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 토플, 텝스 중 하나를 한 번이라도 응시하지 않은 20대를 요즘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캠퍼스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가 대학생들에게 전방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가 없게 되었다. 더구나 이제는 영어시험이 장학금과도 연결된다. 엄청난 등록금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대학생들의 장학금 전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이 문제는 극히 예민할 수밖에 없다.

여러 대학교에서 토익, 토플, 텝스 등의 공인영어인증시험을 장학금과 접목시키고 있다. 접목 방식으로는 ▲학교가 자체적으로 정한 점수를 넘으면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 ▲학교 내 성적우수장학금 지급 시 영어인증시험점수가 일정 비율 반영되는 방식 ▲일정 영어인증시험점수를 넘어야만 성적우수장학금 지급 대상이 되는 방식 등이 있다. 특히 2010년 이후 공인영어인증시험 점수를 장학금과 연계시키는 학교가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영어인증시험이 교내장학금과 연관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자칫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장학금을 타는 데 훨씬 유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의의 피해자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 과목 A+를 받았음에도 토익 점수 기준을 넘지 못해 장학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학생이 생길 수도 있다.


한 학교에서 시행되는 토익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 ⓒ충청일보


 

공인영어인증시험, 어떻게 장학금에 반영되나

공인영어인증시험을 장학금에 반영할 때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기준점수 이상의 점수를 받을 시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는 주로 ‘어학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지급되며, 학비가 감면되는 식으로 혜택이 주어지는 다른 장학금과 달리 통장을 통해 직접 입금이 된다. 다만 전북대학교, 공주대학교 등 국립대의 경우에는 기성회비를 감면하는 형식으로 혜택이 주어진다. 장학금 수혜 대상 기준은 학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를 시행하는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재학 중 1회로 수혜 횟수를 제한하고 있다. 그 대신 이중수혜가 가능해 다른 장학금과 동시에 받을 수 있다. 또한 이들 대학 중에서는 일정 수준의 이수학점과 취득학점을 만족해야만 어학장학금을 지급하는 학교도 있고, 서울여자대학교나 아주대학교처럼 어학성적이 눈에 띄게 많이 오를 경우 따로 장학금을 주는 학교도 있다.  

교내 성적우수장학금에 공인영어인증시험 성적을 반영하는 대학교도 있다. 성신여자대학교, 인천대학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성신여자대학교는 엄격하게 공인영어인증시험 성적을 반영하는 편이다. 일정 점수를 넘어야만 성적우수장학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각 학년마다 기준 점수에 차별을 두는데, 4학년의 경우 토익 800점(토플 cbt 240점, 토플 ibt 94점, 텝스 690점)을 넘어야만 장학금 수령이 가능하다. 인천대학교 역시 작년부터 한 학기 등록금 전액을 지급하는 ‘최우수장학금’ 수령 조건에 일정 기준의 영어점수를 추가했다. 

동아대학교와 한국교통대학교는 공인영어인증시험 점수가 장학금 산정 기준에 포함되는 경우다. 동아대는 일부 학과의 경우 토익/토플 성적표가 있어야만 성적우수장학금을 받을 수 있으며, 토익/토플 점수와 평점을 합산하여 장학금 대상자를 가린다. 일정 점수 이상일 경우 약간의 가산점을 부여한다. 한국교통대학교는 약 10% 정도의 비율로 성적우수장학금 지급 기준에 공인영어인증시험 점수를 반영한다. 한편 동국대학교는 예정대로라면 오는 2014년부터 공인영어인증시험을 교내 모범장학 산정 기준에 포함한다. 각 학과마다 다르지만 반영비율이 낮은 학과는 10~15%, 반영비율이 높은 학과는 30~35% 수준이다. 일부 학과는 전혀 반영이 되지 않기도 한다. 


학교가 자체적으로 정한 점수를 넘으면 일정 금액을 지급

서울과학기술대, 세종대, 인하대, 평택대, 가천대, 연세대(원주), 전북대, 공주대 등

교내 성적우수장학금 지급 시 영어인증시험점수가 일정 비율 반영

동아대, 한국교통대, 동국대(2014년 이후, 학과 간 상이함)

성적우수장학금을 수령하려면 일정 점수를 넘어야만 함

성신여대, 인천대 등


교내장학금에 공인영어인증시험을 반영하는 것에 대해 학생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정새임(25) 씨는 “학교에서 고시 1차에 붙으면 장학금을 주는데 그와 비슷한 취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윤희정(23) 씨는 “반영하는 것 자체는 좋은데, 다만 3, 4학년 때부터 적용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임창훈(26) 씨는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 모든 대학생에게 영어가 필요한 게 아닌데, 굳이 영어성적에 대해서 장학금을 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윤형준 씨(25)는 “국제화다 뭐다 하면서 대학교에서 아웃풋을 늘리려는 경향이 커진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의 영어실력 향상 및 취업 독려 vs 대학교에서 굳이 영어시험에 대한 혜택을 줘야 하나

