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렐라【명사】12시가 되기 전 집에 가야만 하는 신데렐라처럼, 무언가를 하다가도 정해진 시간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하는 20대를 빗댄 신조어.
왕자는 신데렐라가 흘린 유리구두 한 짝 덕분에 그녀와 재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구두의 주인이 신데렐라였다는 것을 어떻게 안 걸까? 상상해보건대, 왕자는 신데렐라와 춤을 추면서 투명한 유리구두를 통해 그녀의 상처투성이 발을 보았을 것이다. 새어머니와 새언니들의 구박을 견디며 쉴 새 없이 집 안팎을 돌아다닌 탓에 크게 붓고 부르튼 그녀의 발을 왕자는 분명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즌1을 마무리하고 새로이 시작하는 알바렐라 2013에서는 일터 안팎에서 험난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 시대의 알바렐라들에게 유리구두 대신 체크리스트를 건넨다. 체크리스트의 단면을 통해 그들의 상처투성이 발을 사회를 향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알바렐라들이 행복한 결말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고함20과 독자들이 그 길을 터줄 수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소망해본다.

 
고함20이 야심차게 준비한 재밌고 우울하고 유쾌하나 서글픈 20대의 알바 수난기, 다시 쓰는 그 열 번째 이야기.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면 예쁜 옷을 입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모델들이 우리를 반긴다. 하지만 그들의 사진 속 아름다운 미소 뒤에는 남모를 서글픈 사연이 숨겨져 있다. 설움을 참으며 카메라 앞에서 웃음만을 지어야 했던 피팅모델 유렐라(23)씨와 만나 멋진 모습 뒤에 숨어있던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Q. 하셨던 일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
저는 2010년도부터 지금까지 피팅 모델로 알바를 하고 있어요. 학생이기 때문에 매일하지는 못하고 일주일에 한두번정도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쇼핑몰 3 ~ 4군데 정도 하고 있고요.


Q.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제가 좋아하던 쇼핑몰에서 샘플세일을 한다고 해서 갔었거든요. 그 때 쇼핑몰 사장님이 저를 보고 마음에 드셨는지 “모델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하셔서 시작하게 되었죠. 그리고 학교에서 의상학과 수업을 들었는데, 같은 수업을 듣는 분의 지인이 쇼핑몰 오픈을 했다면서 저에게 모델 제안을 하셔서 그곳 일도 했고요. 이렇게 두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피팅모델 구직 사이트에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피팅 모델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Q. 시급은 어떻게 되나요?
쇼핑몰에서 페이를 지급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시급이나 일급으로 받는 경우도 있고, 유명한 쇼핑몰에서는 전속 계약을 해서 계약금 받고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첫 번째 일했던 곳은 일급으로 5만 원 받았고, 두 번째 일했던 곳에서는 시급으로 3만 원 받았어요. 그리고 지금은 주로 일급으로 30~35만 원정도 받고 있습니다. 


Q. 시급제와 일급제 중에서 어떤 식으로 돈을 받는 게 더 좋나요?
시급과 일급은 각각 단점이 있는데요, 시급으로 일하면 메이크업 시간이나 식사 시간,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주는 곳도 더러 있어요. 그래서 돈을 제대로 안줄 때 짜증나죠. 자기들 쉴 때 저도 같이 쉰거잖아요. 저는 '오늘 이정도는 받겠구나'했는데 적게 받으니까 화나죠. 심지어 한번은 돈을 떼인 적도 있었어요. 돈을 촬영이 끝나면 바로 현금으로 받기도 하지만, 계좌이체를 해주는 곳도 있거든요.

일급같은 경우는 가끔 악덕 사장을 만나면 정말 힘들어요. 옷을 정말 산처럼 쌓아놓고 미친듯이 찍거든요. 하루에 30착장 이상을 찍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옷을 계속 갈아입으면서 포즈 취하고,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게 보통일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처음에는 4~5시간이면 끝난다고 했던 촬영이 6시간, 7시간 넘어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이구요. 이러면 일급 30만 원이라고해도 시급으로 따지면 5만 원도 채 못받게 되거든요. 그럼 솔직히 짜증은 나죠.


