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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의 한 직원이 오늘의 유머(이하 오유)’라는 사이트에 지속적으로 친정부 성향의 글을 올린 게 드러났다처음에 이 일과 관계없다고 주장하던 국정원은국정원 직원 김 모 씨가 11개의 아이디(ID)를 사용해 가며 오유 게시글과 댓글에 찬성/반대를 한 정황이 드러나자 직접 올린 글은 없다며 발뺌했다경찰 역시 김 씨가 쓴 글은 대선과 직접 관련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그러나 각각의 아이디를 분석한 결과 김 씨는 소위 업무 시간’ 동안 91개의 글을 올렸고, 244번의 찬/반 표시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91개의 글 중 대부분은 제주 해군기지 찬성이명박 정부에 대한 칭찬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 주장 등 현 정부의 노선과 일치했다.
 

이에 국정원에 다시금 의혹의 눈초리가 향하고 있다물론 국정원이 김 씨에게 직접적인 지시를 내렸는지 명확히 확인된 건 아니다그러나 글이 올라온 시간이 정확히 업무 시간(평일 9~18)과 겹친다는 점, 11개의 아이디를 번갈아 사용해 글을 올리고 찬/반 표시를 했다는 점,어떤 쟁점에 대해 한쪽 입장을 주장한 글을 지속적으로 올렸다는 점에서 개인이 자진해서 했다고 보긴 어렵다

국정원은 북한에 대응하기 위한 역할을 크게 두 가지 하고 있다하나는 북한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북한의 도발징후 등을 감시하는 업무이며다른 하나는 국가 안보를 내부에서 위협하고 사회 불안을 조장하는 간첩 및 좌익사범을 검거하고 사법처리하는 업무이다국정원은 이 두 가지 업무를 균형 있게 하여 국가의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지난 2011년 말본래 3차장 산하의 심리전 담당부서였던 부서가 심리정보국으로 격상되었고 인원도 76명으로 대폭 늘어났다심리정보국은 대북심리전을 중심으로 한 업무를 수행하는 기구다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김 씨가 이곳 소속이다심리정보국의 지위 격상과 인원수 증대는 곧 국정원이 북한에 대한 심리전의 중요성을 크게 보았다는 의미다. 사실 이는 전형적인 대북 업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정원은 대북 업무에 써야 할 역량을 '대남 업무'에 활용했다. 일반 네티즌들이 다수 접속하는 사이트에서 심리전을 실시한 것이다북한과 별로 관련 없어 보이는 문 후보 비방글, 4대강 옹호글도 계속 올렸다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그게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건 꺼려졌던지 낌새를 눈치 챈 기자들과 경찰들이 오피스텔 앞으로 들이닥치자 몇 시간 동안이나 문을 잠그고 버텼다하드디스크도 사건이 터진 뒤 이틀 만에야 경찰 측에 넘겼다경찰의 성급한 중간수사결과 발표는 국정원의 어색한 연극에 기름을 부었다경찰은 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거나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게시글댓글을 남긴 정황이 없다고 공언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섣부른 발표였다.


즉 국정원의 잘못된 힘 조절과 경찰의 지나친 성급함으로 인해 국민들이 큰 피해를 본 셈이다국정원은 불특정 다수에게 여론 조작을 위한 글을 지속적으로 올렸다이 글을 본 네티즌이 자칫 편향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도 문제지만원칙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국정원에서 조직적으로 네티즌들을 선동하려 했다는 게 더욱 충격적이다경찰은 대선 직전 뉴스를 통해 국정원 측의 혐의가 없음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이것이 투표 경향에 아예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다주요 언론들은 국정원 사건이 해프닝으로 봉합된 것이 박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이런 상황이니 국가기관의 직접적인 대선 개입 의혹이 제기되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진 이상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강력한 문책 혹은 처벌을 해야 한다국정원경찰청 등 관련 부처들은 더 이상 발뺌을 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자신들이 한 행위를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