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를 얼마나 멋지게 쓰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네임드’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트위터의 환경은 ‘20대 논객’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발굴해냈다. 본명보다 ‘소시오(@socio1818)’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송준모(25) 씨도 20대 논객 중의 한 명이다. 이글루스 블로그에 준 논문 수준의 논쟁적 글을 게재하는 사회학과 학부생으로 2010년 이미 블로거들 사이에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트위터가 유행한 이후에는 20대 트위터리안들 사이에서 유명인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송 씨는 중대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트위터를 통해 입장을 표명하고 통계 자료를 찾아 제시하는 등의 준 언론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의 트윗들은 리트윗을 통해 트위터 유저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비 오는 신촌의 한 카페에서 송준모 씨를 만났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그의 언어는 칼처럼 날카롭다기 보다는 편안하고 차분하고 조곤조곤했다. 하지만 질문에 대해 바로바로 정제된 단어를 사용해서 논리정연하게 답하는 모습에서 그의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두 시간여에 걸쳐 SNS, 20대 논객, 국내 정치 세력, 20대와 정치 등 폭넓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Q. 근황이 궁금하다. 트위터를 그만뒀던데.

졸업 후에 번역 일을 하면서 대학원 준비를 하고 있다. 사실상 ‘청년 백수’ 상태라고나 할까. 트위터의 경우엔, 사색을 거치지 않고 정념을 실시간으로 표출하는 트위터 상의 발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게 됐다. 이글루스에 포스팅할 때는 글의 주기나 글의 길이가 모두 길었다. 트위터로 온 이후엔 단행본을 쓰다가 학교에 낼 레포트를 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논리 구조나 근거, 자료 소스 등이 모두 부족하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치 있는 경구나 단속적인 사고에 매몰되는 것에도 경각심이 들었다. (Q. 금단증상 같은 것은 없나?) 페이스북을 트위터 대용으로 쓰고 있어서 괜찮다. 지금은 페이스북을 통해 조금 긴 길이의 포스팅을 올리고 있다.

Q. 트위터를 할 때는 다른 유저와 논쟁을 벌인 일이 많았다. 특히 전직 한국대학생포럼 의장인 윤주진 씨와의 논쟁과 ‘현피’(실제로 만난 것)는 트위터 유저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극단적이거나 근거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보면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키보드 워리어’ 기질이 한 몫 했던 것 같다. 윤주진 같은 경우엔 트위터에서 하는 말들을 보면 변희재의 말을 가감 없이 수용하거나, 전투적으로 멘션을 날리는 부분이 있어 충돌하는 부분이 많았다. 실제로 만났을 때는 온라인으로만 봤을 때보다 대화가 좀 됐는데, 트위터에서와는 좀 간극이 있었다.

Q. 최근 공지영, 진중권 등 트위터에서의 논쟁을 하다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파워 트위터리안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논쟁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트위터는 생산적인 소통의 방식일까?

사실 유명인들이 트위터에서 논쟁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도 경각심이 들었다. 논쟁의 내용보다도 많은 분들이 실시간 멘탈 붕괴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게 ‘저러지 말아야지’ 싶었다. 예를 들어 조국 교수님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젠틀하신 분인데 트위터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젠틀하지 않은’ 언변을 보여주기도 했다. 트위터 상의 논쟁은 소통한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보수 진영의 유저와 논쟁을 벌일 땐 평행선을 달리는 느낌이다. 그러나 상대의 반론에 대해 반론하는 작업을 통해 내 근거를 공고히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무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Q. 기성 언론에서는 2030세대와 SNS를 연결지어 보도하며, 트위터를 청년들의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언론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2030세대 중 SNS를 이용하는 비율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다. 특히 SNS 상에서 정치화된 네트워크 일상적인 네트워크 간의 분화와 단절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는데, 언론은 정치화된 네트워크 쪽에 집중해 특정 논리를 과대 대표하는 오류를 범했다.

Q. 20대 논객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대 논객이 우리나라 담론 시장에서 갖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0대 논객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것이 조금은 민망하기도 했다. 특별히 목적이 있어 글을 써 왔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독창적인 의견이나 학술적 성과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겨레, 경향, 한국 등 일간지에서 마련한 2030 칼럼 란을 봐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 딱히 필자들이 독특한 논지들을 전개하기 때문이 아니라 젊은 논객들에 대한 흥미로움 때문에 고정 칼럼 지면이 만들어지고 하는 것이다. 사실 20대에 독자적인 테제를 주장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타고난 머리에 엄청난 공부량도 뒷받침되어야 하니까. 개인적으로는 20대 논객은 번역가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기성 논객이나 학자들 중에서 자신의 이론과 부합하는 글을 학습해 20대에게 풀어 소개하는 중간 가교의 역할이라고나 할까.




Q. tvN 끝장토론 칼럼 란에 올린 자기소개를 보면 ‘특별히 마음에 드는 정치세력이 없다’고 썼다. 이유가 뭔가?

일단 새누리당의 경우엔 구 권위주의 세력에 대한 청산과 제어를 적절히 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타협은 불가피하지만, 과거의 목소리와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형벌 포퓰리즘도 그렇고, 복지에 대한 마타도어(흑색선전)나 색깔론이 그런 경우다.

