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시민사회가 함께 키워 온 보편적 복지 담론이 암초를 만났다. ‘무상 시리즈’의 첫 실패작이 등장한 것이다. 3일, 기획재정부가 0~2세 영아의 무상보육에 대한 재검토를 선언했다. 재원 부족이 결정적인 이유다. 서울 서초․강남구의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보육료가 당장 이번 달에 고갈되며,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도 올해 안으로는 예산이 바닥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지자체에 추가 예산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함에 따라 무상보육 중단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

무상보육이 위기를 맞은 원인으로 재정난이 지목되면서 선별적 복지론이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 부자집 아이의 어린이집 비용까지 국민의 세금으로 책임져 줘야 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는 작년 8월 무상급식과 관련한 서울시 주민투표 당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비롯한 당시 한나라당 인사들이 강력히 주장했던 맥락과 일치한다. 이번 무상보육 예산 부족에 대해서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대책 역시도 0~2세 영아의 무상보육 제도를 폐기하고 하위 70% 계층에게만 선별적 복지를 지원하는 식의 방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번 무상보육제도의 파행 운영이 보편복지 자체에서 온 것인지 성급한 밀어붙이기식 정책 도입으로 인한 것인지는 따져보아야 할 문제다. 무상보육은 지속적으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해 왔던 야권이 아닌 정부와 새누리당, 여권이 밀어붙인 정책이다. ‘총선용 포퓰리즘 정책’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는데, 이는 무리한 일정으로 총선 직전에 급속도로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가 3월에 이미 예산 고갈 가능성에 대한 경고를 보내며 무상보육 도입을 재고할 것을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예상된 재정 고갈, 예정된 정책 실패였다. 제대로 된 재원 마련도 하지 않은 채 일단 시작부터 하고 보았던 게 무상보육의 실패 원인이라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지방자치단체에게 거액의 예산을 배정하도록 강제한 것에서도, 무상보육 도입 이후 어린이집 이용자 폭증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데서도 정책 추진에서의 ‘아마추어리즘’이 느껴진다. 정책 실패의 요인은 이렇듯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밀어붙이기식 추진에 있었다. 이는 보편적 복지 자체의 타당성은 무상보육의 실패와 별개로 평가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상보육에서 문제가 일어났다고 해서 다른 보편복지 정책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법은 없다. 정부가 무상보육 도입 과정에서 범했던 실수들을 다시 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재원을 먼저 마련하고 정확한 복지 수요를 예측한 상태로 충분한 검토 이후에 보편복지 정책을 도입한다면 ‘재정 부족’이라는 다소 우스운 이유로 정책이 번복될 일은 없을 것이다. 보편복지는 돈이 많으면 하고 돈이 없으면 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를 어떻게 설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철학의 문제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반값등록금 등의 충분히 타당성 있는 정책들이 무상보육이라는 ‘보편복지의 나쁜 예’ 하나로 인해 좌초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시스템으로 가려면, 그에 맞는 국가 운영 철학을 바탕으로 보편복지는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