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중, 고등학교의 졸업 시즌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인생에서의 한 단계를 무사히 마치고 새로운 한 발을 내딛을 준비를 하고 있다. 끝과 새로운 시작이라는 위치에 선 학생들을 위해서 졸업식은 정말로 뜻 깊게 기억에 남도록 치러져야 한다. 하지만 입시 위주의 비정상적인 교육 체제 아래서 비정상적인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은 축하만 받아도 모자랄 졸업식 날에도 다시 한 번 상처를 받고 있다.



일반적인 고등학교의 졸업식 풍경, 단상에 올라가 상을 받는 학생들만이 행사의 주인공인 느낌이 든다. 내빈들이 단상 위에서 학생들을 내려다 보는 모습도 위압감이 느껴진다. (이 사진은 기사에 실린 D 고등학교 졸업식과 전혀 관련이 없음)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minji2254?Redirect=Log&logNo=120101343884)


지난 4일 열린 D 고등학교의 졸업식.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고 등교하고 있었고, 많은 학부모들도 저마다의 소중한 자녀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꽃다발을 들고 학교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어쩐지 졸업식 식순을 보자니 졸업식장에 더 이상 머무르기가 싫어진다. 그 흔한 송사와 답사도 없고, 심지어 졸업식 노래도 없다. 국민의례, 학사 보고, 졸업장 수여, 상장 수여, 이사장 훈화, 교가로 마무리 되는 졸업식이라니! 안 봐도 비디오다.

아니나 다를까 이 날의 졸업식은 학생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 이러한 저러한 방법으로 노력하였으며, 그 결과 거의 모든 학생들이 대학에 합격하여 100%에 가까운 대학 합격률을 기록한데다 예년에 비해 훨씬 많은 학생들이 소위 ‘SKY’라 불리는 명문대와 의약계열 대학에 진학했다는 학사 보고로 시작되었다. (심지어 이 학사 보고가 일정 부분 '거짓말'이라는 것도 모두가 알고 있다. 당장 자리에 앉아 있었던 아이들 중에 이미 재수학원에 등록한 애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더욱 가관이었던 것은 졸업장 수여 순간. 졸업생들을 대표하여 졸업장을 받으러 나오는 학생회장의 등 뒤로 사회를 보는 교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학생회장인 OOO 학생은 XX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 합격하였습니다.” 정말 ‘헐’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니 대체 졸업장을 대표로 받는 학생의 합격대학을 함께 졸업장을 받는 학생들과 그 뒤에서 자리를 빛내주고 있는 학부모들이 들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졸업장에 이어서, 상장 수여가 이어지며 이러한 풍경은 계속된다. ㄱ상을 받는 A학생은 ‘XX대학교 경영학과’에 ㄴ상을 받는 B학생은 ‘XX대학교 의대’에 합격했단다. 계속되는 어이없는 상황 앞에 장내도 술렁거린다. 더욱 더 아름다운 상황도 발생했다. 단상에 수상하러 나가는 학생이 어느 대학에 진학할 예정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아이고. 저 학생은 재수를 하게 되었거나, 혹은 그다지 입시 커트라인이 높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구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것이 과연 졸업식인지 ‘수능잘본학생찬양궐기대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D 학교의 졸업식은 학생들의 성장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우리 학교 짱임’을 알리기 위한 쇼에 불과했고, 졸업생들은 그 쇼에 동원된 관중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고등학교 시절 내신 성적이 좋았거나 수능 성적이 좋아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일찌감치 차례를 맞춰 졸업식의 맨 앞자리를 배정받고 차례차례 상을 받는다. 이렇게 한 차례 학생들을 구분지어 ‘품행이 올바르고 봉사 정신이 투철한’(이라고 쓰고 '교과 성적이 좋은'이라고 읽는다) 학생들에게‘만’ 상을 수여한다. 단상에 올라온 학생들의 이름과 진학대학을 호명하면서 또 한 번 그들 한 명 한 명 사이의 우열을 가린다. 이것이 과연 졸업식에서 벌어져야 할 풍경이란 말인가.

이 고등학교의 경우가 조금 더 과하긴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졸업식 풍경이 이렇다. 각종 상장과 상품, 꽃다발들로 두 손을 꽉 채운 소수의 학생들과, 졸업장에 개근상장, 졸업 앨범만이 달랑 손에 들려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조를 이룬다. 입시 지옥 속에서 몇 등이라는 숫자 하나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온 청소년들이 졸업식 날에도 다시 한 번 자신의 현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졸업하신 모든 분들, 졸업까지 정말 고생 많으셨고 축하드립니다. 멋지게 새로운 시작도 해내시길!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lovej3264?Redirect=Log&logNo=90080552133)


최근 졸업식 집단 따돌림 영상으로 인해 청소년들의 비정상적인 막장 행태가 도마 위에 올라왔지만, 그를 탓하기 전에 그들을 그렇게 만든 비정상적이고 냉혹하기만 한 학교의 현실을 먼저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졸업식이 왜 상장 수여식이 되어야 하나. 졸업생들을 축하하고, 졸업생 스스로가 만들고 즐기는 ‘축제의 장’이 될 수는 없을까.


졸업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 졸업생들 자존감 느껴

본문에 소개된 D 고교와 같은 일반적인 졸업식과는 다르게 치러진 A 고교의 졸업식은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식순에서 상장 수여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졸업식 모두에게 단상 위에서 졸업장을 수여한 것. 보통 대부분의 학교들에서 학생회장에게만 졸업장을 수여한 후, 나머지 학생들은 교실에서 졸업장을 주는 것을 생각하면 혁신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 졸업장을 받는다. 한 학생, 한 학생이 졸업장을 받으러 올라갈 때마다 하얀 스크린 위로 현재 단상에 올라온 학생의 이름과 사진, 그리고 쓰고 싶은 한 마디가 띄워진다. 이 한 마디는 학교에 남기고 싶은 말, 그동안의 추억, 앞으로의 각오 등에 대해서 졸업생들이 직접 미리 작성한 것이다.

학생들은 서로서로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추억을 되새기고 서로를 마지막으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모든 학부모들도 자신의 자녀가 단상에서 졸업장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른 학교의 ‘상장 수여식’에선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뭉클한 감동의 현장이고 참교육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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