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다른 대학생 7명이 모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술을 마시고 스펙을 쌓기 위한 스터디를 하거나 담화를 나누는 것 등이 우리의 상식선이다. 그러나 씨앗들은 아무도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땅을 개간해 상추, 배추, 무, 땅콩, 열무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농산물들을 대학생들이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내는‘이상한’일을 벌였다. 이른바 도시농업이다. 고려대, 이화여대, 서울대에 있는 밭뙈기와 거기서 나오는 농작물들은 이들이 만든 산물이다. 황윤지 씨(26)는 자신들이 고려대 한편, 아무도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땅에 텃밭을 만들고 도시농업을 해왔던 이야기들과 도시농업 강연인 ‘레알텃밭학교’의 진행과정을  촘촘하게 정성껏 풀어낸 <청춘액션플랜>의 저자이며 ‘씨앗들’과 ‘레알텃밭학교’의 운영진이다.

인터뷰 장소는 비교적 인적이 드문 창경궁 근처로 도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동네커피’라는 토속적 이름의 카페에서 윤지 씨를 만났다. 윤지 씨는 “조용함과 여유가 마음에 들어 이 근처를 자주 찾는다”고 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농업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가 부족하며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하다”며 “20대들이 농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국가 당국과 교육기관이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윤지 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Q. <청춘액션플랜> 책이 재밌습니다. 어떤 계기로 쓰게 되신 건가요?

활동을 하다 보니 언론 노출이 있고 그래서 출판사에서 제의가 들어왔어요. 제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멤버들 대표로 쓰게 됐습니다.


Q. 책이 출판된 지 1년 정도 됐습니다. 바뀌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예. 처음에 같이 하던 친구들이 거의 빠졌어요. 씨앗들이나 레알텃밭학교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1기와는 다르게 각자 참여한 목적이 많이 달라요. 책은 출판사에서 잡아준 컨셉 자체도 가볍고 실제로 당시에는 재미있어서 했지만 지금은 책임감이 많이 생겨서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문제도 있으니까 의미를 추구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Q. 활동을 하면서 보람 같은 게 생기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지금도 재미가 있어서 하지만 다양한 가치들을 많이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사람도 많이 만나고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농사일보다 다른 활동들도 많이 하는 편이고요.


Q. 스펙을 쌓기 위해 참여하는 대학생들은 없던가요?

그쪽 분야로 진출하고 싶은 친구들도 있어요. 그런데 스펙으로라도 이용해달라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본래 관심이 별로 없는 분야잖아요. 그렇게해서라도 참여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죠.


Q. 기업 입장에서는 남다른 경험처럼 보일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스펙들과 마찬가지일 거 같기도 하고 어느 쪽에 가까울까요?

특이하긴 한데 직무와 연관이 적어 스펙으로 도움이 안되는 것 같아요. 취업이 워낙 어려워서인지 모르겠지만 자기소개서 같은 데 쓰더라도 별다른 효과를 보진 못하더라고요.


Q. 아무래도 기업에서 보는 시각이 많이 다를거 같은데요.

기업은 단지 좋아서, 열심히 하는 것보단 성과물을 내는 걸 좋아하잖아요. 우리가 하는 일은 기업 입장에선 눈에 보이는 가치를 만들지 못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치유텃밭으로 암치료, 알콜중독치료를 하는 것처럼 환산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주말농장 한 달 빌리는데 2~3만 원인데 생산물을 팔면 만 원밖에 안돼요. 그런데 그 사이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비주류로 취급을 받으니까 반자본주의적으로 생각할 때도 있더라고요.


Q. 쿠바의 경우가 그렇지 않을까요?

쿠바는 옥상텃밭이나 지붕텃밭을 많이 하는데 우리나라는 자기소유의 옥상이나 지붕이 없잖아요. 당장 마당 지방은 생각할 수도 없고요. 저희가 당장 할 수 있다고 찾아 전파하려 한 게 대학텃밭이지만 어려움이 많아요.


Q. 아파트가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우리나라 도시 특유의 문제나 저녁이 없는 직장인들의 삶을 생각하면 도시농업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도시농업을 활성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서울은 도시의 큰형님 격이죠. 도시농업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서울이 공간적인 한계가 너무 커서 생기는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 이 일을 하면서 다른 지역에 대한 관심도 많이 생겼고요. 제가 서울에서 오래 살았는데 다른 곳으로 빨리 가야겠구나라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됐습니다. 지금 당장 귀농하겠다는 건 아니지만요.


Q. 도시의 과밀화를 우리나라 체제의 문제로 환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귀농인구가 만 명인데 귀경인구가 3 만 명이었대요. 귀농이 아무리 화제가 되도 마이너스란 얘기죠. 귀경 중에는 돌아가셔서 자연감소가 되거나 부양을 위해 농촌을 떠나는 경우도 많고요. 젊은 사람들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젠 것 같아요. 활기가 없어져 죽은 지역이라는 말도 나오잖아요. 젊은 층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농촌으로 떠나는 방법도 생각해 봤고요.


