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지금은 지난 얘기일 뿐이지만 박주영 선수는 병역회피의혹에 휩싸여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장기 체류가 가능한 모나코 영주권으로 병역의무를 피하려 한다는 의심을 샀기 때문이다. 짧은 선수생명 안에서도 한창인 20대중반에 병역의무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심정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어찌 그뿐이랴. 박주영 선수가 여론의 공분을 샀던 까닭이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마쳤거나 ‘시간 낭비’밖에 되지 않을 지도 모를 그 의무의 이행을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 남성들은 모두 군대라는 두 글자 앞에서 공감하거나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 대상이 연예인이든 운동선수든 누구든 간에 반응은 매한가지 일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8월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상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내린 판단도 여기에 힘을 보탰다.

이런 가운데 지난 15일 법원(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기피한 병역 거부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겠다는 의미 있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 김모(20)씨가 병역법 88조 1항 1호에 대해 낸 위헌법률심판제청에 따른 것이다. 이 조항은 현역 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씨처럼 종교적 신념 등의 이유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한 징병대상자들은 대부분 이 법률에 의해 처벌을 받고 전과자가 돼왔다. 우리나라가 대체복무제를 허용하지 않는 독선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국방 의무를 대다수 청년들에게 강제하고 있는 탓이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또 다시 같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여타 사건과 마찬가지로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다. 이런 형편에서는 토론을 거쳐 합의에 이르는 절차적 정당성이 병역 의무에 부여될지에 의문이 가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대체복무제도 이 같은 ‘다수의 논리’에 막혀 무마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양심적 병역 거부의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은 ‘대다수의 남성들이 가기 때문에 너희도 가야 한다’는 다수의 논리 앞에서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다.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본적인 합의 도출 과정조차 가지지 못했다는 의미다. 또한 보수 성향의 남성 다수로 구성된 헌법재판소가 공정한 판관으로서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기 힘들다는 점도 고려해야할 부분이다. 위헌법률심판제청이 단지 ‘무모한 도전’이 아닌 이유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형사 처벌을 통해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하는 것은 '부작위에 의한 양심 실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밝혔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면 병역 거부자를 형사처벌 하지 않고도 해당 조항이 달성코자 하는 병역자원 확보와 국가 안전보장 등 공익을 이룰 수 있는데도 이를 도입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개개인의 차이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요구하는 보편적 인권 기준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1998년 이미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하여 각국의 현행법과 관행을 재검토할 것을 요청했을 정도로 오래된 미래다. 우리나라의 인권감수성과 병역 제도는 14년, 아니 그 이상 뒤쳐져 있는 셈이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국가 안보 등이 우려된다는 주장 역시 구체적ㆍ현실적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반박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기초 군사훈련만을 받는 해외봉사활동, 전의경, 해경, 의무소방 등 우리나라에는 이미 병역을 대신 할 수 있는 여러 수단이 존재하지만 이들이 국가 안보에 누를 끼친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당국에서 나서 지원자를 모집하거나 훈련병들에게 종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는 살인 무기 자체를 거부한다는 선언이며 대체복무제는 병역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힘든 의무를 부여해주자는 것이다. 총을 잡기 싫어 감옥을 가는 이들이 군대보다 힘들 수 도 있는 대체복무제를 노린다는 생각은 단순함을 넘어 순진하지 않은가. 헌재의 올바른 판단과 여론의 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