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음란물과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구분하는 기준부터 애매모호
토렌트 단속에 대한 논란 많아, IP 주소는 증거 될 수 있나
음란물 단속을 아동 성범죄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안이해
 



“나...떨고있니?”

남자들, 떨고 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때문이다. 얼마전 웹하드에서 다운 받은 음란물이 단속 대상이 되면 어떡하지? 토렌트를 항상 켜놓았는데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음란물이 공유됐다면? 이런저런 걱정이 들 것이다.

가장 널리 퍼진 P2P인, 토렌트를 통해서 다운받는 것까지 경찰의 단속대상이 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서 불안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실제로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서는 지난 28일, 지금까지 토렌트를 통해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소지하고, 배포한 5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8일에는 전남 여슈경찰서에서 토렌트를 통해 아동 음란물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무려 7명이 불구속 입건되었다. 이들에게는 아청법 8조 4항(아동음란물 배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8조 5항(아동음란물 소지,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적용된다.

기존에 이루어져왔던 일반 음란물 단속은 대부분 웹하드의 헤비 업로더들을 잡는 것에 초점을 맞췄지만, 아청법이 적용되는 아동·청소년 음란물 단속은 단순 소지자도 단속 대상이라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게다가 단순 소지만 하더라도 자동으로 공유가 되는 토렌트의 특성상, 소지가 아닌 배포로 처벌 받을 가능성도 높다. 또한 최민희의원등 15인과, 권성동의원 등 11인이 비슷한 시기에 내놓은 두 개의 아청법 개정 법률안이 있는데, 두 개정안에서는 전부 아동·청소년 음란물 소지죄를 법정형을 현행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1년 이하의 징역’으로 상향조정됐다. 법이 개정될 경우 동영상 하나 잘못 받으면 징역 1년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대검찰청이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내려 받은 뒤 바로 삭제하더라도 소지죄를 적용하고, 초범도 기소하는 ‘무관용 원칙’을 천명한 상태라 앞으로 아동·청소년 음란물 단속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토렌트 안에서도 계속 단속을 펼쳐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 KBS



아동·청소년 음란물 단속, 문제는 없을까?
 
 
그러나 아동·청소년 음란물의 기준 자체가 상당히 모호하다는 의견이 많다. 아동·청소년 음란물의 정의를 내린 아청법 2조 5항('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은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며...')에서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라는 부분이 지극히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네티즌들 사이에는 “성인 포르노 배우가 교복만 입어도 아동 음란물이 된다” “‘짱구도 못말려’도 음란물이냐”는 말이 떠돌면서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단속 대상에 대한 혼란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안해, 14일 경찰청은 아동·청소년 음란물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논란이 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짱구는 못말려와 같이 단순히 신체를 노출한다는 이유로 ‘음란’하다고 볼 수는 없으며, 교복만 입었다고 해서 아동·청소년 음란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내용과 상황을 종합한다고 밝혔다. 또한 다운로드 받았다가 바로 삭제한 경우도 처벌받을 수 있으며, 다만 아동음란물인지 모르고 다운받았다가 바로 삭제한 경우는 단속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청의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에도 단속 기준에 의문점이 남는 건 여전하다. 얼마 전엔 한 네티즌이 일본의 ‘R-15’라는 15세 이상 관람 판정의 애니메이션을 업로드 했다가 아동·청소년 음란물 배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일도 있었다. 물론 'R-15'라는 작품은 주인공을 야설작가로 설정함으로써 성적인 요소가 곳곳에 나타나지만, 성관계나 유사성행위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 신체 노출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아동·청소년 음란물로 규정지을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청소년이 나오는 동영상이나 애니메이션은 약간의 성적인 표현이나 뉘앙스가 들어가 있으면 전부 아동·청소년 음란물인지, 아니면 노출강도나 성적인 언어의 사용 빈도를 고려해서 판단하는지 애매모호하다.

일반음란물과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구분 짓는 기준도 문제다. 실제 출연하는 배우의 나이가 기준인지, 아니면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있는 것이 판단 기준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나이’가 기준이 될 경우 포르노 배우가 미성년자 시절 동영상을 찍었으면 원칙적으로 아동·청소년 음란물이지만, 외적으로 성인처럼 보일 경우 사람들은 그것을 아동·청소년 음란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또한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적인 상상을 유발하는지’가 기준이 될 경우 어려보이는 ‘성인 포르노 배우’가 교복 컨셉으로 음란물을 찍는다면, 이것 역시 실제 나이와 관련 없이 보는 사람에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되며, 그들에 대한 성적인 상상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아동·청소년 음란물로 규정지어질 수 있다. 일본이나 미국의 포르노배우의 나이를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을뿐더러, 단순히 교복 같은 옷차림, 학교라는 공간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기준으로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규정한다면 자의적인 해석이 난무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전반적인 내용과 상황을 종합한다고’ 하는 경찰청의 말은 미심쩍게만 들린다.

ⓒ 중앙일보



토렌트 단속, 무리수 두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토렌트 단속이다. “아동음란물인지 모르고 다운받았다가 바로 삭제한 경우는 단속 대상에서 제외”라는 말과 달리 토렌트 수사는 동영상을 다운 받았던 IP를 찾아서 추적하는 것이며 모르고 받든, 바로 삭제를 하든, 일단 수사대상에 포함되고, 배포 및 소지로 잡혀갈 수 있는 것이다.

