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후라이드인가, 양념인가? 뼈있는 치킨일 수도 있고 순살치킨일 수도 있습니다. 치킨은 중요합니다. 선택을 하기 전 곰곰이 생각해보고 고려하여 2013년 맛있는 치킨을 드시기 바랍니다.”

이건 치킨집의 광고문구가 아니다. 지난 2월 인터넷 유머게시판에 ‘B와 D 사이의 Chicken(치킨)’이라는 제목으로 인기를 끌었던 게시글의 내용이다. 게시자는 프랑스 철학자 장 사르트르가 말한 “Birth(탄생)와 Death(죽음) 사이에는 Choice(선택)이 있다”는 문장을 패러디하여 ‘인생이 치킨’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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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치킨’이 네티즌들의 많은 공감을 얻은 이유는 그만큼 현실에서 사람들의 먹거리 문화에 치킨이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계육협회는 한국인이 1년간 평균적으로 소비하는 치킨은 12.7kg이라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치킨 1마리가 500g에서 1kg의 무게임을 감안할 때 대부분의 한국인이 한 달에 1~2번은 치킨을 먹는 셈이다.

대학생에게 치킨은 한층 친숙하다. ‘치맥(치킨에 맥주를 곁들여 마시는 것)’은 대학교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음주 형태다. 분위기를 풀어줘 성인의 사교에 거의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알콜이지만, 개중에도 도수가 높아 금세 취하는 소주와 달리 맥주는 취하는 정도가 덜하다. 탄산기가 있기 때문에 기름에 튀겨 느끼할 수 있는 치킨과의 궁합도 그만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불과 20년 전인 93년도에, 13년도의 치킨처럼 대학가를 점령했던 것은 부대찌개와 해장국을 비롯한 ‘국물에 소주’ 문화였다. 그시절에도 치킨이 있기는 했지만, “여러 명이 가서 먹기에는 가격대비 양이 적었다”고 93학번 김성진(가명)씨는 회상한다.

가격대비 양이 적었다는 말에 조금 의아하다. 93년도 당시 치킨 가격은 7천원에서 1만원 사이였다. 현재 치킨 가격은 1만 2천원에서 1만 8천원 사이로 당시보다 두 배 정도 올랐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93년 이후 소비자 물가는 60%가 상승했다. 실제로 대학생이 체감하는 치킨 가격은 그대로인 셈이다. 양이 20년 전에 비해 획기적으로 는 것도 아니다. 닭 크기는 그대로, 현재와 동일하게 남자 2~3명이 먹기에 적당한 양이다.

그런데도 왜 93년도 대학생은 ‘국물에 소주’를, 2013년도의 대학생들은 ‘치맥’을 선호하는 것일까?

국물 음식은 오래 앉아 끓여먹을 수 있는 반면, 치킨은 빠르게 준비되어 금세 동나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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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근하게 끓인 전골에 오래도록 소주를 기울였다. 슬로우 푸드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국물 문화에 맞추어진, 새벽까지 이어지는 긴 술 문화가 발달했다. 길게 우려내는 듯한 친밀감, 90년대 대학가에 유행처럼 번졌던 ‘낭만’은 이런 시간적 여유를 표현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치킨은 패스트 푸드의 상징이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먹을 땐 직접 고기를 구워야 하지만 치킨은 만들어서 그냥 가져다준다. 빠르게 준비되어 나오며, 안주가 비는 속도에 맞춰 빠르고 효율적으로 친밀감을 나눈 뒤 헤어지는 것이 치맥이다. 운동경기를 시청하며 취미생활도 즐기고, 치킨으로 배를 채우며 식사도 해결하고, 친구와 맥주를 기울이며 사교 활동도 충족시키는 '일석 삼조'. 우리 세대에게 익숙한 치맥의 풍경은 이렇게 묘사된다. 20년 전에 비해 가격대비 성능이 좋을 수밖에 없다.

흔히 요즘의 20대가 바쁘다고 말한다. TOEIC, 아르바이트, 학점, 인턴, 공모전, 친구만나기……. 시간은 제한되어 있는데 할 것은 산더미니 예전처럼 보글보글 끓는 냄비를 들여다보며 세월아 네월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쓴다는 것이 몹시 중요하다. 먹고 노는 시간을 합치고 줄여버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늘 좀 더 빨라야만 하는 2013년의 20대에게 정말, “인생은 치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