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렐라【명사】12시가 되기 전 집에 가야만 하는 신데렐라처럼, 무언가를 하다가도 정해진 시간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하는 20대를 빗댄 신조어.
왕자는 신데렐라가 흘린 유리구두 한 짝 덕분에 그녀와 재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구두의 주인이 신데렐라였다는 것을 어떻게 안 걸까? 상상해보건대, 왕자는 신데렐라와 춤을 추면서 투명한 유리구두를 통해 그녀의 상처투성이 발을 보았을 것이다. 새어머니와 새언니들의 구박을 견디며 쉴 새 없이 집 안팎을 돌아다닌 탓에 크게 붓고 부르튼 그녀의 발을 왕자는 분명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즌1을 마무리하고 새로이 시작하는 알바렐라 2013에서는 일터 안팎에서 험난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 시대의 알바렐라들에게 유리구두 대신 체크리스트를 건넨다. 체크리스트의 단면을 통해 그들의 상처투성이 발을 사회를 향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알바렐라들이 행복한 결말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고함20과 독자들이 그 길을 터줄 수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소망해본다.


고함20이 야심차게 준비한 재밌고 우울하고 유쾌하나 서글픈 20대의 알바 수난기, 다시 쓰는 그 열한 번째 이야기. 현대인들의 필수 공간 ‘카페’에 ‘키즈’가 덧붙여진 키즈카페. 부모를 위한 카페 테이블과 어린 자녀를 위한 놀이공간이 혼합되어 있는 새로운 양육 공간의 하나다. 운동장과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놀며 자란 이들에게는, 한 번 갈 때마다 만 원이 넘게 드는 키즈카페라는 문화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부모님을 상대해본 알바렐라는 무엇을 느꼈을까. 황렐라(24)씨를 만나보았다.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스물네 살 황렐라고요. 작년 여름 휴학하고 5개월 정도 용인의 모 키즈카페 알바를 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1시부터 9시 반까지 일했어요.


- 급여는 어땠어요?

시급으로 4800원 정도 받았어요. 당시의 최저 임금보단 높았는데, 하는 일에 비해선 적게 받는다고 느꼈어요. 돈은 일주일마다 받았어요.

- 키즈카페는 정확히 어떤 곳인가요?
말 그대로 어린이들이 오는 카페에요. 보통 2, 3살부터 초등학교 3, 4학년까지가 가장 많이 오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앉는 테이블과 아이들이 노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요. 밥을 먹기도 하고, 엄마들이 친구들 만나서 얘기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실내 놀이시설에서 노는 거예요. 제가 일했던 곳은 생일파티 공간도 따로 있었어요.

- 설명을 들으니 카페가 상당히 넓은 편이었겠어요.
엄청 넓어요. 카운터 주변으로 테이블이 10개 정도 있고, 그 옆엔 블록방이나 미끄럼틀 같은 놀이기구들이 있고, 바퀴 달린 자동차나 인형의 집, 동화책이 꽂혀있는 서가 등 아이들 위한 시설을 한 자리에 다 갖추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하루의 마지막 업무는 대형 청소기를 돌리는 거였는데, 무지 힘들었어요. 오전 타임 알바는 6시에 퇴근해서 마감은 혼자 하거든요. 작고 비좁은 놀이공간을 혼자서 일일이 청소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밤에 혼자 있는 게 좀 무섭기도 하거든요. 시끄러운 청소기 소리 때문에 엘리베이터 소리를 못 들었는데, 한번은 뒤돌아보니 경비 아저씨가 바로 뒤에 서계셨던 적도 있어요. 장난감 정리도 다 해놓고 설거지도 하고, 블록들 다 긁어서 정리하고. 마감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 업무 시간에는 주로 어떤 일을 하셨어요?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거예요. 저도 아이들을 좋아해서 시작하게 됐고요. 일단 노는 환경이 위험하지 않게 해줘야 해요. 어린 아이들은 어디서든 무작정 뛰어내리려고 하거나 입에 뭐 넣으려고 하는데 그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또 어떤 친구들은 장난감 자동차를 타고 카페를 횡단해요. 근데 세게 달리면 다칠 수 있으니까 조심하게 해야죠. 같이 색칠 놀이도 하고, 저한텐 너무 작은 놀이 공간 안에 웅크리고 들어가서 놀아주기도 하고, 감기 걸린 아이들 코도 풀어주고 싸우는 아이들을 중재하는 것 등등, 전반적으로 돌봐주는 역할이라 저는 ‘선생님’이라고 불려요. 아 참, 영아들은 안고 놀아주는데 팔이 진짜 아프더라고요. 불편하게 안으면 계속 우니까. 결혼 후에 남편이 아기 안는 거 안 도와주는 건 진짜 몹쓸 짓이에요! 그 외에도 시간 계산해서 결제해주고, 샌드위치나 커피, 음료, 볶음밥을 비롯한 간단한 식사 류도 팔아서 주문하시면 만들어드리기도 하고요.