토렌트 단속에 대해서는 네티즌들의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이 함정수사처럼 아동·청소년 음란물에 해당하는 파일을 공유하고, 그 파일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IP를 조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경찰이 동영상 제목에 한글로 ‘로리’ ‘고딩’ ‘교복’등이 써져있는 파일을 조사 대상으로 삼아서, 다운로더들이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보려고 했다는 '고의성'을 자연스럽게 입증해낸다는 이야기도 퍼지고 있다. 실제로 한 수사관은 토렌트 상에 일종의 ‘은어’를 입력한 후, 은어로 검색되는 음란물을 공유한 사람들의 아이피를 모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제목은 동영상 내용과는 상관없다는 사실을 경찰이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복’이나 ‘고딩’등은 웹하드 업로더들이 동영상의 제목을 정할 때,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하여 가져다 쓰는 일종의 ‘낚시’ 단어였다. 외국 음란물을 올리면서 단순히 나이가 어려보이거나, 교복을 입고 성행위를 하는 부분이 있으면 ‘교복’이나 ‘고딩’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아동·청소년이 나오는 셀카나 미성년자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만들어진 동영상이 있긴 하지만, 제목만으로는 그것과 일반 음란물과의 구별이 불분명하다.

수사방법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토렌트 상에서의 함정수사에 대해 “경찰도 배포했으니 공범이다” “불법행위를 통해 취득한 증거이므로 법정에서 효력이 없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무조건 위법으로 규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함정수사는 ‘기회제공형’과 ‘범의유발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기회제공형’은 범의가 있는 사람에게 범행의 기회를 주거나, 범행을 용이하게 하는 방법으로 합법적 수사방법으로 쓰이고 있다. 반면 ‘범의유발형’이란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없는 사람을 유도하여 범행을 저지르게 하는 것으로 불법이다. 여기에선 범인이 ‘범의’가 없었냐 있었냐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위법성에 대해서는 경찰의 수사 방법에 대한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파일을 적극적으로 올리는게 아니라, 단순히 공유만 했다면 경찰이 범인에게 범의를 제공해줬다고 보긴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토렌트 수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IP주소가 개인을 검거할 적합한 ‘증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IP주소는 개인에게 속해있지 않다. 이와 관련해 올 10월 미국에서는 포르노 회사가 토렌트 유저들의 IP주소를 찾아내 집단 소송을 한 사건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그러나 사건을 맡은 펜실베니아 연방법원의 마이클 베이슨 판사는 “IP는 개인에게 할당되는 게 아니라서 충분한 증거가 되지 않는다. 무선 인터넷 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옆집이나 지나가던 사람도 쓸 수 있으므로 IP주인이 받았다는 증거로는 불충분하다. IP가 아니라 컴퓨터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며 재판을 기각시켰다. 한국의 상황 역시 고시원이나 하숙집에 살면서 같은 공유기를 사용하면, 누가 다운로더인지 알 수가 없다. 또한 일반 가정집을 기준으로 식구가 4명이라면, 누가 동영상을 다운 받았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날 한시에 동시에 컴퓨터를 쓰고 있었는데, 누군가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다운받고 있었다면 경찰을 누구를 소환시켜야 할까? IP주소가 증거능력이 있는지부터 재고해 봐야한다.

 



음란물 단속이 아동 성범죄 대책인가
 
 
아동·청소년 음란물 단속은, 최근 고종석, 조두순 등의 아동 성범죄자들이 아동 음란물을 즐겨본 것으로 확인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아동 음란물을 자주 보는 사람이, 아동 성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과학적인 통계는 없다. 뚜렷한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으니, 추측할 뿐이다. 그러므로 검·경의 아동·청소년 음란물 단속을 통해 아동 성범죄를 줄일 수 있다고 장담할 수가 없는, 실효성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대책인 것이다.

외국에서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보는 것 자체가 아동·청소년 음란물 생산을 부추기고, 이에 아동·청소년 음란물 생산이 늘어날 경우, 출연하는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동시에 중대한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외국의 경우라면 아동·청소년 음란물의 철저한 단속만으로도 아동 성범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상업적으로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생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6위의 아동 음란물 생산국으로 드러났으나, 셀카가 88% 이상이며, 청소년들끼리 찍은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해외 아동 음란물은 제3자가 촬영한 동영상이 94%를 넘는다. 상업적으로 아동 음란물이 제작되는 국가와, 한국의 상황은 달리 볼 필요가 있다.

아동 성범죄의 원인은 아동 음란물이 야기한 성욕이 아니라, 남녀간 어른과 아이사이의 권력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가해자는 상대방이 약자인 여성, 아이라는 이유로 동등한 인격으로 보지 않고, 성적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이다. 지금의 권력관계가 공고해지고,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음란물을 근절해도 아동 성폭력, 그리고 일반 성폭력도 계속 일어나게 될 것이다.

성폭력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지 않고 단순히 아동·청소년 음란물 단속을 통해서 범죄를 줄이겠다는 검·경의 방침은 ‘수박 겉핥기식’ 대책일 수밖에 없다. 아동 성폭력을 줄일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은 성차별적인 문화를 개선하고 인권교육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지, 토렌트에서 음란물을 다운 받는 사람들을 잡는 일이 아닐 것이다. 정부는 아동 성범죄 문제를 ‘아동·청소년 음란물 단속’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을 버리고, 사회의 고질적이고 깊은 병을 고친다는 생각을 갖고 장기적인 성범죄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