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술과 관련된 두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택시 운전기사를 폭행한 혐의로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박모 판사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박모 판사는 지난 15일  새벽 0시 20분 경 술에 취한채로 택시에 탑승,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은 운전기사를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25일 저녁 6시 반 경 보건복지부 앞에선 학생단체 ‘청년대선캠프’소속 대학생들의 시위가 열렸다. 이들은 캠퍼스 내 음주를 금지하는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에 항의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건물 앞에서 삼겹살을 굽고 맥주와 막걸리를 마시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경찰의 '주폭'근절 홍보 포스터


‘주폭’과의 전쟁을 선포해 지면을 매일 음주관련 범죄로 할양해 보도하는 조선일보는 서로 다른 두 사건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조선일보는 대학생들의 캠퍼스 내 음주금지 반대 시위는 자사의 인터넷 홈페이지 ‘조선닷컴’의 사회면 메인에 보도한 반면 박모 판사의 택시기사 폭행은 단신으로 처리했다. 대학생들의 시위에는 ‘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이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사용하면서 음주문화 전부를 예비범죄 취급하면서도 정작 진짜 ‘주폭판사’에 대해서는 슬쩍 눈을 감고 넘어갔다. 
 
대학생들의 음주 그 자체를 범죄와 연결시키는 무리수를 두면서도 판사의 취중폭행은 넘어가는 조선일보의 행태는 ‘주폭‘보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조선일보의 ‘주폭’보도는 범죄자에 대한 타자화와 주(酒)의 강조를 통해 이루어진다. 
 

26일 08:00 조선닷컴 사회면 메인. '주폭'관련 기사는 외국인과 탈북자, 대학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폭’보도에는 일반적으로 가해자가 드러나지 않는다. 음주단속을 강화했더니 범죄가 줄었다든가 지구대가 술에 취한 30대에 습격당했다는 식의 보도가 주를 이룬다. 가해자의 인격이 특정해지는 경우 그 대부분은 노숙자, 저임금 육체노동자, 쪽방촌 사람들과 같이 사회적 약자로 분류될만한 사회 집단군이다. 26일 조선닷컴 사회면 메인에 올라간 주폭관련 기사 두 꼭지도 외국인과 대학생을 목표로 삼고 있다. 조선일보는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중장년층이 다수인 자신의 독자들에게 주폭은 당신들과 관련 없으며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수준 낮은 알콜중독자’들이 일으키는 범죄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하고 있다.
 
음주와 폭력 중 본질에 가까운 폭력을 외면하고 음주만을 강조하는 것 또한 조선일보의 ‘주폭’보도의 특징이다. 그들의 관점에서 주폭은 폭력성이 술에 취해 나타난 형태가 아닌 음주가 불러온 폭력이다. 때문에 음주를 없애면 주폭까지 없앨 수 있다는 논리적 종착점에 다다르게 된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조선일보는 캠퍼스 내의 대학생들의 모든 음주에 과민반응하고 있다. 그러나 부장판사의 택시기사 폭행의 예에서 보듯이 일반적인 경우에서 주폭은 폭력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폭력의 본질은 권력관계다. 대학생들은 술에 취해도 쉽사리 택시기사를 폭행하지 못하지만 택시기사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사회고위층의 택시기사 폭행 소식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불과 석 달 여 전에도 한 경찰간부가 술에 취해 택시기사를 폭행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과도한 음주로 인해 나타나는 강력범죄와 그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분명 온정주의적 태도로 너그럽게 넘어갈만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주폭문제를 보도하는 조선일보의 행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폭력에 내재되어있는 권력관계를 외면한 채 음주만을 문제로 지적하고 사회적 약자의 타자화를 통해 모든 문제를 그들에게 전가하는 행위는 국내 최대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 신문으로써 갖출 태도는 아니다. 캠퍼스에서 캔맥주 한 잔 마실 권리와, 술에 취한 부장판사가 택시기사를 폭행한 사건 중 어느 문제가 주폭문제의 본질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는지 이제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