Q. 일당 30만 원이면 꽤 많이 받는것 같은데, 보통 다들 그정도는 받나요?
모델마다 받는 가격은 천차 만별이에요. 시간당 만원도 안되는 사람부터 10만 원이 넘는 사람도 있고, 유명한 쇼핑몰 모델은 전속 계약을 해서 연봉으로 1억 원 가까이 받는다고 들었어요. 이렇게 인지도나 얼굴에 따라 달라지고 촬영시간에 따라 달라지니까 보통 얼마정도 받는다고 말하기는 힘들죠.

저도 얼마전까지만해도 시급으로 2~3만 원정도 받고 했었는데, 다른 모델들 중에서 당시 저보다 시급을 많이 받는다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다른 쇼핑몰 촬영할때 시급을 높여서 불러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오케이'하더라구요. 그땐 "그동안 내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삽질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좀 열받더라고요. 근데 제가 경력이 많은 편이 아니니까 내공을 쌓기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자며 마음을 다스렸지만 지금 생각하니 또 열받긴 하네요. 하하.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가 보통 처음에 업체랑 미팅을 하면 업체쪽에서 먼저 얼마 줄껀지 말을 안해요. 제가 먼저 가격을 이야기하면 업체는 그 가격을 깎으려고 협상을 하죠. 경력이 많고 이런 경우에 대처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면 “이정도 가격으로 주세요. 이 금액 아니면 전 못할것 같아요” 라며 가격 협상을 잘 할 텐데, 저한테는 누군가와 돈이야기를 해야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서 꽤 스트레스였어요.

쇼핑몰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곳들이 많아서, 촬영이 전날 취소되거나 한 달 뒤로 미뤄진 적도 있구요. 이렇게 가변적인 요소가 많아서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죠. 그리고 그날 촬영도 시작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진행될지도 잘 모르고 컨셉도 안정해져있는 경우도 많구요.


Q. 컨셉이 정해져 있는게 더 좋은 건가요?
당연하죠. 예를 들어 “오늘 촬영컨셉은 이런 것이라서 메이크업은 이렇게, 분위기는 이렇게 갈꺼에요.”라고 말해주면 내가 '포즈는 어떻게 해야지, 표정은 어떻게 해야지'라고 생각해 놓을 수 있는데, 99%는 “유렐라씨가 평소에 하던 대로 해주세요”라고 해요. '내가 평소에 하는게 뭔데!!'라고 속으로만 소리치죠.

그래서 결과물도 사실 비슷비슷해요.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도 나의 특징적인 부분을 바탕으로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진이 필요한데, 그냥 되는 대로 찍는 경우가 많으니 특별한 사진이 많이 안나올 수밖에 없죠. 물론 다 예쁘게 찍어주고 포토샵으로 예쁘게 보정해주지만 예쁜 것만이 다는 아니니까요. 

사진의 퀄리티는 저한테도 중요하고 업체쪽에도 중요한 것인데 정말 말도 안되게 사진을 찍는 곳도 있어요. 그냥 연사로 '촤라라락' 카메라 셔터를 눌러버리고는 끝이라며 다음 촬영 하자더라구요. 그렇게 사진찍는 곳 치고는 잘 찍는 곳 못봤어요.


Q. 체크리스트 작성한 것을 보면 '계약된 업무 이외에 다른 업무까지 하게 된 경우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Yes'라고 답하셨는데, 어떤 경우에 다른 업무를 하게 되었죠?
사실 계약서를 쓰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구두 계약이기 때문에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4~5시간정도만 촬영한다고 했는데 6~7시간 이상 찍는 경우도 많구요. 보통 다섯 시간 정도를 기준으로 잡는데, 그 이상을 찍으면 시급 기준에서 안맞으니까 짜증이 나죠. 하지만 촬영을 중간에 끊고 그만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하는거죠.

지금 하는 곳 중에서 한곳은 쥐마켓 같은 오픈마켓에도 연결되서 올라가더라구요. 이미 촬영도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라 그냥 하고 있긴 하지만, 저는 오픈마켓에 제 사진이 올라가는 것을 싫어해서 절대 안해왔거든요. 제 편견일수도 있는데, 오픈마켓은 박리다매로 저렴하게 파는 곳이 많잖아요. 그럼 제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도 저렴해지는 것 같고, 얼굴도 은근히 많이 팔리거든요. 모델 사진이 이곳저곳에 너무 많이 올라와 있으면 오히려 신선함이 떨어져서 자기 쇼핑몰 모델로 안쓰는 곳들도 있거든요.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촬영한다고 했는데 야외촬영도 같이 하는 경우도 많구요.


