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보여지다

  파놉티콘(Panopticon)은 Pan-모두를 Opticon-보다 라는 뜻으로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이 처음 생각해 낸 지나치게 효율적인 형무소를 말한다. 감시탑은 어두운 데 반해 죄수들의 방은 환하기 때문에 죄수들은 감시탑에 있는 사람에게 노출되는 상태가 된다. 파놉티콘이 진짜 무서운 감시 시스템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죄수들은 감시탑의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감시자의 눈길을 더욱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실제로 감시탑에서 누군가가 감시를 하는지 보다 자신이 감시당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들을 통제할 수 있다. 보는 이에게 일방적인 통제의 권한이 주어지고 보여 지는 이는 약자가 되는 지배구조가 등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권력이라고 하면 주로 엄청난 재력을 등에 업은 경제인의 특별사면 혹은 정치판에서의 입김으로 법을 좌지우지 하는 국회의원을 떠올린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돈과 권력을 만들기 위해서 그들이 이용하는 것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과 정보인 것이다. 나의 개인정보를 분석하여 친절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들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이 정보를 가지고 우리의 시시각각을 관찰하는 주체가 있다면 그것의 목적이 단지 대중에 대한 관음증적 관찰인 것일까.


당신은 얼마나 민감하십니까?

 당신이 회원 가입한 인터넷 사이트가 몇 개인지 기억하는가. 때때로 처음 들어가 보는 웹 사이트라고 생각하고 한참을 둘러보다 회원가입을 하게 된다. 이미 가입되어있는 주민등록번호라는 팝업창에 귀찮은 회원가입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됨에 안도하고 ‘내가 언제?’라는 생각과 함께 고개를 갸우뚱 한다.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를 기입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사이트에 가입할 수 없다. 개인정보 활용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해야 가입됨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떠도는 나의 개인정보가 ‘☆이대리5000만원즉시대출☆’ 스팸문자로 돌아오고 ‘VIP스페셜파티에 이민재님만 특별히 초대합니다.’ 라는 오싹한 문구의 스팸메일로 도착한다.
 경품 당첨 시 선물을 발송하기 위하여 꼭 기입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매번 주소를 기입하나 단 한 번도 경품을 받아본 적은 없다. 중요한 정보를 핸드폰으로 전송해 준다고 하나 그런 중요한 상황은 좀체 발생하지 않는다. 주민등록등본을 떼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쇼핑몰에 가입하면서 실명인증이 필요한 이유는 모르겠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이름을 물으면 도를 아십니까로 확신한다. 정색을 하며 누구시냐고 따지듯 되묻는 우리의 넘치는 개인정보보호의식(?)이 웹상에서는 이리도 관대하고 너그러워질 수가 없다. 그들은 당신의 생년월일과 출신학교, 결혼여부와 본인조차 잘 모르겠는 취미와 특기에 대한 대답까지 요구한다. 모든 질문사항에 고분고분히 대답하고 나면 회원가입의 특권이 주어지고 회원가입 축하 메세지와 더불어 성년의식이라도 치룬 것처럼 칭찬해 준다. 회원가입 후 엄청난 별천지가 펼쳐져 있을 것만 같지만 달라지는 것은 매주 도착하는 회원전용 이메일이 한통 더 늘어났을 뿐이다. 


  관리 혹은 감시의 이름으로 학생들의 정보를 조회 해 오던 숙명여대는 신상정보유출사건을 계기로 학생들이 학내 커뮤니케이션에 적극 참여하지 않고 주저할 것이 염려된다고 밝혔다. 인터넷을 통해 밝힌 의견과 신념이 범죄가 되자 정부 눈에 거슬리지 않는 연예인 악성댓글에 적극 참여 중인 일부 네티즌의 모습으로 얻은 선견지명이리라.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1월 26일부터 진상조사 및 차후대책과 관련하여 학생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또 자신의 정보가 스크랩된 학생 정숙명(가명)씨는 학교의 미온적인 대응이 계속된다면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신상정보유출사건 후 “이 독이 저희에게 쓴 약이길 바라겠습니다.”(닉네임: 인증이요) 라는 글을 남긴 숙명여대 학생처럼 이 사건이 인터넷의 클릭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우리들에게 쓴 약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