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성부의 설문 결과 남학생 중 49.8%가 성희롱 행위를 한 적이 있다고, 여학생의 39.2%가 성희롱 피해를 겪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조금 더 최근인 2009년에 실시된 커리어의 조사에서도, 응답자인 대학생 768명 중 23%(여성의 33.3%, 남성의 6.8%)가 대학생활 중 성희롱 또는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대학 내 성희롱을 다룬 통계들을 보면 그 숫자 참 충격적이기 그지없으나, 대체 왜 그런 숫자가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내 주변의 일은 아닌 것 같고, 뭔가 과장된 수치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곤 한다. 하지만 통계의 숫자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사례들이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다.

고함20은 이번 ‘대학 내 성희롱’ 기획의 일환으로, 실제 많은 성희롱 피해사례를 겪었거나 알고 있는 여대생들을 만나 실제로 어떤 남성의 행동들을 여성들이 성희롱으로 느끼는지, 또한 얼마나 성희롱이 보편적으로 꾸준히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로 하였다.

이번 인터뷰에 응해준 학생들은 각각 24세, 22세의 여성이며, 각각 서울 소재 대학의 공대생과 의대생이다. 두 학생이 처한 학과 환경은 남성과 여성의 비율의 3:1 정도 되어 여학생이 소수인 환경이었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실제 여대생들이 느끼고 있는 성적 수치심의 정도가 얼마나 극심했을지 그 고통을 느껴볼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0&aid=0002075682)



도 넘어선 언어적 성폭력

여대생H씨 :
아무래도 공대다 보니까 아무래도 성희롱 가능성이 높은 지대라서 감시가 심하긴 해요. 그래서 신체적 접촉에 비해서는 언어 성희롱이 많은 편이죠. 말 그대로 ‘넌 왜 그렇게 생겼냐’, ‘살 좀 빼라’, ‘앞판 뒷판 구분 안 간다’처럼 언어적으로 생긴 걸 공격하는 건 욕도 아니에요.
제 경우에 최근에 기분 나빴던 건 ‘너 얼굴 작고 조그만 줄 알았더니 가슴은 크구나?’ 라는 말이나 ‘어제까진 짧은 치마 잘 입더니 오늘은 왜 안 입었어?’ 등이 있는데 이런 건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요. 성희롱이 기준이 보통 듣는 제가 기분 안 나쁘면 상관없는 거니까 그 쪽에선 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기분 나쁘게 들을 가능성이 있는 말은 시도하면 안 된다고 봐요.
비슷한 걸로 자기는 나름 돌려 말한다고 한 말 같은데 ‘너 가슴 성형했냐? 종아리 수술했냐? 둘 다 너무 이뻐서 계속 봤다’ 라고 했었나? 다시는 그 선배 쳐다보기도 싫어지는 말이죠.
여대생G씨 :
제가 어떤 공연에서 피아노 반주를 한 적이 있는데요. 그 때 복장이 탑 원피스 같은 거였어요. 끈 없고, 어깨 드러나는... 근데 막 80년대 중반 학번 이런 선배가 와서 제가 반주자라고 소개를 했더니 ‘아, 그 가슴?’ 이러는 거에요...
아니 반주복이 좀 야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술자리라지만, 당사자 앞에서 옆에 사람 많은데서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요. 옆 사람들 전부 다 못 들은 척 하더군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묻지마 성추행

여대생H씨 :
제가 1학년 때 레포트 쓴다고 여름에 빨간 민소매 원피스 입고 자료열람실에 책장 사이에 있는 작은 책상에서 책 뽑아다 놓고 읽고 있었거든요. 제가 책상에 앉아있어서 뒤를 볼 수 있을 리가 없는 상황이었죠.
그러고 있는데, 누가 갑자기 뒤에서 확 껴안는 거에요. 그냥 안는 것도 아니고 두 손으로 가슴을 만지더라고요. 놀랬긴 했는데 그게 도서관이어서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거든요. 제가 뒤돌아 본 시점엔 이미 사람이 없었고요. 전 저만 당한 줄 알았는데 중앙도서관에서 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인가 봐요. 자보가 붙어서 범인이 잡힌 적도 있어요.


아는 여자는 성적 농담의 대상?

여대생H씨 :
남자들끼리 모였을 때 여자 이야기 하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요. 여자 A, B, C가 있다고 했을 때 A가 빠졌을 때 다른 여자 B, C 앞에서 그 A의 성적인 부분을 가지고 농담하면 굉장히 기분 나빠요. 그런 경우가 꽤 있거든요. 내가 빠지면 내 이야기 한다는 소리잖아요.
그러면서 A하고 나를 자연스럽게 비교하면서 ‘네가 이건 A보다 낫잖니’ 뭐 이런 식인데 어찌되었건 그게 내가 걔보다 낫든 안 낫든 그런 눈으로 나를 본다는 것 자체가 싫어요. 근데 문제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그건 A이야기 한 건데 왜 네가 기분 나쁘냐는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거죠.
여대생G씨 :
남학우가 그 자리에 없던 다른 여학우에 대해 ‘쟤 보면 흥분된다’는 식의언행을 당사자가 아닌 여학우가 있는데서 했다, 혹은 남자들끼리 같은 과 여자 동기들의 삼부수치라든가 등등에 대해 하나하나 이름 거론해가며 논했다, 여학우가 있는 앞에서 음담패설을 해가며 반응을 살핀다. 이런 것들 모두 성희롱 아닌가요?


