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여섯이었나, 그보다 더 어릴 때,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너무 궁금했다. 아빠는 “아빠 뱃속에는 정자가 있고 엄마 뱃속에는 난자가 있는데 이 둘이 만나면 아가가 생긴단다.”라고 대답해주었다. 나는 또 다른 궁금증이 들었다. “배 안에 있는데 어떻게 둘이 만나?” “음...... 오줌이 나오는 구멍 옆에 있는 데로 정자와 난자는 나오거든.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꼭 껴안으면 만날 수 있어.” “옷을 입었는데도 뚫고 만날 수 있어?” “음......음...... 옷은 벗어야지.” “아, 옷을 벗는구나!” 아빠는 더 이상 별다른 설명을 덧붙여주지 않았고, 나는 그 후로도 한참동안 엄마 아빠가 침대에 누워서 껴안고 자고 있는 동안 개미처럼 조그마한 정자와 난자가 몸속에서 걸어 나와 서로 만나는 것으로 ‘정자와 난자의 만남’을 상상했다.

시간이 지나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진 성교육 시간에도 내가 정말 궁금했던 ‘그러니까 어떻게 만나는 거냐고’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정자와 난자의 만남으로 착상이 되고 열 달 후 아기가 태어난답니다, 까지가 한계였다. 내가 실제 정자와 난자의 만남의 과정, 즉 성기 간 결합이 포함되어 있는 섹스라는 이 과정이 무엇인지 어설프게나마 안 것은 싸구려 성인만화에 노골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그림들을 우연히 접한 후였다.

이후로 내가 학교에서 받은 성교육은 대략 이러했다. 5,6학년이 된 어느 날, 성교육 시간에 갑자기 남자애들을 다 나가라고 했다. 그리고 생리하는 애들 손들어보라 하고, 생리는 이제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증거다. 여자가 된 것이니 몸가짐을 더 조심히 하고 그날은 옷에 피가 안 비치게 조심해라. 생리대는 남들 눈에 잘 보이지 않게 손가방 같은 데 넣어서 들고 다녀라. 와 같은 팁(?)들을 나이든 여선생님으로부터 전수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경을 갓 시작하는 그 나이부터 내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는 부끄러운 것이구나, 숨겨야 하는 것이구나, 하고 배운 셈이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성교육 시간에 낙태시술 장면이라고 하면서 조그마한 태아와 무언가 피투성이 모자이크 사진, 낙태는 나쁜 것! 과 같은 문구가 쓰인 책자, 혹은 조각난 태아의 모습을 찍은 영상물을 보았고, 반마다 무서워서 우는 애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러한 결과는 ‘무책임한 성관계를 해서 벌어진 거다’라는 엄숙한 지도를 받았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책임 있는 성관계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너무 부자연스러우리만치 섹스에 관한 언급은 금기시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섹스를 해서는 안되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이다. 그냥 하지 말라는 거다. 방점은 무책임이 아니었다. 성관계였다. 이런 성교육을 통해 성관계라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하고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하는 나쁜 것이 아닌가, 겁을 집어먹는 학생들도 분명 많았을 것이고, 그 후의 삶에까지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몸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소중하다'는 것만을 강조하는 것이 올바른 성교육일까?



그런데, 학교는 사실 학생들이 어른이 되고나서의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교육하는 곳 아닌가? 실제로 미성년자간의 성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가는 차치하더라도 열아홉의 미성년자가 다음해가 되어 스물이 되면, 저절로 성관계에 관한 적절한 지식을 깨닫고 똑똑하게 자기 몸과 상대방의 몸을 배려하며 성생활을 구가하는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의 총 의무교육 기간 12년을 거치고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활 모습 중 하나인 섹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몸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운 것이 딱히 없는 것이 현실이다. 5년 전에도 그랬으니 지금이라고 얼마나 나아졌을까 싶다.

