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에 있을 법한 일이 2010년에 일어났다.

  지난 3월 24일, 한 대학생 A씨는 서울대학교 중앙전산원에서 경찰로부터 IP조회 요청이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경찰이 해당 학생의 IP조회를 요청한 이유는 ‘외국환 거래법 위반 혐의’라는 명목 때문이었다. 경찰청 보안3과(이하 ‘대공분실’)의 의뢰로 된 ‘통신자료제공요청’ 공문에는 ‘붙임 IP번호에 대한 IP접속장소(주소지), 해당 주소지에 대한 가입자 인적사항, 연락처’ 정보를 요청한다고 되어있었다. 그리고 이 공문은 서울대뿐만 아니라 고려대, 서강대, 중앙대, 이화여대 등 다른 학교에도 보낸 것으로 나와 있었다.

 
외국환 거래법 위반이라니

  연락을 받은 A씨는 처음에 무슨 상황인지 몰라 한동안 어리둥절했었다는 심정을 전했다.
주식을 한 경험이 없고 달러 통장도 소유하고 있지 않은 학생들에게 학교 무선인터넷으로 외국환 투기 등을 했다는 혐의를 이유로, IP주소의 정보를 알아내려고 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A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주로 조사하는 보안과(대공분실)에서 관세청이 조사해야 할 일인 외국환 거래법을 명목으로 조사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했다.
통신비밀보호법에는 아이피의 ‘접속장소’를 요청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원의 영장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되어있다. 그런데도 경찰은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지 않은 채 당당하게 정보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A씨는 학교 중앙전산원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담당 경사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러나 A씨가 들은 대답은 ‘조사받는 당사자들은 알 필요없다’는 말 뿐이었다. 따라서 A씨는 IP주소의 정보를 알아내려고 한 대공분실의 사찰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특정 학회에 대한 표적수사인가

  서울대학교 중앙전산원으로부터 연락이 간 학생들은 A씨를 포함해 두 명이다. 이 두 학생의 공통점은 ‘자본주의연구회’라는 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 두 학생은 각각 이 학회의 회장과 지부장을 맡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위치해있다. 그 외에도 공문에 나와 있는 다른 학교들에도 ‘자본주의 연구회’의 지부가 자리 잡고 있으며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곳이다. 연락을 받은 당일, A씨는 같은 메일을 자주 사용한 다른 학교 지부원들에게 각자 학교 당국에 알아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고려대와 중앙대는 공문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고, 이화여대는 공문을 받았지만 주지 않았으니 자세한건 KT에 물어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럼으로 서울대 두 명은 IP주소를 추적당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아직 누가 얼마나 추적당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공문에는 분명히 공동수신자로 되어있는데 공문을 받지 않았다거나, 공문을 받았음에도 주지 않았다는 것은 기존 사례에 비추어보았을 때 좀처럼 이해되기 어려운 경우다. 게다가 서울대는 더 이상 공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면서 입장을 돌변했다. 따라서 A씨는 경찰 측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하였기 때문에 다른 대학들이 이에 맞추어 함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의문을 제기하였다.

광우병 촛불집회로부터 시작된 경찰의 ‘자본주의연구회’ 표적 수사

  경찰과 ‘자본주의연구회’와의 악연은, 이번 사건이 처음인 것은 아니다.
작년 7월, ‘자본주의연구회’ 출신의 건국대 총학생회장과 정경대학생회장이 인파가 북적이는 길거리에서 대공분실로 사전소환장 발부도 없이 강제로 연행을 당한 적이 있다. 경찰이 그들을 강제로 연행한 이유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도로교통법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에서였다. 대공분실에서 그들은 광우병 촛불집회를 비롯해 용산 집회, 대전 화물노동자 파업 집회,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집회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대공분실에 자료를 한가득 쌓아놓고 '이게 다 자본주의연구회를 캐낸 것이다'라고 그들에게 발언하였다.

‘자본주의연구회’는 한대련(한국대학생연합),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후원 아래, 주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연구하는 학술 동아리이다. 이 동아리가 경찰의 표적수사 대상이 된 것은 그동안 촛불집회를 비롯하여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를 주도했던 과거의 행적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외국환 거래법은 경찰의 구색 맞추기?

  경찰이 외국환거래법을 핑계로 삼은 이유에 대해 A씨가 입을 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여러 장소에서 한 사이트에 동시에 여러 번 접속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트에는 자본주의연구회 명의의 메일이 있고, 다양한 학술 행사 준비로 많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이트 메일에 ‘studycap’이라는 아이디로 접속한 IP주소가 기록되게 되는데, 경찰 측에서는 ‘이 IP의 주인에 관한 정보(접속장소, 이름, 연락처)’를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름과 연락처는 통신법상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접속장소는 영장 없이는 요청할 수 없는 내용이기에 더욱 위법성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반면 이에 대한 경찰의 반응은 ‘산업 보안 수사는 보안 3과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이다. “특히 이번 수사는 한 첩보에 의해 이뤄진 수사이므로 더 이상의 수사기밀사항은 말해줄 수 없다”고 못박았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자본주의연구회’는 사건을 알게 된 바로 다음날인 25일 중앙대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고 경찰청에 항의 방문하여 고소장을 접수하였다. 그리고 29일 몇몇 학술동아리와 교수님들의 참여 하에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한 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함께 이 사건에 관한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대공분실의 표적수사가 ‘자본주의연구회’ 및 대학의 자유로운 학술사회 활동을 탄압하는 것이라며 이에 관한 반대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드세게 표출하였다.

   

이번 사건은 ‘대학생 학회라면 보다 자유롭고 안전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깨뜨려주는 사건이다. ‘자본주의연구회’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술 활동을 하는 여러 대학생 학회들에도 적신호가 온 것은 분명하다. 정부의 극단적인 학원사찰을 규탄하고 자유로운 학술활동 보장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연구회’와 경찰에 관한 향후 재판의 추이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지출처: http://www.studyca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