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정말 ‘강간의 왕국’이다. 성폭행 사건 소식으로 인터넷 포탈이 뒤덮였다. 노소 가릴 것 없이 성폭행의 대상이다. 가해자도 사장부터 동네주민까지 천차만별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어디 있어야 안전할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 형국이다. 성폭행 보도의 홍수 속에 여성들의 불안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중이다. 그런데 이 끝없는 불안을 느끼는 도중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단어가 ‘도가니’다.

‘도가니’가 상영되고 대한민국은 분노했다. ‘그런 파렴치한 범죄가 장애인 교육시설에서 일어나다니!’ 분노할 만 했고 분노해야 마땅했다. 언론도 따라서 분노했다. 연일 그 사건을 재구성하고 건수가 될 만한 모든 스토리를 취재해 올렸다. 사람들은 그 기사를 보고 더욱 분노했다. 언론은 그렇게 자신의 역할을 모두 수행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두가 잊고 있었던 게 있다. 언론의 본질적 임무 중 하나가 ‘고발’이란 사실을. ‘도가니’의 원작자도 ‘도가니’의 감독도 언론인 출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언론인이 조명하지 못한 혹은 안한 사실을 그들이 ‘고발’했다. 언론은 그들이 ‘고발’한 사실에 엎혀 갔다. 뒷북을 쳐도 아주 크게 쳤다.

작금의 성폭행 보도 역시 무엇이 다를까. 파렴치한 사건이 벌어지자, 성폭행 보도는 줄을 이었다. 혹시나 해서 정말 성폭행이 갑작스레 증가했는지 찾아보았다. 밑에 그림에서 보듯이 미약하게나마 증가 추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전체 성폭행 신고율이 10%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믿을 만한 자료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성폭력 보도는 이전과 다르게 폭발적이다. 마치 이전에는 특이한 사건 말고 크게 문제될 것 없었던 대한민국이 ‘강간의 왕국’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말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사건이 터져 다시 뒷북은 시작됐다.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성폭행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제야 조명이 되고 있다. 피해자, 피의자 가릴 거 없이 신상 정보를 유포하며 언론은 성폭행 사건을 연일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되돌아보자. 이전까지는 이렇게 중대하고 시급한 사회적 현상을 왜 이렇게 경쟁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나. 보도되지 못한 악랄한 사건들이 수백, 수천가지는 있을 것이다. 아니, 성폭행 당한 피해자들의 심정은 모두 비슷할 것이기에 수만가지 사연이 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제야 대한민국은 ‘강간의 왕국’이 되었나.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사건이 터지면 받아 적어 알려주는 게 언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인가. 궁금하고 또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