여줬을 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