가장 기본적인 피임지식조차 제대로 교육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미성년자라 해도 성관계를 갖기에는 충분히 성숙하기에 관계를 가졌지만, 제대로 된 성지식이 부족하여 “여자친구 배를 누르니까 정액이 나온 것 같아서 안심했어요.” “낙태하려고 배를 때렸어요.” 같은 일도 왕왕 일어난다. 이러한 수준은 20대가 된다고 해서 저절로 제대로 된 지식을 얻게 되어 저절로 개선되는 것이 아니므로 가까스로 피임이라는 개념을 깨우쳤으나 “경구피임약을 남친이랑 관계 갖기 이틀 전부터 먹기 시작했는데요, 피임되는 거 맞죠?”와 같은 총체적 난국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결혼해서 아이를 갖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기반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모두들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이 답일까? 성지식의 부족은 단지 학교 내의 성교육으로 인한 문제만은 아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성이란 내놓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암묵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성관계 혹은 몸 그 자체를 음란한 것, 불건전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과 지나치게 성스러운 것이나 소중한 것으로 미화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양쪽 모두 문제가 있다. 이는 많은 수의 미혼여성들이 산부인과에 가길 꺼려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성관계를 갖는 데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들게 하기도 하고,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난 성생활 혹은 성적 지향은 이해하지 못하는 편협함을 유발하기도 하며, 처녀막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나 성폭행과 같은 사건에서 피해자가 입은 실제 가해에 더불어 ‘소중한 몸’을 ‘더럽혔다’는 자책 혹은 다른 이들의 걱정을 빙자한 2차 가해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일반피임약 전문의약품 전환과 사후피임약 일반의약품 전환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여러 반응은 우리 사회의 현실이 어떠한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여성들은 대부분 불만을 표시했는데, 사실 피임약은 일반피임약이든 사후피임약이든 의사의 처방이 있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 그 중 사후피임약은 약의 특성상 응급 상황에서 되도록 빨리 사용할수록 약효가 있기 때문에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한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일반피임약은 그동안 약국에서 손쉽게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갑작스러운 이런 결정에 어떠한 밥그릇 싸움의 논리가 껴든 것은 아닐까 의심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남자가 콘돔을 끼지 않으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후피임약이 있으니까 하면서 여자한테 강요할 것이다”, “성관계를 의사한테 허락받으러 가는 기분이다!”, “미혼여성이 산부인과에 가면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에 일반피임약을 통한 피임은 더욱 어려워졌다.”와 같은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피임약 <머시론>


여성들의 불만은 예상된 것이었지만, 불만의 면면을 살펴보니 사실 뜨악한 면도 없지 않다. 우선 콘돔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남자, 까지만 해도 벌써 성관계를 거부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런데 그에 더하여 일반적인 피임방법으로 사후피임약 복용을 요구하는 남자와 성관계를 굳이 맺는 위험을 감수할만한 어떤 엄청난 보상이 있는지 궁금하다. 자기 몸에 대한 기본적 안전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에게 다른 이들이 뭘 어떻게 도와줄 수 있단 말인가? 만약 강제로 성관계를 맺으려 한다면 이것은 이미 피임 방법의 문제를 넘어서서, 강간이기 때문에 법적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 맞다.

또한 피임약 처방을 받기 위해 산부인과 의사에게 나의 성관계와 같이 개인적인 사항을 알리게 되는 것이 껄끄럽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산부인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실제 일반피임약은 그 용도와 기대하는 효과에 따라 다른 제품을 사용할 수 있고, 또한 환자 개인마다 알맞은 호르몬함량과 약물 복용에 따른 반응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인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 그리고 성관계 횟수나 파트너의 수, 최근 생리날짜와 같은 사항들을 밝히는 것은 정확한 산부인과 진료를 받기 위한 기본적인 사항들이다. 사람들이 내과에 진료를 받으러 가서 언제부터 기침이 시작되었는지, 가래를 얼마나 자주 뱉는지, 최근 무엇을 먹었는지와 같은 사항을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다. 내과에 가서 하는 이야기들도 충분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이다.

산부인과 의사에게 환자가 성관계를 얼마나 자주 하는지 혹은 최근 생식기 주변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와 같은 사항 역시 내과 의사에게 환자가 어제 아이스크림을 한꺼번에 많이 먹었다는 사항이 갖는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또한 성관계를 주기적으로 갖는 가임여성이라면 피임약 처방을 위해서라도 산부인과를 자주 내원하는 것은 범국민적 여성건강 측면에서 좋은 일이다.

사실 이런 불만의 끝판왕은 산부인과 가는 미혼 여성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의견이다. 이러한 생각은 특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산부인과 간 미혼 여성을 보고 수군거리는 중년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더욱 강화된다. “어린 학생들도 중요한 시험이나 여행과 같은 이유로 생리를 미루기 위해 피임약을 복용하는데, 사전피임약을 병원에서 처방하면, 그런 학생들도 병원 가서 피임약을 처방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 기록에도 남을 수 있고 좋지 않다.” 이러한 발언에서는 산부인과 진료 기록을 마치 전과 기록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시선이 무서워서 거기에 억눌려 있을 것인가? 오히려 이번 기회에 보편적인 피임방법의 약제인 일반피임약을 산부인과에서 처방받게 됨으로써 산부인과에 대한 이러한 편견어린 시선들을 걷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병원에서 매번 처방받는 비용이 부담된다거나, 너무 바빠서 산부인과에 갈 시간이 없는 여성들 역시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일반피임약의 의료보험 적용대상 지정을 요구하거나, 현실적으로 병원에 갈 시간을 낼 수 있을만한 환경을 조성하도록 촉구하는 쪽으로 불만을 터뜨리는 편이 모두를 위하여 좀 더 진보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혹시, 산부인과에 가는 것 자체가 피임약을 처방 받는 것으로 보여서 남들이 제가 성관계를 갖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까봐 겁나요, 하는 상태인 거라면, 진심으로 안타깝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번 논란이 산부인과에 대한 왜곡된 이해와 성을 대하는 뒤틀린 태도를 뿌리부터 바로 잡을 수 있는 시초가 되진 않을까 기대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