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학번으로 새로운 세상에 입문하게 된 나는 이 사실에 대해서 한없이 감사해하기도 하면서 사실 한편으로는 내가 이 시대에 20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슬퍼하고 있는 사람이야. 그것은 아무래도 정치적으로 엄청난 이슈가 되는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어서 덕분에 내 골머리까지 함께 터지게 되는 이러한 상황 때문이겠지.

이러한 상황들은 내가 다른 학번들에 비해 조금더 빨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꼭 진리는 아니다라는 당연하면서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 사실을 빨리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덕분에 작은 것 하나하나에 까칠하게 되고 인터넷에서 뉴스 클릭하는 게 두려워지고 심지어는 내 자신이 이렇게 살고 있는게 맞는가에 대한 고민도 더 심해졌거든.

물론 이런 고민들, 20대라면 누구나 하게 되는 고민이라는 사실은 인정! (생각해보니 나의 사회학 교수님은 '요즘은 애들이 애들 때 공부하느라 이것저것 생각해볼 시간이 없어서 진짜 사춘기가 대학 1학년 여름방학 이후로 오더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지.) 하지만 그래도 08년도의 '촛불'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의 현대사에 정말 중요하게 기록될 사건이라는 것만은 틀림없을 것 같아.



촛불 얘기와 함께 내 머리 속에 '정치적'이라는 개념이 박히게 된 설명을 시작하려면 2007년 12월로 나의 기억을 되돌려봐야 할 것 같아.

날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 대통령 선거는 온 나라의 hot issue였지. 당시에 아직 대학도 안 붙은 주제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선배들도 만나고 하면서 술(...)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나였는데, 그 때 대통령 선거를 하고 개표가 한참 이루어지던 그 날에 서울대입구역의 어느 치킨집에서 치킨과 함께 맥주를 먹었어.

그 때의 나는 별로 아는 것도 없고 그냥 그 때 생각은 뭐랄까 이런 거였어. BBK 때문에 안 될 줄 알았는데 그냥 경제 살려준다는 이미지 하나로 대통령이 하나 나오는구나. 그 날 선배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느꼈어. 오늘의 이 선거가 보통 심각한 선거가 아니게 되겠구나 싶은 것 말이야.

국민들이 투표를 할 때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아닐 거라는 것, (예를 들어 '시장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을 재래 시장을 살려주겠다라고 해석하신 어르신들도 많았다더라.) 그리고 '신자유주의'라는 나에게는 생소했던 그 개념에 따라 국가가 움직이게 될 거라는 것. 

당시 이명박 후보자를 싫어했던 친구들의 네이트온 대화명은 죄다 '대한민국은 죽었다.'나 '▶◀(조문)'과 같은 것들로 바뀌었고 이런 건 내가 태어나서 보아왔던 지난 대통령 선거 개표 때의 모습과는 완전 다른 모습이라서 뭔가 재밌기도 했었지.

그러니까 내가 당시에 느꼈던 것은 그런 거야. '왜 내 주변의 사람들은 다 이명박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데, 왜 그가 뽑히게 된 것일까' 대충 그런 느낌 말이지. 여권에서는 역사상 최다 득표차로 대통령이 나왔다고 말했지만, 나는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



시국에 걸맞게 미국산 쇠고기..
시국에 걸맞게 미국산 쇠고기.. by 만박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은 모두들 아는 것처럼 굉장히 엉뚱한 곳에서 터졌지. '광우병 쇠고기'라는 문제를 가지고 '인터넷 공간'에서. 급하게 체결된 한미FTA 협정에 포함된 쇠고기 관련 조항 때문에 인터넷을 중심으로 개개인들이 분노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촛불 집회'라는 형태로 나타났어.

촛불은 2008년을 정리할 때 가장 큰 키워드가 될만큼 크게 번졌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안에도 깊숙하게 스며들었었어. 우리 과 사람들은 총회를 열어서 촛불집회에 과 깃발을 들고 참가하는 것이 맞느냐 아니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지하철역에는 몇월 몇일 몇시에 어디서 촛불집회가 열리니까 오라는 소위 스티커들이 붙기 시작했지.

금방 꺼질 줄 알았던 촛불은 점점 대규모화되어서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광화문 앞을 메우기도 했고, (물론 경찰 측은 저 숫자보다 매우 작은 숫자로 발표했지만) 광우병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 의제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촛불 집회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어.