Q. 농사가 돈이 안 되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자급자족이 목적이 아니면 기계농업하고 농약도 쳐야 되는데 그것만으로도 불충분하죠. 기반시설이나 자본도 필요하니까요. 준비를 많이 해야죠.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거죠. 귀농이 아니더라도 귀촌은 가능할 것 같아요. 예술가마을 같은 것도 있고요. 자급자족만 해도 충분해요. 도시에서 누리는 생활을 농촌에서 누리는 게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Q. 농업 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생각해두신 게 있다면요?

농민기본소득이 필요 할 것 같아요. 농업에 대한 유인요인이 적잖아요. 수입은 연 천만원도 안되고요. 매일 일해서 월 몇 십만원 밖에 안되는 건데 무조건 하라고 해서는 안되는 거죠. 농민들은 기본소득 받을 만큼 중요한 존재에요. 지금은 남의 나라에만 맡기고 있잖아요. 물론 그전에 농촌생활에 관심을 많이 가져줘야 하고요.


Q. 낮은 식량자급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립성의 문제인 것 같아요. 농업은 축대나 마찬가진데 이걸 빼버리면 건물이 무너지듯 국가가 무너지죠. 지금은 괜찮지만 위급 상황에서는 무기로 이용될 수도 있고요. 생존과 연관된 문제니까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 같아요. 농업은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인데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죠.


Q. FTA를 맺게 되면 농업이 손해를 보게 되는데 어떤가요?

농업은 포기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닙니다. 지원금을 줘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로컬푸드 소비 얘기도 많이 나오잖아요. 지금처럼 지역 제철수확물을 직송해서 소비지 주민들과 연결할 수 있게 만들고 여러 행사로 사람이 관심을 갖게 해야 될 것 같아요.

 
Q. 20대들 스스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레알텃밭학교를 하면서 20대가 유리(遊離)돼있다고 느꼈어요. 접해보거나 체험해볼 기회도 없고 대부분이 도시에서 생활했잖아요. 그래도 요즘은 초등학교에 텃밭 방과후활동도 많이 생기는 등 희망이 보이고 있어요. 모든 학생들이 배울 기회를 가지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 질 것 같아요. 지금 제 또래 친구들은 그런 기회가 부족했고 관심도 부족하죠. 앞으로의 20대에 기대를 걸어야 되겠지만 지금의 20대도 조금의 관심만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있죠. 텃밭학교에 참여생들 대부분이 20대들이거든요. 필요성을 느끼는 거죠.

치마입고 농사를? ⓒ머니투데이


Q. 국가나 대학 차원에서의 변화도 필요 할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는 대학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어요. 가면 그냥 신세계가 열릴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까 학원 같더라고요. 어문계열로 특화돼있는 대학같은 경우 다른 학과의 세계같은 건 아예 모르게 되더라고요. 양질의 교양과목도 적죠. 텃밭학교 강연도 대학에 교양수업을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한 건데 전공 교수도 필요하고 그래서 장애가 있었죠. 교육과정에서 농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되요.


Q. 정치권에 제안하고 싶은 정책 혹은 대선 공약이 무엇인가요?

아까 말한 농민기본소득 같은 정책은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정치적으로는 분권형 권력체제로의 개혁이 필요해요. 대통령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갖고 있는데 이를 고수하는 건 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가 인구도 많아서 대통령이 할 일도 권력을 나눠주더라도 괜찮을 것 같아요. 권력을 나눠 줘야 국민들도 정치와 유리되지 않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대통령은 모두를 아우르는 존재가 돼야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黨)수나 마찬가지죠. 대통령이 슈퍼맨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고 봅니다. 포퓰리즘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다 짧은 시간에 무언가를 이루려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정책, 특히 교육에서는 중장기적으로 정책을 세워야 된다고 봐요.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청춘액션플랜>의 저자이자 ‘레알텃밭학교’의 운영진인 황윤지 씨가 사전에 보낸 질문지에 좋은 질문이 있었다며 기자에게 말을 걸었다. 윤지 씨는 이미 시사인, 한겨레, 경향 등 여러 기성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취재요청을 받았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대다수 기사들이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책을 출판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윤지 씨는 언론들이 “책을 읽어 보지도 않고 내용을 묻거나 텃밭학교도 직접 취재를 한 적이 없다”며 “신기하거나 재밌는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억지로 그림을 만들기 위해 겨울에 작업하는 것을 요구하거나 영글지 않은 농산물을 수확하라고 하는 것도 도 문제였다. 언론에서도 기사거리로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문제의식과 관심을 가지고 심층기사나 기획기사로 알려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