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150을 맞아, 고함20에서는 대선주자 5인에 대한 생각을 ‘20대가 보는 대선주자’라는 주제에 담아냈습니다. 20대의 시각에서 대선주자 5인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한 후, 장점과 단점, 바라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대선주자들의 청년 정책을 비교하면서, 어떤 후보가 청년 문제 해결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얼마 전 손학규 후보가 내놓은 슬로건인 ‘저녁이 있는 삶’은 이번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여타 슬로건들과 비교해 볼 때, 가장 탁월한 것이었다. 입에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손학규가 대선 후보로서 추구하는 가치와 나아가려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하는 슬로건이다.

저녁이 있는 삶

저녁이 있는 삶이라, 확실히 멋지다. 손학규는 슬로건과 같은 제목의 책 <저녁이 있는 삶>을 출간하며, 서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대화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식의 이분법, 내가 잘살기 위해선 누군가는 못살아야 한다는 식의 이분법에 반대하는 가치”라고 설명했다. 손학규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서민들에게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실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고, 청년층의 일자리 부족 역시 큰 문제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답답한 노동현실에서, 야근과 격무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는 잃어버린 저녁과 잠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좌절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출근하는 기쁨을 안겨줄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는 구호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멋진 슬로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손학규의 인기를 적극적으로 올려주는 데까지는 이어지지 못하는 듯하다.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제쳐놓게 되는

일찍이 ‘정치동물’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인은 신문의 부고란을 빼고는 어디든 나야한다”고 했다. 정치인은 그만큼 주목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요컨대 손학규의 대선 후보로서 가장 큰 약점은, 그가 손학규라는 것이다. 그의 희미한 인상과 범생이 이미지와 존재감 없는 풍모는, 사람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좋은 슬로건과 테제를 설정할 줄 아는 능력, 꽤나 건실한 행정가로서의 정치경력을 갖추고도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흐음, 손학규라......” 하고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이다. 손학규가 손학규인 것, 그것이 바로 손학규의 가장 큰 약점이자, 한계이다.

손학규가...... 그래서 어떤 사람이더라?

고백하자면, 나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을 접한 뒤에야 손학규라는 사람을 처음으로 구글에서 검색해보았다. 그 전에는 도통 손학규가 무슨 일을 해 왔던 정치인인가, 지금은 뭘 하고 있는가 알지 못했고 알아볼 만한 흥미도 생기지 않았다. 이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손학규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봐도 아슴푸레한 가운데 조각난 기억들만 떠오르는 것이었다. 손학규가 한나라당이었을 때 꽤 잘나갔었던 것 같은데 뭐 때문에 한나라당 탈당해서 민주당으로 옮겼지? 그 때 왜 손학규가 민주당 당 대표가 된 거였지? 뭐 무슨 국토대장정 같은 것도 했는데 그건 뭐였더라? 물론 이 질문들에 답이 바로 바로 떠오르지 않은 것은 나의 무식함과 식견 좁음이 가장 큰 이유겠지마는, 이는 사실 손학규라는 인물 자체의 존재감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진짜 문제는 존재감 그 자체다

경기고-서울대-옥스퍼드 정치학 박사의 학력에, 교수님 소리를 들으며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바로 여당의 국회의원으로 화려하게 데뷔하여 정치생활을 시작한, 이른바 ‘엘리트 코스’는 손학규의 탄탄한 기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중과의 괴리,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가장 ‘핫’한 안철수 역시 정치 경력의 부분을 빼면 우리나라 엘리트 중의 엘리트 아니던가? 엘리트라는 것은 사실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민들을 통합하는 능력만 갖춘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미국인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대통령인 JFK 역시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손학규도 젊은 시절에는 조영래, 김근태와 같이 학생운동을 주도하고, 노동운동가로서 수배를 당해 쫓기는 몸이 되기도 했고, 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고서도 재야인사이자 진보적 학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랬던 그가 민자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을 때, 많은 이들이 변절자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아직도 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이유로 그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민주당으로 옮겨오자 ‘정치 철새’라고 조소당했지만, 100일 간의 민심대장정을 펼치고, 그 역량으로 민주당의 대표가 되어 지금까지 그 정체성을 쭉 이어온 것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이 될 만한 사실이자 어찌보면 더 큰 역량이 될 만한 사실들 사이에서 무엇을 내세우고 무엇을 빼내어야 할 지 고민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것이다.
 

부고란 이외의 공간이 필요하다

지금의 20대에게 손학규는 희미한 존재감의, 앞에서 두 번째 줄 정도에 앉아 제 공부와 주어진 제 할일은 열심히 하지만 별로 친해지고 싶은 타입은 아닌, 동창회 때마다 같은 반 애들에게 자기소개를 다시 해야하는 얌전한 범생이 누구, 정도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손학규의 이런저런 면면들보다도, 그냥 그가 누군지 자체를 잘 모른다. 결정적으로 지지를 꺼리게 하는 이유가 명확할 수록, 반대로 적극적으로 지지하고자 하는 층 역시 확실히 확보할 수 있다. 지금처럼 미적지근해서는 죽도 밥도 안되는 것이다. 손학규에게 필요한 것은 차라리 손학규는 이것이 문제다! 라고 미친 듯이 비난받아도 좋은, 그렇게라도 주목받을 수 있는 '부고란 이외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을 짜 내어 장악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대선 후보 손학규에게 달려있다. 그것이 손학규를 '적극지지하기에는 뭔가 미적지근한 후보 이상'이 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