- 시간단위로 요금이 계산되는군요?
네. 기본요금이 2시간에 3500원이고, 초과되면 1시간당 1500~2000원씩 요금이 추가돼요. 보통 마지막에 시간 계산을 하는데, 가끔 애매한 경우가 있죠. 초과 시간은 15분이 넘어가면 1시간으로 계산을 하거든요? 예를 들어 12시에 와서 2시 10분에 나가면 2시간으로 계산되고, 12시에 와서 2시 20분에 나가면 3시간으로 계산되는 거예요. 근데 기본요금만 내면 안 되냐고 하시는 분들 계세요. 규칙이라 안 된다고 말씀드리면 “다른 엄마들은 했다는데 왜 나는 안 해주냐”면서 따지기도 하고. ‘동네 엄마 네트워크’가 탄탄해서 소문이 진짜 빨리 퍼지거든요. 주변에 키즈카페가 2곳 더 있었는데, 저 때문에 가게에 피해되면 안 되니까 곤란했던 적이 많아요. 계산서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그만두겠다는 결심도 하게 됐어요.

- 어떤 일이 있었나요?
의심이 엄청 많으신 엄마들이 계셔서 “계산 확인해드리겠습니다.” 하고 하나하나 찍어서 보여드리거든요. 어느 날 어머니 두 분이 오셨는데, 계산하는 거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거예요. 근데 정작 저는 유령인 것처럼 쳐다보지도 않고 같이 오신 분한테만 화난 듯이 계속 “뭐야. 이상한데?” 이러시기에 저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가서 “계산 다시 도와드릴까요?” 하니까 다시 해주세요, 하고 여전히 저를 안 보고 딱 한 마디 하시는 거예요. 저도 확 기분이 상하더라고요. 결국 그 분이 음료수 세 개 합한 가격을 한 병 가격으로 오해한 걸로 드러났는데, 의심한 거나 무시한 것에 대해 사과는 안 하시고 또 동행인한테만 저 들으란 듯이 아 그렇구나, 이런 식으로 말하고 나가셨는데 다리가 훅 풀리는 거예요. 눈치가 되게 보여요. 부모님들이 본인 아이에 대해 되게 예민하기도 하니까 놀아줄 때도 눈치 보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옷 입다가 자기 아이 이마 좀 스쳤다고 임산부에게 상스러운 욕 쓰면서 싸우는 엄마들도 있었어요. 엄마들의 스트레스가 저한테 쏟아지는 느낌이었죠.

- 아무래도 아이가 어리니까 부모님이 신경을 쓰시는가 봐요.
네. 우리 애한테 잘 하나, 하고 알바들의 태도를 감시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우리 애한테 왜 그러냐”고 하실 것 같아서 안 돼, 하지 마, 같은 말을 거의 안 하려고 노력했어요. 어린이집 같은 공공기관도 아니니까. 그러면서도 막상 오는 이유 중엔 본인이 여가를 즐기고 싶다는 것도 있어서, 부모 입장에서는 키즈카페가 편하긴 한 거죠.

