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정치개입 행위가 잇달아 드러나고 있다. 이번엔 반값등록금이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어제(19일)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공세 차단’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에는 2011년 당시 크게 일었던 반값등록금 요구를 국정원이 차단하려 했던 정황이 나타나 있다. 이 문건은 야당과 좌파 진영이 등록금 인상을 정부 책임으로 돌리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며 “이들의 정부책임론 주장은 지난 과오를 망각한 비열한 행태”라고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물가상승률 대비 등록금이 4~5배 뛰었기 때문에 등록금이 인상한 것은 노무현 정부 책임이라는 것이다. 또한 “각계 종북좌파인사들은 겉으로는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면서도 자녀들은 해외에 고액 등록금을 들여 유학보낸다”라고 하면서 야권 의원들의 이중처신을 비난하고 있다. 

국정원의 주장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실제 등록금이 급속히 오른 시기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고 이 점에 대해선 노무현 정부 역시 분명히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를 굳이 국정원에서 해명할 필요는 없다. 야당 및 좌파 진영이 등록금 인상 요인을 오롯이 이명박 정부에게 돌린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정원이 조직적인 ‘내부 심리전’을 통해 이를 홍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국정원은 어디까지나 국가안보 수호와 국익의 증진을 제1의 목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값등록금은 국가안보에 저해가 되지도 않고 국가의 이익에 피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국정원이 자기 소관도 아닌 일에 지나치게 간섭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반값등록금 요구를 단순히 ‘현 정부엔 책임이 없다, 야권의 공세다’ 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국정원의 문건을 보면 마치 반값등록금 담론을 야권에서 주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반값등록금 요구는 사회 전반에서 터져 나왔다. 야당과 좌파 진영이 이를 주도했다기보다는, 생활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등록금에 허리가 휠 대로 휜 국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이다. 평등한 교육기회에 대한 광범위한 요구다. 게다가 반값등록금은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 당시 내세웠던 공약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 담론을 야당이 주도했다는 식으로 평가절하하며 이들을 ‘좌파’로 몰아갔다. 

야당 인사들의 자녀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이유로 이들의 주장이 ‘표리부동’하다고 단정짓는 것도 무리다. 자녀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갔으니까 반값등록금 요구에 진정성이 없다고 한다면, 자녀가 없는 의원들은 아예 여기에 대해 말을 해서도 안 될까? 논리적 연결점이 전혀 없다. 오로지 진영논리에 함몰된 감성팔이에 불과하다. 실제로 국정원은 문건에서 권영길, 정동영 등 야권 성향의 의원들을 ‘종북좌파인사’로 규정하며 야권 및 좌파 진영 전체를 종북으로 취급하는 이념 편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들에겐 반값등록금에 대한 요구가 반대 진영의 잔소리로만 들리는 모양이다. 이는 국가기관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국정원의 생각으로써는 아주 위험하다.

이미 국정원은 ‘인터넷 댓글사건’으로 신뢰가 크게 추락했다. 정치에 개입하려는 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국정원의 의도가 ‘MB정권 수호’와 ‘여론몰이’에 있음을 확실히 알았다. 국정원은 정권의 수호와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 아니기에 이는 분명 잘못됐다. 그러나 원세훈 원장 취임 이래 국정원은 그야말로 사조직화되어 그런 잘못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렀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받는 상처가 너무 크다. 최소한, 국정원은 노골적인 정치개입에 대한 대국민 사과라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