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명 AV(Adult Video)배우인 아오이소라와 아사미유마가 지난 2010년 홍보와 행사참여를 위해 한국에 왔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들의 방한 소식이 성인물에 규제를 걸고 있는 한국에서 화제가 됐다는 것이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서 두 배우의 소식이 전해졌고 인터넷 언론뿐만 아니라 몇몇 일간지도 이들의 방한을 보도했다. 당시 일본에서 한류열풍을 일으키던 걸그룹들의 대항마이거나 한국의 연예계 진출 의도가 있을지 모른다며 이들의 방한 이면에 있는 목적에 대한 추측기사를 쓰기도 했다. 아오이소라는 2011년 또 다시 한국에 왔고 포털사이트 검색결과 2010년~2011년 방한과 관련된 내용을 다룬 기사는 372건에 달한다.

이상한 점은 일본 AV배우의 방한에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던 언론들이 음란물에 최근 발생한 통영 초등생 납치 살해 사건의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이다. 성폭행의 촉매제인 음란물에 출연한 AV배우들에 단지 눈길을 끌 수 있는 기사 소재로만 여긴 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셈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25일 하단 광고를 제외한 3면 전체에 음란물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성적충동을 억제하기 힘든 사람이 포르노를 지속적으로 보다보면 정신적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전문가의 입을 빌려 통영 살해 사건의 피의자인 김점덕뿐만 아니라 수원 납치 살해 사건의 피의자 오원춘 등 4명의 범행에 음란물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거라고 주장했다. 다른 언론들도 김점덕이 범행 전에 음란물을 봤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통영 납치 살해 사건의 피의자가 경찰에 끌려가고 있다. ⓒ 연합뉴스

 

이는 여성들의 짧은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것만큼이나 번지수를 잘못 짚은 주장이다. 음란물이 성범죄의 촉매제라 인정한다면 여성들이 옷을 입는 것도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성범죄는 자유를 누리는 여성의 책임이 아니라 성적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일부 남성들의 문제며 이를 알리기 위해 슬럿워크(Slut Walk)운동이 세계적으로 벌어진 바 있다. 조선일보에서 근거로 제시한 연구도 사실관계가 다르다. 조선일보는 아동을 학대한 150명 중 1/3이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 음란물을 봤다는 연구결과를 인용했지만 아동학대의 몇%가 성범죄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음란물과 성범죄가 상호연관성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음란물을 성범죄의 촉매제라 부르는 이들이 음란물이 지금처럼 유통되기 전 벌어진 화성연쇄살인 사건 등 여타 성범죄들은 어떻게 판단할지 궁금하다.

언론의 음란물 ‘때리기’가 사건의 책임소재를 밝히는 데 혼란을 가져온다는 문제도 외면할 수 없다. 성범죄에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법원, 법을 고치지 않는 국회,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찰, 재발을 막기 위해 노력을 다하지 않는 정부가 느껴야 할 죄의식은 성범죄자 못지않다. 특히 경찰이 음란물을 이용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책임회피를 하려는 모습은 유감이다. 경찰은 통영 사건 피의자 컴퓨터에서 음란물이 정확히 몇 편 있는지 발표했고 이를 토대로 한 경찰관계자는 “음란물에 빠진 범인이 충동적으로 범행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경찰이 보이고 있는 태도는 2005년 성폭행을 저지르려했다 미수에 그치고 재판까지 회부됐던 범인을 소홀히 관리·감시한 자신들의 책임을 줄이려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강간상해는 무기징역 또는 징역 7년 이상을 선고하도록 돼 있었지만 당시 만취했다는 이유로 징역 5년을 선고한 법원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는 음란물과 관련된 내용에 3면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음란물을 규제한다해서 성범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미국 콜로라도에서는 또 한 번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반응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범인의 범행 방식이 영화 <다크나이트>는 한 장면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아무도 영화 상영을 그만두라고는 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이 총기의 사적 소유를 허용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성범죄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엉뚱한 데 책임을 돌리는 짓을 그만두고 국회에 관련 법률을 개정할 것을, 법원에는 범행에 걸맞은 처벌을 내려줄 것을, 경찰에는 본분에 충실 할 것을, 정부에는 재발을 막기 위해 법적 처벌뿐만 아니라 정신적 치료도 시도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후에 총기 구매가 늘어나는 비극이 우리나라 전체에 걸릴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