민주당은 과도하게 정공학에 매몰되어 있다고 본다. 정책을 권력의 부차 요소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민주당이 표방하는 노선이나 캐치프레이즈 자체인 개량자유주의자인 나에게 부합하는 편인데, 현실 정치에서 민주당은 권력 쟁취를 위해서라면 지금보다 우측으로 전진할 수도 있는 정치세력이다. NL 세력의 경우에는 민족주의와 통일에 비판적인 내 입장에서 지지할 수가 없는 집단이고, 진보신당 세력은 방향만 다를 뿐 도덕주의에 갇힌 친노 세력의 정치적 쌍둥이라고 본다. 다만 친노보다도 정치적으로 무능한 상태다.

Q. 나꼼수, 안철수, 친노 세력 등에 대해서는 특별히 비판적인 입장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진보파에 대한 애정 때문에 이쪽을 더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새누리당이야 사실 더 비판할 필요도 없는게, 새누리당이 실수를 하면 나 같은 정치적 입장을 가진 쪽에는 좋은 일 아닌가. 나꼼수와 친노 세력은 민주당이 좋은 쪽으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면이 있다고 봤다. 안철수 현상이나 나꼼수 같은 정치권 외부의 움직임은 정당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무정형의 대중에 기대고 있어 부정적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Q. 새누리당에 대해 비관적이면서도 최근에 안철수보다는 박근혜와 김종인이 이끌어갈 정부에 더 믿음이 간다고 썼고, 작년 10.26 재보선 때는 박원순 대신 나경원에게 투표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기도 하다.

비판 입장에도 일리가 있다. 10.26 재보선 때 내 입장은 박원순이 당선되든 나경원이 당선되든 한국 민주주의 전반에 큰 변화를 주진 못할 거란 것이었다. 물론 인물로만 놓고 보면 당연히 박원순 시장이 나경원보다 낫다고 봤지만, 그가 당선되면 큰 틀에서 민주당에게 안 좋은 학습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걱정했다. 나는 외부인사를 끌어들여 권력을 장악하는 그런 방식에 대해서 냉소적이다.

안철수의 경우엔 비슷하기도 하고 좀 다르기도 한데, 일단 안철수가 뭘 하겠다는 건지 아직도 전혀 모르겠다. <안철수의 생각>을 봐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들만 쓰여 있다. 박근혜의 경우 그래도 주변에 기용된 인물들을 보면 어떻게 국정을 운영할 계획인지 예측 가능한 부분이 있다. 김종인의 경우에는 일관된 기조를 가지고 말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만 보면 안철수보다는 박근혜와 김종인 쪽에 믿음이 간다고 한 것이다.

Q. 특별히 마음에 드는 정치세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다른 대부분의 20대도 마찬가지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20대가 정치적인 효능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가 모두 실패했다. 또한 정치인들이 투표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에 희망이 없다는 인식을 20대들이 갖게 된 것이라고 본다. 20대의 정치적 무관심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결국은 자신들의 정파를 찍어주지 않았다고 징징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권이 바뀌어야 한다. (Q. 박원순 서울시장으로 인해 20대들이 ‘투표하니까 바뀌더라’는 것을 체험했다는 의견도 있다.) 그 효과는 아주 제한적일 것이라고 본다. 보통 사람들의 삶에 체감되는 밀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박원순 시장으로 인해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고 있는 건 이미 적극적 관심이 있는 일부 사람들이나 서울시립대 학생들 정도 아니겠는가.




Q. 20대는 불안하다. 이 불안을 해결하려면, 그리고 20대가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려면 정치권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알려 달라.

결국 20대의 불안이란 취업과 미래의 생계 문제 아니겠는가. 20대가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것도 아닌데 ‘표준 가족’으로써의 삶을 영위하기가 너무 힘든 상황이다. 그러니까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걸 해결하려면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고졸과 대졸,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 임금 격차 줄이는 것을 장기적 과제라고 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최소한 사회적인 이동가능성이라도 높여줘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가능성을 높인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Q. 개인적인 질문도 하나 하겠다. 원래 공대생이었는데 사회학과로 전과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처음엔 왜 이과를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중고등학교 땐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정말 대책 없이 이과를 선택했다. 고등학교가 남녀공학이었는데 좋아하던 친구가 이과를 간다고 해서 따라간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친구와는 같은 반이 되지 못했다. 대학에 처음 왔을 때는 세라믹공학 전공이었는데 적응 문제도 있었고, 이 공부 자체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친구 추천으로 사회학과 전공과목인 ‘역사사회학’을 수강해 보고 나서 큰 감명을 받아 전과를 결정했다.

Q. 정치권에 제안하고 싶은 정책이나 공약이 있나?

노동조합의 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 근거가 있는데 먼저 정당의 기반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노조라고 해서 꼭 진보 정당이랑 연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보수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노조를 통해 보수정당에 잘 반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보수적이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독일 기민당의 예도 있지 않나. 노동조합 강화는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에게 경제적 권력, 권위를 분배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재벌권력을 공격하고 해체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 현재의 경제민주화 담론은 명확한 한계가 있다.

Q. 마지막 질문이다. 누가 당선될지는 모르지만 차기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 달라.

두 가지다. 먼저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는 욕망을 버렸으면 좋겠다. 역대 대통령들은 전임 대통령과 역사 경쟁을 벌이고 세세한 민생 문제 대신 메가 프로젝트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참여정부의 경우에는 행정수도이전이나 대연정이 있었고, MB정부의 경우 4대강이 있었다. 둘째로는 정당과 연계한 정당 정부를 꾸리고 책임 정치를 해 달라고 하고 싶다. MB정부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지금 누가 지고 있나. 말기 권력인 이명박당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듯하는 박근혜당이 그냥 존재할 뿐이다. 임기 말만 되면 대통령과 정당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행태를 반복하지 말아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