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대학 생활에 대한 ‘꿈’만 꾸다가 처음으로 캠퍼스의 땅을 밟던 그 날, 나의 눈과 기분을 단번에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등굣길에 쭉 늘어선 동아리 부스들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지난 시간 동안은 도저히 상상해 보지 못한 활기에 가득 넘친 캠퍼스를 보게 된 것이다. 펜싱, 승마, 볼링, 바둑, 작곡, 흑인음악, 아카펠라, 만화, 학술 등등 폭넓은 분야별로 개설된 동아리 부스들을 보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황홀경에 휩싸였었다. ‘고깟 대학 좀 오느라고 찾지 못했던 너의 취미들 혹은 능력들을 발휘해봐’라고 동아리 부스들이 손짓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경영학과, 경제학과 학생들이 쓰는 건물에 진입한 순간 나의 로망은 산산조각(?)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쨌거나 조금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동아리 부스들이 가득했지만, 절대로 같은 느낌의 ‘가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무 학회, 벤처 학회, 마케팅 학회, 로스쿨 준비 학회 등 각종 실용적 목적이 1번이 되어 운영되고 있는 학회들의 리크루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새내기 때도 그랬지만 매 학기 반복되는 그러한 풍경은 매번 나를 불편하게 한다.



강의실에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한 학생들이 들어와 강단에 선다. 프로젝터를 가동하더니 동아리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소위 ‘간지 좀 나는’ 동영상을 보여 준다. 동영상을 틀어주는 동안 다른 팀원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리플렛을 나누어준다. 어째 지난 번 총학 선거 때 선본들이 나누어 준 리플렛들보다 한 눈에 보기에도 더 많은 돈을 들인 듯 보인다.

리플렛을 열어보니 학회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준비를 하는지에 대한 소개와 함께 선배들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이 학회 출신의 어떤 선배가 어떤 기업에 취업해서 어떤 직무를 가지고 일하고 있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이러한 학회 하나쯤 들어줘야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는 사람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몇 월 몇 일 몇 시 어디에서 리크루팅 설명회가 있으니 많이 오라는 말과 함께 그들이 나가고 수업이 시작된 후에도, 자꾸만 리플렛 쪽에 눈이 간다. 강의 후에 강의실 밖으로 나와 건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데 곳곳에 인쇄소에서 찍어낸 듯 보이는 학회 홍보 포스터들이 붙어 있다.



‘경영학을 수업 외의 시간에 공부하고, 학문을 실전에서 적용하고’와 같은 말로 아무리 포장해도 결국 이러한 경영학회들의 최대 목적은 취업, 혹은 그 이후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실무 능력 개발이다. 흔히들 동아리를 통해 학습 외의 활동을 하면서 자아를 탐색한다는 둥, 취미를 계발한다는 둥의 좋은 얘기들을 하지만 이러한 경영학회들에서 할 수 있는 계발이라 함은 기껏해야 사회, 기업이 원하는 ‘나’에 좀 더 가까운 모습으로 다가가는 일일 뿐이다.

이러한 경영학회들의 모습들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다른 동아리들엔 쥐뿔 관심도 없는 학교가 이러한 실용 학회들에게는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학생들이 스스로 경영학회를 찾는다는 것이다. 마치 취업을 하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코스인 것 마냥 말이다. 고학년이 되어서도 취미 동아리 활동을 하는 친구들에게는 ‘너 아직도 그러고 있냐, 취직 안 해?’라는 말이 오가는 것은 예삿일이고, 실용학회를 일찍부터 시작한 학생에게는 ‘너 참 인생 열심히 산다.’는 말과 눈길이 보내진다.

이미 대부분의 대학에서 경영학과와 경제학과는 소위 배치표상 최상위 학과를 달리고 있고, 학문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와 상관없이 취업을 위해 이중전공(복수전공), 하다 못해 부전공이라도 하려는 학생들로 붐비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여기에 다양한 전공의 사람이 몰리는 경영학회까지. 학교는 그야말로 지성의 전당이라기보다는 경영학 천국이고, 학문의 상아탑이라기보다는 취업훈련기관이다.

취업이 매우 어렵고 20대의 미래가 불안한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학’만 보고 수년을 하라는 대로 살아왔던 우리가, 또 다시 ‘취업’만 보고 하라는 대로 살아야 하는가? 그것이 정답이 아님은 명확하다. ‘동아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만이라도 대학생들의 낭만이 보호받고 커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