- 알바하면서 양육에 대한 생각도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한 번에 많은 것을 해결하려는 식으로 육아 흐름이 바뀌는 것 같아요. 키즈카페에서 밥 먹고, 사람들 만나 수다 떨고, 아기 밥 먹이고 놀게 하면서 자신은 쉬고, 생일파티도 하고, 맡겨놓고 장보러 다녀오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집에서 밥 먹고 산책을 하거나 놀이터 가서 놀거나, 퇴근하는 가족 맞이하고 자는 저녁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에도 가족들이 키즈카페에 와서 서너 시간 앉아 있다 가요. 약속도 키즈카페로 잡고, 외식도 거기서 하고 그러는 거죠. 단골손님도 많고 비 오는 날엔 웨이팅이 있을 정도로 어린이를 둔 부모들이 많이 의지하는 거 같아요. 맞벌이부부 대신해 할머니가 손주를 데리고 오기도 하고요. 그만큼 부모가 아이 돌봐줄 시간이 없다는 거죠. 문제는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마저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일단 키즈카페는 “돈을 내고 노는 곳”이잖아요. 그게 안타까웠어요.

- 키즈카페에 오는 아이들은 어때요?
말을 뗀 유아 이상의 아이들 중엔 학원 끝나고 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오늘은 합기도 학원 갔다가 키즈카페 가서 2시간 노는 날, 이런 식으로 노는 것마저도 스케줄의 일부가 되는 듯한 모습을 봤어요. 요즘 아이들은 그런 곳을 익숙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누구네는 키즈카페 간다더라”는 말을 듣고 와서 아이가 보내달라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오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아이가 소외받거나 뒤처지는 느낌 받지 않게 하려고, 20대 중반의 아주 젊은 엄마가 혼자 아이 데리고 와서 멀뚱멀뚱 앉아있다 가는 경우도 봤어요. 오고 싶어서 왔다기보다는 아이 위해서 하나 더 해주려고, 혹은 혼자 아이 돌보는 게 지쳐서 온 듯했어요. 암튼 우리나라는 아이 키우기 너무 힘든 환경이에요.

- 그래도 아이들 보면서 나름대로 즐거웠던 적도 많았을 것 같아요.
물론 많죠. 단골인 아이들은 머리모양 바뀐 것도 알아주고 어머니들과 친해지기도 했어요. 낯가리는 아기들이랑 친해지면 비밀의 방 문을 연 느낌이 들어요. 정말 잘 놀아주시는 것 같다며 칭찬도 듣고요. 제가 본 아이 중 제일 천사 같은 아이는, 다섯 살배기 동생이 미끄럼틀 타겠다고 욕심 부리니까 가만히 바라보다가 토닥토닥 해주면서 “괜찮아, 기다리자, 기다리자.” 하며 미소짓던 여섯 살 아이였어요. 얘네 어머니는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도 아기들이랑 같이 찍은 사진들 다 가지고 있어요.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 있으세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어떤 어머니가 장난감 축구대 게임을 한번 해보시겠다고, 본인이 안고 있던 아기를 데리고 있어 달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제가 안아서 얼르고 어머니는 게임을 하시는데, 너무 표정이 밝은 거예요. 두 손이 잠깐 자유로워진 것만으로도 표정이 달라지는 걸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엄마 혼자 육아를 도맡아하는 건 힘겹다는 것도 느꼈고, 모든 부모들이 잠시나마 자유롭게 되진 못한다는 게 안타깝기도 했어요. 키즈카페는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 같아요. 저도 20대 여자니까 키즈카페 알바를 하면서 그런 걸 경험했던 게 의미가 크지만, 그만큼 되게 힘들기도 했어요. 아이 키우기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상황이 되면 정말 좋겠어요. 아이들도 키즈카페같이 폐쇄된 공간 말고 바깥에서도 더 많이 뛰어놀면 좋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