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좋든 싫든 이 처참한 단어가 21세기에 나온, 20대에 관한 가장 유행한 담론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경제 상황의 급변 속에서 청년을 위한 신규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으며, 생기는 일자리들도 질 낮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조적인, 그래서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일도, 꿈도 잃어버린 88만원 세대가 ‘우리에게 일을 달라고, 또 꿈을 찾아달라고’ 직접 나섰다. 서울시 청년명예부시장팀 ‘청년암행어사’가 개최하고 있는 2012 서울 청년정담회, 그 세 번째 행사가 18일 서울시 서소문청사에서 열렸다. 이 날의 주제는 바로 ‘일과 꿈’이었다.

2012년 8월, 대한민국의 공식통계 청년실업률은 6.4%다. 하지만 청년암행어사팀의 서울 거주 청년 대상 자체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은 무려 89%에 달했다. 게다가 청년실업률 통계는 구직을 위해 교육을 받고 있는 사람, 구직을 포기해버린 사람, 취업 상태이지만 단기 계약직 등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있는 사람 등을 포괄하지 못한다. 이들을 포함한 체감에 가까운 실질청년실업률은 20% 이상일 것으로 계측된다. 기조발표를 맡은 청년부시장팀의 김민수 씨는 “구직 문제는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사회적 구조의 문제이며, 청년의 구직 문제를 사회가 해결해야만 국가의 성장 동력을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구직 문제에 관한 청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당사자 토크’ 시간에는 참석한 청년들의 ‘안습’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다. 방송국 취업을 준비 중인 대졸자 안지훈(27) 씨는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해외 영어연수를 2300만 원을 들여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 연수비는 본래 안 씨의 부모님이 아들의 결혼을 대비해 모아뒀던 돈이었다. 토목공학과에 재학 중인 한 대학생은 “국내에 괜찮은 일자리가 많지 않아, 취업을 국내에서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사우디 같은 해외로 나가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취업을 한 이후의 문제들은 더욱 슬펐다. 웹디자이너로 근무하다 사직하고 공무원을 준비 중인 청년 최이진(가명,31) 씨는 “잦은 야근에도 불구하고 야근수당을 받은 일이 없었다. 슬리퍼로 뒤통수를 맞거나 하는 근무 중 폭력을 당할 때는 자존감이 낮아졌다. 어차피 노예처럼 살아갈 바에야 사노 말고 공노가 되자는 마음으로 노량진에 들어왔다”고 말해 웃음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자아냈다. 이 땅의 어느 청년 하나 쉽게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사람이 없었다.

행사에 참여한 정책 패널들은 청년이 직접 고안한,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 정책을 제안했다. 청년유니온의 양호경 정책팀장은 한국 청년 일자리 문제의 가장 큰 문제로 증가하는 ‘나쁜 일자리’를 꼽으며, “첫 직장 근속연수가 1.7년에 불과하고, 1년 미만 근속자 비율이 36.2%에 달하는 세계 최악의 통계가 이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한편 “사회적 교섭을 통해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청년유니온은 서울시와의 교섭을 통해 청년고용할당제 확대시행, 표준이력서 도입, 구직비용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 청년고용할당제: 공기업을 포함하여 300인 이상 대기업에 대해 매년 3%의 추가 고용의무를 부과하는 제도
* 표준이력서: 성, 나이, 가족관계 등 차별적 정보 기입란을 없애고 영어가 필요 없는 직종은 토익 점수를 요구하지 않는 등 불합리한 점을 개선해 표준화한 이력서 양식



청년사회적기업가네트워크 대표 이학종 씨는 창업 지원 정책과 관련해 “첫발을 내딛을 수 있게 최소공간, 동료, 비용을 지원해주는 것을 넘어서 청년들의 삽질을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와 청년들의 전국 단위 네트워크에 대한 지원이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부시장 팀의 조민경 씨는 현재 일자리와 관련된 정부, 지자체 정책들이 청년의 눈높이와 맞지 않아 청년들이 오히려 민간 정보에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조 씨는 “청년일자리 정책마련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문제의 당사자인 청년들이 직접 일자리 정책 설계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정담회를 참관한 서울시 일자리정책팀의 김수덕 팀장은 “앞으로 당사자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며, 청년들에게 일을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꿈도 찾아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청년의 구직 문제가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들의, 정부의, 또 우리 사회의,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이 있을 때, 비로소 구직 문제에도 빛이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88만원 세대가 일과 꿈을 찾고, 행복하게 될 수 있을지는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다음 청년정담회는 지난 세 번의 정책 미팅을 바탕으로 정책을 디자인하는 형식으로 열릴 예정이다. 10월 9일 한글날,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