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 18 MBC는 아직 게재도 되지 않은 논문 하나를 바탕으로 두 꼭지의 기사를 내보냈다. “알통 굵기 정치 신념 좌우라는 선정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이 기사를 두고 논란이 번졌다. 김재철 사장 선임 이후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를 받던 MBC이기에 정치적 의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다. 논문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 논문의 바탕이 된 진화심리학적 사고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진화심리학은 언론의 단골메뉴인지 오래다. 기자들이 유명하지 않은 연구까지 찾아보는 수고를 해 기사화를 시키는 이유는 진화심리학 연구가 선정적이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은 과학지식을 전달 하는 체 하며 페이지뷰를 늘리기에 적합한 주제다. ‘여자는 왜 키 큰 남자를 좋아하는가’, ‘남자는 왜 글래머 여성을 좋아하는가와 같은 질문에 진화심리학적인 대답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진화심리학을 쉽게 접해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접할 것이다. 우리가 진화심리학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위해서는 좋은 진화심리학과 나쁜 진화심리학을 구분할 줄 아는 독해능력과 판단기준이 필요하다.

진화심리학과 화물신앙

진화심리학은 진화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들이 자연선택으로 살아남아 보편적인 인간상을 구성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능적 심리에 대해 규명하는 학문이다. 이러한 보편적 인간성은 현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영겁의 세월 동안 만들어 진 것이기에 현대에 적응하기에 적합한 것이라기 보다는 석기시대에 선택된 유전자가 지금까지 내려왔다고 본다. 진화심리학은 이러한 체계를 기반으로 개별적인 설명을 만들어낸다.

진화심리학은 화물 신앙 과학(Cargo cult science)이 될 가능성이 큰 분과 중 하나다. 화물 신앙(Cargo cult)은 서구 문명에 접촉한 적 없는 태평양 섬 부족들이 비행기를 타고 온 서양인들을 만나며 생긴 신흥종교다. 비행기를 타고 온 서양인들이 나누어 주는 신 물자들은 부족민들의 눈에 이렇게 보일 뿐이었다.

어느 날, 굉음과 함께 거대한 새가 하늘에서 땅에 내려앉았다. 그 새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처음 보는 하얀 생물체들이 타고 있었고 그들은 살면서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물건과 음식을 가져다 주고 떠났다.”

 

이들은 신이 천사들을 보내 상을 내린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많은 남태평양 섬주민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자신들의 화물 신앙(Cargo Cult)를 창시했다. 화물신앙은 서양인들이 비행기 착륙시에 하던 행동들을 그대로 따라하는 종교다. 꽤나 정밀한 관제탑과 비행기를 만들고 관제탑 위에서 교주가 수신호를 하면 아래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면 신비한 새가 날아와 그들에게 다시 풍부한 물자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다.

문명을 가진 우리에게 화물 신앙은 우스워 보이지만 이런 실수는 우리가 쉽게 저지르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실수를 자주 일으킨다. 리처드 파인만은 과학적 실험의 외양만을 따서 실험을 하고 엄밀한 작업을 거치지 않은 것을 두고 화물 신앙 과학(Cargo Cult Science)라고 불렀다. 현상을 해석하는 과정이 과학적으로 엄밀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물신앙이라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사실을 우리의 사고체계에 맞게 끼워 맞춘다. 문명이 없는 부족에게는 이 섬 바깥에는 우리와 전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있고, 이 사람들은 저런 물건들을 공장과 과학 기술을 통해서 만들며 그리고 이들은 하늘을 나는 도구도 만들 수가 있다.’보다 신이 하늘에서 새와 물건을 보내 주신 거야.’가 훨씬 더 그럴듯한 설명이다. 이해가 쉽고 상상할 것도 적다. 이렇게 설득력 있는 설명은 많은 이들에게 지지를 받지만 이 설명이 과학은 아니다.

우리가 언론에서 접하는 진화심리학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불쾌할 때도 있지만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럴 듯 한 이야기일 뿐 화물 신앙(Cargo cult)의 생김새를 가질 때가 많다. 이는 우리가 접하는 진화심리학이 나쁜것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좋은 진화심리학과 나쁜 진화심리학

진화심리학이 모두 나쁘다고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다. 진화심리학은 초기의 엉성한 형태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어왔다. 하지만 초기의 형태도 버젓이 과학의 대접을 받고 있다. 게다가 진화심리학을 기본으로 한 자연과학적 연구와 사회과학적 연구가 엄밀히 구분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심리학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 진화심리학을 받아들이는 첫 번째 단계다.