그렇다면 대학교가 공인영어인증시험을 장학금에 끌어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대학교들은 “글로벌 시대에 대비하여 학생들의 어학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면학분위기를 고취하고, 취업 활성화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어학장학금을 시행하고 있는 한 대학교는 “학생들의 학습의욕을 고취하려는 목적도 있고, 요즘은 취업할 때 어학시험 점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학교 차원에서 장학금을 지급함으로써 취업 활성화를 도모하려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요즘 웬만한 기업에 취직을 하기 위해서는 ‘토익 900점은 넘어야 한다’라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다. 토익책을 붙잡고 씨름하는 대학생을 보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그러나 교내장학금이 공인영어인증시험과 연관되는 데 대해서는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된다. 엄연한 공공교육기관인 대학교가 사실상 사교육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는 토익, 토플 점수에 대해 장학금을 주는 게 합당하지 않으며, 특정 언어를 잘 한다고 해서 장학금을 주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김삼호 연구원은 “물론 학교에서 어학시험과 관련해서 특별히 장학금을 주는 데에는 특정한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장학금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의 지원을 위한 것인데 특정 언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장학금을 주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인영어인증시험을 교내 성적장학금에 반영한 학교의 경우에는 ‘시험 응시료가 만만치 않고, 시험을 준비하는 데 드는 시간적, 금전적 비용으로 인해 학생들의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실상 공인영어인증시험 응시가 의무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주요 공인영어인증시험인 토익은 1회 응시비용이 42,000원(추가등록시 46,200원)이고, 토플은 1회 응시비용이 무려 170달러(약 18만원)다. 


ⓒ헤럴드경제

 


본래 취지에 맞는 장학금 지급이 필요하다

학교의 장학금 관련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그 돈으로 성적우수장학금, 신입생 입학우수장학금, 고시장학금 등 모든 교내장학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학생들은 등록금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수많은 교내, 교외장학금이 이미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겐 생각만큼 큰 보탬이 되진 않는 것이다. 실제로 카이스트, 포스텍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교에서 등록금 대비 장학금 지급률은 여전히 10%~20%대에 불과하다. 물론 최근에는 국가장학금의 수혜 대상이 대폭 확대되었고, 박근혜 당선인도 재임 기간 동안 소득분위에 따라 등록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이전에 비해 등록금 부담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선 사실상 한정된 이들만 수혜가 가능한 교내장학금 제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장학금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성적은 우수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주는 돈’이다. 관건은 과연 공인영어인증시험이 우수하다는 것을 ‘학교 성적의 우수함’으로 볼 수 있냐는 것이다. 대학교의 특성상 학업성적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대학교 내에서 듣는 수업의 성적, 혹은 전공분야에 대한 연구 성과이다. 장학금을 지급할 때도 이러한 부분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공인영어인증시험을 장학금에 반영하는 것은 장학금의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우선 대학교에서 지급하는 장학금이 대학교와 관계없는 외부 시험과 연계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또한 영어시험이 대학교 내에서 듣는 수업, 혹은 전공분야에 대한 연구와 큰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공인영어인증시험을 전담하는 것은 사실상 사교육이고, 그렇기 때문에 대학교와는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 측은 현재 사회에서 영어가 중요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영어실력 향상을 위한 목적의식을 고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학교들의 이러한 발언은 대학교가 사회에 맞추기 위해서 ‘장학금’이라는 장치를 이용하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다. 대학교가 사회와 연관됨에는 분명하지만 사회에 굳이 맞춰야 할 이유는 없다. 

결국 문제의 소지가 있는 여러 지엽적인 장학금에 드는 재원을 절약하여, 그것을 성적우수장학금, 저소득층 지원 장학금 등을 확충하는 데 쓰여야 한다. 그래야 보다 장학금의 취지에 맞게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고, 좀 더 장학금이 절실한 이들에게 보다 널리 지원의 손길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대학교는 사회적 분위기와 유행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공인영어인증시험의 장학금 연계는, 결국 대학교가 ‘학문의 전당’이라는 본래 기능보다 학생들의 취업시장 진출을 이끌기 위한 기관으로 전락했음을 시인하는 제도이다. 고질적인 취업난과 취업을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회적 풍조는 대학교의 최우선 역할마저도 점점 바꾸고 있다.



* 기성회비: 대학에서 일반적으로 일컫는 등록금에서 입학금과 수업료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에 해당한다. 1963년 제정된 '대학, 고ㆍ중학교 기성회 준칙(옛 문교부 훈령)'을 통해 기존 입학금ㆍ수업료 외에 기성회비란 항목으로 돈을 더 걷어 학교 시설 확충ㆍ수리비, 운영비 등으로 쓸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한 바 있다. 사립대에서는 2000년대 초 폐지되었으나, 국ㆍ공립대는 계속 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