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석달간 20여억원을 쓰고 100여명의 인원을 투입한 디도스 특검의 결말은 허무했다. 박태석 특별검사팀은 선관위 디도스 공격을 지시한 '윗선'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특별검사팀은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한 김효재(60)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을 불구속기소하며 수사를 마무리했다. 경찰과 검찰에 이은 세 번째 수사였지만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해소된 의혹은 없었고 명확한 정답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뉴시스


윗선이 없었을 수도 있다. 도처에 깔린 의혹들이 상식적으로 윗선의 존재를 상상케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말 그대로 그건 의혹일 뿐이다. 합리적인 수사과정,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밝혀진 사실과 증거가 중요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번 수사에서 야당이 분개하고 국민들이 허탈해 하는 것은 ‘결국, 윗선은 없었다’는 상투적인 결과 때문이 아니다. 그 결과를 뒷받침할 수사과정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다는 게 공분의 이유다. 특별검사팀은 최구식 의원의 비서 공현민씨가 온라인 도박 합법화를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결과 자체부터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비서인 공씨가 온라인 도박 합법화를 위해 헌정질서를 유린할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명은 더 황당하다.

특검팀은 평소 정보기술업체를 운영하던 강아무개씨 등이 도박사이트를 운영해 큰 수익을 얻자, 공씨가 도박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강씨 등에게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주려 했다고 주장한다. 특검팀 관계자는 “공씨가 강씨에게 정치권에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위세할 필요가 있었고, 강씨의 디도스 공격이 성공하면 정치권에 이를 알려 온라인 도박을 합법화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도 말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설명이다. 공씨가 온라인 도박 합법화를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황당함을 인정하더라도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왜 굳이 디도스 공격을 택해야 했을까. 디도스 공격의 성공과 온라인 도박 합법화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었을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산더미다.

이제 문제는 이런 상황이 불러올 ‘불신’과 ‘후폭풍’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스폰서 검사, 천안함 폭침 사건, 민간인 사찰 등등. 여기저기서 의혹이 터져 나왔지만 대부분의 사건들은 그저 덮어지고 또 덮어졌다. 이제는 속된 말로 ‘특검의 할애비’가 와도 국민들이 믿지 않을 판이다. 의혹을 합리적으로 풀지 않는다면 ‘불신’이 증가하고, ‘불신’이 증가하면 합리적이지 않은 의혹, ‘음모론’도 판치기 마련이다. 실제로 의혹이 해결되지 않을 때마다 인터넷 상에는 각종 ‘음모론’이 들끓었다. 자연스레 정부의 공신력이 떨어지고 사회는 갈등으로 치닫는다.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모든 의혹을 섣불리 덮기보다 느리더라도 신중히 파헤쳐 나가자. 필요하다면 야당의 국정조사도 수용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낱낱이 파해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만이 땅에 떨어진 공신력을 회복하는 길이고 ‘음모론’으로 촉발된 불신과 갈등을 봉합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