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녀 (進主女) [명사]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20대 여성. 기존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꿈을 좇아 자신의 삶을 개척.“
 
한겨레가 창간 25주년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진주녀’ 기획의 한 부분이다. 한겨레는 이들 진주녀를 “알파걸이나 골드미스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존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꿈을 좇아 삶을 개척해 나가는 20대 여성들이다.”라고 설명한다. 앞으로 진주녀 100여명을 인터뷰 하겠다면서 시작하는 기사에 ‘강정마을 지킴이’, ‘석사학위를 딴 뒤 귀농’, ‘공정여행 전도사’의 인터뷰를 담았다. 
 
진주녀는 단순히 20대를 여성을 그 자체로 정의하는 방식은 아니다. 한겨레는 이들 20대 여성을 “또래 남성들은 취업문 앞에 긴줄, 여성들은 다양한 삶의 방식 개척”이라는 소제목으로 소개한다. 진정한 진주녀는 취업의 압박에 찌든 20대 남성과 대비되는 이미지로 완성된다. 
 

ⓒ민중의 소리

 
이러한 ‘진주녀’에 대한 정의는 2008년 당시 등장한 ‘촛불소녀’의 한겨레식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교복을 입고 시위의 전면에 나선 중고등학생들에게 진보성향의 언론들은 촛불소녀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촛불소녀라는 단어 속에는 ‘취업과 같은 현실문제에 매몰되어 저항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20대’와 대비되는 10대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사회변혁은 이들 순수한 10대 들에 주도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는 논리였다. 당시 김용민씨가 한 대학교의 학보사에 기고한 글은 진보적 성향의 언론과 그 매체를 소비하는 독자들의 생각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촛불소녀와 진주녀에 담긴 은유는 한겨레 주요 독자층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은밀한 욕망을 나타낸다. 5년 전 정치적으로 진보적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한겨레 독자들은 촛불소녀의 모습에서 80년대 당시 거리에서 시위를 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도시 거주 중산층인 그들은 이제 진주녀로 명명된 강정마을 지킴이, 귀농 한 석사졸업생, 공정여행 전도사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발견한다. 강정마을은 그들의 낭만적 자유주의를 대변하고 귀농 여성과 공정여행 전도사는 일탈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다. 5년 전 반정부 시위에 앞장 선 10대 소녀들의 순수한 이미지를 통해 또래세대가 공유하는 민주주의에 가치를 부여했던 것처럼 진주녀로 명명한 20대 여성으로부터 자신들이 선망하는 이미지에서 어떤 가치를 찾으려고 했었는지 모른다. 

충대신문 캡쳐 http://press.cnu.ac.kr/news/articleView.html?idxno=5425



한겨레는 20대 여성을 진주녀로 호명하고 독자들은 타자화한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고 있다. 왜곡된 이해과정은 독자들로 하여금 20대 그리고 20대 여성의 실제 모습을 오독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단순한 자기만족을 위해 세대 간에 형성된 왜곡된 이미지가 사회 곳곳에서 끼칠 민폐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아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