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한번만 자자. 내가 결혼하재? 연애만 하자는 거잖아.”

만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은 여성에게 마구잡이로 들이대는 이 남자. 귀엽다고 해야 하는 걸까? 파렴치한으로 몰아야 하는 걸까? 술자리에서 조개탕을 시키고 ‘다른 조개가 먹고 싶다는’ 이 남자. 애정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2006년 개봉과 동시에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연애의 목적’에서 유림(박해일)은 극 중 초반부터 홍(강혜정)에게 강도 높은 애정공세를 펼친다. 좋게 말해서 애정표현이지, 사실 성희롱이나 다름없다.


2008년에 발표된 <대학생들의 성희롱 경험 실태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성희롱 가해자들은 가해 행위를 친밀감의 표시로 여긴다고 한다. 성희롱 가해자의 대부분이 성희롱에 대해 가볍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은 순수하게 애정표현을 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그러나 가해자는 상대방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갖고 애정표현을 하는 전 과정이 일방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또한 누가 보아도 불쾌감을 선사할 수 있는 상황을 애정이나 친밀감의 수단으로 포장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장서희, 수애 주연의 ‘회전목마’(2003)를 생각해보자. 우섭(김남진)은 자신을 버리고 결혼하겠다는 은교(장서희)를 납치해 범한다.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다. 우섭의 사랑은 애닲고 간절하지만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일방적인 사랑 표현은 폭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특별히 타인에게 성적인 불쾌감을 주기 위해 성희롱을 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희롱인지 아닌지의 판단 기준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옳다. 가해자 측에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필요한 부분이다.

가해자가 고려해야 할 피해자의 생각은 어떠할까? 동일한 조사에 의하면, 피해자는 본인의 성(性)적인 면이 부각되거나 좋지 않은 이미지 형성을 두려워해 피해사실을 숨기기 쉽다. 즉,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성적인 사건과 연관되었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항의한다고 해서 아무런 대책도 마련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으며, 문제의 가해자 및 동료들로부터 받을지도 모를 보복을 두려워한다.(린다와이너,1994)’

이들은 보통 모욕감, 불쾌감, 자기비하, 공포 등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신체적 증상으로까지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또 다시 성희롱의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지속적인 불안감을 지닌 채 살아가게 된다.



1998년에 방영되었던 류시원 김희선 주연의 ‘세상 끝까지’라는 드라마에서 이와 같은 예를 살펴볼 수 있다. 서희(김희선)를 짝사랑했던 민혁(김호진)은 세준(류시원)에게 가려는 서희를 붙잡기 위해 겁탈을 강행한다. 사랑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이라고 자위하지만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 피해자의 입장에 선 서희는 한동안 멍하니 시간을 보내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는 남들에게 전혀 알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특히 사랑하는 세준에게는 더더욱 말하지 못하고 피해사실에 대한 죄책감과 공포를 지속적으로 느끼며 살아간다.

성희롱 피해자가 두려워하는 눈길에는 제3자에 대한 평판이 강하게 들어있다. 제3자인 타자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제3자의 시선에 대한 재미있는 설문결과가 있다.

전체 응답자 중 55.9%가 성희롱 판단기준이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입장에서 보는 견해가 높았으나 남녀별 차이에서 남성(55.1%)의 경우 성희롱인지 아닌지의 판단기준을 가해자 측면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높았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문화 분위기 하에서는 강자인 남성의 시선으로 약자를 바라보는 경향이 뚜렷하다.



“네가 얼마나 흘리고 다녔길래 남자애가 그러겠니?? 색기가 넘쳐서 그런거지.”

“걔가 원래 옷을 좀 야하게 입고 다니고, 그럴만한 구실을 어느 정도 제공한 거 아니야?”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이런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캐릭터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에서 유정(이나영)은 중학생 시절,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엉망인 채로 집에 돌아와 엄마한테 털어놓지만 다 큰 계집애가 처신을 잘못했다며 오히려 따귀를 때린다. 그 이후 유정은 자책감과 엄마에 대한 원망 등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자기애가 부족한 인물로 자라난다.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는 등 전반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이어나간다.

좀 더 개방적인 옷차림을 하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다닌다고 성적으로 희롱당해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다. 겉모습은 개성에 불과하지 성희롱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는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 제3자의 입장을 잘 살펴보면 유기적인 연결고리로 묶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성희롱을 가볍게 여기는 가해자와 그런 가해자의 입장을 자신도 모르게 체화하는 제3자의 입장이 있다. 주류의 입장에서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완화되었다고는 하나 남성우월적인 사회구조에서 강자는 남성일 수밖에 없다. 주류의 시선도 남성의 시선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보통 종합대학의 남녀 비율은 최소 6:4에서 8:2로 분포되어 있다. 공대가 강화되어 있는 학교의 경우에는 남자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그나마 교육이나 인문 분야가 강화되어 있는 학교의 경우에 여성의 비율이 40%를 웃돈다. 결국 대학 내의 여성 또한 약자로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제3자의 입장은 그 사회의 주류 시선을 대변하므로 가해자의 시선과 결합될 수밖에 없다. 가해자와 제3자의 결합 뒤에는 움츠러든 피해자만이 존재한다. 결국 피해자의 입장은 비주류로 취급되어 가벼운 문제로 치부되기 쉽다. 대학 내 성희롱 문제가 가볍게 처리되고 예방대책이 철저하게 세워지지 않는 것도 여기에 있다.

잘 생각해보자. 우리의 시선이 피해자의 시선과 일치되어 있는지, 혹은 가해자의 시선과 일치되어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