사실 본인은 촛불 집회에 나간다는 것 자체를 뭐랄까 조금은 무서워하기도 하고 귀찮아하는 사람이었어.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처음으로 거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본 게 5월 23일이었나 아무튼 신촌에서였거든.

나는 집에서 잘려고 불을 끌까 말까 하고 있었는데 아는 형한테 전화가 와서 신촌로터리로 나갔었어. "지금 거리시위대가 청계천에서 출발해서 신촌까지 왔으니까 보러 나와" 사실 약간은 뜬금 맞게 설레이는 마음도 있었고 내가 나름대로의 지성인(?)이라는 대학생으로서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있겠다싶어서 바로 나갔는데 내 눈 앞에 벌어진 풍경이 뭐였냐면, 경찰의 강제 진압 장면이었어.

South Koreans Protest Against US Beef Imports Resumption

내가 과장해서 말하네 허위 사실을 유포하네라고 말하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거기서 전경들이 가만히 서 있다가 뭐라고 큰 소리 한 번씩 친 시민들을 갑자기 둘러싸고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을 보았고, 사람들의 피도 보았어.

나는 나름대로 우리나라가 굉장히 '민주적'이라고 생각했고, (물론 그 민주적이라는 의미를 둘러싸고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서 아무리 공권력이라고 해도 그러한 폭력을 그러한 방식으로 행사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거든. 아무튼 그래서 나는 지금도 집회에 참가하는 게 조금은 두렵기도 해. 집에서 전화로까지 그런 곳은 위험하니 가지 말라는 어머니의 전화도 생각나고 말이야.





 
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조금 웃기잖아. 생각해보면 폼도 하나도 안 나. 또 사실 인터넷에서 댓글 쓰고 글 쓰는 걸로밖에 내 의견을 표출할 수 없는 우리 같은 사람한테는 또 촛불 하나 들고 몇 마디 외치는 게 가장 쉬운 정치에의 참여이기도 해. (물론 대의민주주의에서는 투표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총선까지는 3년, 대선까지는 아직도 4년인걸!)

나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고, 사실 세상의 짜여진 구조 속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것만 같은 시민들이 함께 모여 한 소리를 내는 풍경도 너무나 감동적인 것이었어.

(작년에 한참 대한문 앞에서 대치하던 5월 말의 어느 날 디씨인사이드의 어느 갤러리에서 김밥을 공수해 나르고, 잠시 쉬러 편의점 근처로 가면 시민 분들이 이거 먹고 하라고 먹을 걸 주시던 것도 기억나. 정치적 행동 자체에 낭만을 갖다 붙이고 있는 게 좀 웃긴 것 같긴 해도 말이야.)

그래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시간을 내서 촛불을 들곤 했지.

Containers
Containers by namho 저작자 표시비영리



꺼지지 않을 것 같던 촛불은 꺼졌어. 그렇게 정치에 관심 많은 것처럼 하면서 'MB OUT'을 외치던 내 친구들도 지루한 싸움에 지친 건지 스스로 재미가 없어졌는지, 여름엔 놀러가는 게 더 좋았는지 촛불을 놓기 시작했어. 올해도 몇 번씩 촛불은 다시 켜졌지만 뭐랄까 예전 같은 느낌이 조금 사라진 것 같기도 해서 아쉽기도 해.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님이 했던 말처럼 촛불에는 많은 의의가 있었지만 한계도 있었어. 또한 어떤 이가 외쳤던 것처럼 시민 단체가 개입함으로써 촛불의 모습이 처음과 많이 달라진 점도 있어. (나도 실제로 올해 6월 10일에 촛불을 들러 갔을 때, 시청에서 왜 이렇게 국회의원 분들이 많이 오셔서 연설을 하시고 우리가 단일 구호를 외치게 되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어.)

하지만 중요한 건 내 생각으로는, 우리는 앞으로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서, 우리의 권리를 위해서 촛불을 들게 될거라는 거야.
그것을 어떻게 더 잘 만들어나가냐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일이 되는 거겠지.

우리나라에서 정말 독특하게 발전시킨 문화, 그것이 폭력적으로 변질되었네라고 누가 아무리 말한다고 해도 정말 다른 나라의 집회와 비교해보면 매우 질서정연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촛불.

2008년의 촛불이 별 성과 없이 꺼졌다고 해도,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정치적 생각과는 상관 없이 촛불을 들지 않았다고 해도 나는 아직도 촛불을 믿어. 촛불이 어둠을 밝힌다는 것, 딱 그것처럼 사회를 밝혀줄 거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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