진화심리학은 사후적(post-hoc)으로 현상을 해석하는 '나쁜'진화심리학과 예측을 제공하는 '좋은'진화심리학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기준은 현대 과학철학을 정립한 포퍼(Popper)다. 포퍼는 한 이론이 예측하기 어려운 현상을 예측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이론이 기각될 수 있는지가 과학의 타당성을 만든다고 보았다. 포퍼는 정신분석학이나 맑스주의처럼 모든 현상을 끼워 맞출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이 이론을 변호할 수 있는 이론은 과학이 아니라고 봤다. 사회에 유의미한 의견을 제공하지만 엄밀한 과학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후적인 진화심리학도 자연과학의 탈을 쓰고는 있지만 정신분석학과 다를 것이 없다. “여자가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번식의 안정성 때문이다.”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있다. ’여자들은 돈 많은 남자를 더 좋아한다.’라는 뻔한 관념에서 출발해 진화심리학적인 해석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후적 설명은 그럴 듯 하지만 입증할 수 없다. 어떤 실험 없이도 쉽게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매스컴의 진화심리학은 남성이 여자보다 불륜을 더 많이 저지르는 것은’, ‘남자가 강간충동을 느끼는 것은’, ‘여자가 키 큰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등등의 합의된 현상에서 시작한다. 어떤 새로운 예측을 만들어내지 않는 진화심리학은 결코 좋은 과학이 될 수 없다.

 

이미 있는 결과를 사후적으로(post-hoc) 해석하는 것에는 과학적 엄밀성이 결여되어있다. 진화심리학이라는 체계에 어떤 방식으로든 끼워맞추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통계적 결과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다. MBC가 기사로다룬 알통보수, 진보멸치기사의 근거가 된 논문은 남성의 정치적 적극성과 상체의 힘의 연관성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상체 힘에 따른 정치성향의 차이가 진화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같은 통계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후천성에 방점을 두고 즉흥적으로 이론도 꽤나 그럴 듯 하다.

진보적인 남성은 멋있는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강압이라고 생각해 근육운동을 중시하지 않았고 보수적인 남성은 개인의 노력과 성취를 중시하기 때문에 근육운동을 통해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선천적인 정치적 신념에 따라 후천적인 근육운동량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성에게는 근육운동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없으므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같은 실험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설계된 실험이 후천적 요소를 제거할 만큼 엄밀하게 설계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진화심리학은 선천적인 성격형성을 중시하고 사회심리학은 후천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방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될 수 있다. 결국 사후적 방식의 진화심리학은 사회심리학보다 조금도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좋은 진화심리학은 어떤 것 일까. 앞서 말했듯 좋은 과학체계는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더 나은 예측을 만들었을 때 의미가 있다. 화물 신앙과학은 어떤 예측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백 날 관제탑에서 손을 흔들어봐야 비행기는 오지 못한다. 현상에 대한 설명력보다 예측가능성이 과학에서 더 중요한 이유다.

한 진화심리학자는 최근 성장과정에 아버지의 존재 여부에 따라 딸의 초경 시기가 달라지는 것을 예측했다. 남성 부양자의 존재가 없으면 더 빨리 새로운 남성부양자(남편, 애인)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생식기능이 먼저 발달할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실험결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드러났다. ()의 난교 수준에 따라 고환의 비율이 달라지는 것을 예측한 학자도 있다. 진화심리학적 체계가 없었다면 이런 예측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을까? 두 연구 결과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되기 어려운 이론이다. 이런 진화심리학적 연구는 좋은 과학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우리가 주목하고 고민해야 할 진화심리학은 이런 분과다. 하지만 재미있지도 않고 어려운 이런 진화심리학은 언론은 물론이고 진화심리학의 홍보대사를 자청하는 아마추어들도 그닥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과학이 과학이기 위해서는 현상의 단순한 선후 인접성이 인과관계를 의미하지 않는 다는 흄(Hume)의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 포퍼(Popper)의 말 처럼 어려운 예측을 만들어 내고 그 결과에 따라 이론이 도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진화심리학이 도전 받아 온 것은 이것이 단순히 우파적이고 받아들이기에 불쾌한 것이라서 만은 아니다. 화물 신앙 과학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진화는 지식인으로서 거부할 수 없는 과학체계가 되었다. 과학의 틀을 쓴 선정적 기사들 속에서 과학과 과학 아닌 것을 가려내는 독해력이 모두에게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