Q. 스튜디오 촬영이랑 야외촬영이랑 차이가 큰가요?
일단 에너지 소모량의 차이가 엄청나요. 물론 사람들이 쳐다봐도 신경안쓰고 얼굴에 철판깔고 촬영하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구경하는데 너무 짧은 옷을 입고 있거나, 포토그래퍼 분이 섹시한 표정이나 귀여운 표정을 요구할 때면 좀 민망하긴 하죠. 무엇보다도 옷을 갈아입을 때가 정말 힘들어요. 승합차 안에서 요가하는 것처럼 옷을 갈아입거나 카페 화장실에서 갈아입어야 되거든요. 특히, 신발 갈아 신을 때면 카페 화장실 바닥에 맨발로 있어야 하니까 좀 꺼름칙하죠. 그리고 예를 들어 2월달에는 봄옷을 촬영하거든요. 날씨는 겨울인데 옷은 봄옷이니까 엄청 춥고, 반대로 여름에는 너무 덥고 쨍쨍한 햇볕 때문에 지치기도 하죠. 그래서 야외촬영 한번 하고 나면 집 도착해서 그냥 뻗어버려요.


Q. 피팅 모델 커뮤니티가 있다고 하던데, 그곳에서는 모델들이 부당한 일이나 난처한 일은 겪은 사례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나요?
카페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촬영시간 잘 지키고, 돈을 제대로 줘야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죠. 그리고 포토그래퍼들이 변태인 경우도 있어요. 짧은 옷을 입고 있는데 카메라 앵글을 이상하게 잡는다던지, 업체라고 해서 갔는데 이상한 스타킹을 신기고, 코스튬 플레이를 시킬려고 하는 경우도 있었대요. 

무엇보다도 카페에 자기 사진이랑 연락처를 올리면, 제 사진이 도용된다거나, '한 달에 얼마 스폰해줄테니 만나보자', '텐프로 업소 알바, 가격 얼마' 같은 이상한 문자나 쪽지도 되게 많이 와요. 그래서 저는 핸드폰 번호는 절대 안올리고 카톡아이디만 올려요. 그리고 연락이 오면 일단 사이트 주소를 알려달라고 해서 나름대로 확인을 하고 가죠. 그래서 다행히 불미스러운 일을 겪은 적은 없었어요.

지금 일하는 곳 중에서 제가 프로필을 올린 카페말고 다른 사이트를 통해서 연락이 온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사이트가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알고 보니 제가 카페에 올린 사진을 퍼다가 자기네들 DB인 것처럼 올리고, 돈을 벌고 있었던 거에요. 그 사이트에서는 업체에서 피팅 모델들 연락처를 볼려면 일정 금액의 돈을 내야되더라구요. 그쪽을 통해서 연락오는 업체가 꽤 있어서 그냥 가만히 있긴하지만 제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이니까 찝찝한건 사실이죠.


Q. 그동안 피팅모델 알바를 하면서 좋았던 경우는 있었나요?
일단 제 사진이 잘 나왔을 때가 제일 기분 좋구요, 그리고 제가 입었던 옷이 쇼핑몰에서 판매 1위를 하면 그때도 기분이 되게 좋았어요.


Q. 처음 피팅 모델 일을 시작하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 한마디?
제가 다른 사람에게 조언할 정도로 경력이 많진 않지만, 이 일은 알바긴 해도 프로 마인드로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쇼핑몰에서는 모델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데, 그 사진 속에서 자신이 어색하지 않게 나와야하고 옷이 잘 나와야 하거든요. 그래서 자신이 포즈나 표정 같은 것을 다양하게 연구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프로 마인드를 가지게 되었을 때, 업체에게 불만사항을 당당하게 피력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계약서를 쓰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 자신의 몫은 자신이 알아서 챙겨야 해요. 촬영이 너무 길어지면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데 감안해주세요”라고 하면 많이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감안해서 돈을 주거든요. 그리고 자기 얼굴은 자기가 제일 잘 아니까 메이크업이나 촬영을 할때도 '이렇게 가는건 어떨까요?'라고 제안하면 의외로 쉽게 받아들여주면서 좀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구요. 이렇게 조율해가면서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자기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업주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모델들 적당히 굴리세요! 구두계약도 계약이니까 좀 지켜주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