여자는 조신해야 하지만, 섹시댄스는 춰야 해?

여대생H씨 :
제가 좀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 ‘앗 나 XXX 술 먹고 싶어’ 이런 식으로 이야기 잘 하거든요. 근데 연구실 선배 하나가 ‘넌 무슨 여자애가 그렇게 노니락 거리냐고, 술 먹고 싸돌아다니고’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성적 역할 같은 걸 규정짓고 하는 이런 말들은 기분 좀 나쁘죠.
여대생G씨 :
매년 새내기들이 동아리 공연 때 춤을 추는데요. 후배들이 공연 곡을 짜면서 여자애들한테 꼭 ‘아브라카다브라’의 가인 솔로부분의 야한 춤을 추게 하려고 하더라고요. 바닥에 엎드리고 하는 그 춤을요. 여자애들이 부모님들도 다 있는 앞에서 그걸 시키면 너무한 거 아니냐고 했는데도 그걸 안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여자애들이 당연히 그런 걸 춰야한다는 식으로 말하는데요. 여자애들이 수치심을 느낄만한 일을 남자애들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bleakeye?Redirect=Log&logNo=100098705613)



술 먹고 제정신이 아닌 척, 은근슬쩍 터치를...

여대생H씨 :
학기 초에 대규모 술자리에선 성추행이 잘 안 일어났던 것 같은데요. 오히려 소규모 술자리로 발전하면서 오빠들 술 먹는데 꼬마가 끼는 경우가 생겨요. 저야 이제는 나이 먹을 만큼 먹어서 그쪽에서 그렇게 오면 더 쎈 발언으로 닥치라는 듯이 말해줄 수 있지만 새내기 때는 그게 안 되잖아요.
오빠들이 술 먹고 나서 어깨동무 하는 건 정말 보통 일이어서 그거가지고 뭐라 그러는 게 이상할 지경이에요. 같이 자주 어울려 다니면 그 손이 어느 순간 내 허리로 접근하는 것도 느끼고;;
여대생G씨 :
술 마시다가 취한 남자 동기가 제 허벅지에 손을 올렸었는데요. 정말 손을 부러뜨리든 얼굴에 술을 부어버리든 하고 싶었고 그리고 술 취해서 손잡고 있자는 선배도 정말....
더 심한 경우는 입학 초기에 새벽 2시쯤 전화 와서 불려나갔는데 ... 아, 그때는 신입생이라서 잠들어서 못 받은 척 하면 된다는 걸 몰랐었거든요. 아무튼 취한 선배가 막 허리에 손대고 무튼 그랬는데 남들은 취한건지 못 본 척한건지 아무도 말리질 않고 심해지려 할 때마다 화장실 갔다 오면서 버텼는데 아무도 자리 안 바꿔주더라고요.
더 심한 건, 한두 시간 있다 파하고 집에 가는데 그 사람이 집에 데려다 준다고 하질 않나 그러더니 결국 그 선배가 집 앞에서 뽀뽀해달라고............. 막 그래서 도망치듯이 집에 들어가서 혹시 밖에 있을까봐 방에 불 안 켜고 핸드폰 조명만으로 씻고 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혹시 불 켜지는거 보고 몇 층 어디 사나 알까봐....


여학생들을 불편하게 하는 교수님의 이상한 행동

여대생G씨 :
교수님 중에 여학생들한테만 계속 자기 잔으로 .... 술 주는 사람이 있어요. 그것도 솔직히 좀 찝찝하면서 기분 나빠요. 한두 번이면 잔 주고받는 거 그러려니 하는데 남학생들한테는 그냥 짠하고 건배하는데, 여학생하고는 건배 안 하고 자기 잔에 굳이 먹이니까 좀 많이 이상하죠.


수치심 느껴도 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

여대생H씨 :
사실 대놓고 총여학생회에 신고하거나 자보를 붙일 만큼 큰일은 잘 안 일어나요. 근데 자잘하게 내가 참자하고 넘어가는 일들은 꽤나 많죠. 근데 이걸 크게 벌이는 것도 사실 좀 웃겨서 이게 모르는 사람한테 성폭행 당한 거면 소송하고 그 사람 묻어버리고 그러면 되는데 친하게 지내던 오빠가 나한테 그런 농담이나 작은 스킨십을 던졌다고 그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겠다는 이런 생각은 사실 하기 어렵잖아요.
여대생G씨 :
우리 과가 저런 성추행들이 좀 심한 편인 것 같은데 사실 저도 오늘 말한 것들 동기들한테 말 안 했고, 동기들도 서로 이런 건 말하지 않아요. 서로 말해서 까내야 그런 일이 덜 할 텐데요. 개인적으로 나섰다가는 오히려 저만 학교를 앞으로 못 다닐 수도 있어요. 선배들과 관계 유지가 안 되니까 말이죠. 의대 특성상...
심지어 이를테면, 03학번 선배가 후배 손을 만지작거리거나 하면, 그럼 옆에서 05학번 정도 되는 선배가 선배는 그러면 안 된다고 이러면 성희롱이라고 신고하겠다고 농담조로 말하긴 하는데, 제대로 나서서 떼어주거나 하거나 이런 건 전혀 없어요.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bleakeye?Redirect=Log&logNo=100098705613)



실제로 들어본 여대생들의 성희롱 경험담은 남자 대학생인 필자가 들어도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주변에서 있을 법한 일들도 몇 가지 있었다. 누군가가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대학생 모두가 공유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