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렐라【명사】12시가 되기 전 집에 가야만 하는 신데렐라처럼, 무언가를 하다가도 정해진 시간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하는 20대를 빗댄 신조어.
왕자는 신데렐라가 흘린 유리구두 한 짝 덕분에 그녀와 재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구두의 주인이 신데렐라였다는 것을 어떻게 안 걸까? 상상해보건대, 왕자는 신데렐라와 춤을 추면서 투명한 유리구두를 통해 그녀의 상처투성이 발을 보았을 것이다. 새어머니와 새언니들의 구박을 견디며 쉴 새 없이 집 안팎을 돌아다닌 탓에 크게 붓고 부르튼 그녀의 발을 왕자는 분명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즌1을 마무리하고 새로이 시작하는 알바렐라 2013에서는 일터 안팎에서 험난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 시대의 알바렐라들에게 유리구두 대신 체크리스트를 건넨다. 체크리스트의 단면을 통해 그들의 상처투성이 발을 사회를 향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알바렐라들이 행복한 결말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고함20과 독자들이 그 길을 터줄 수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소망해본다.

 

고함20이 야심차게 준비한 재밌고 우울하고 유쾌하나 서글픈 20대 알바 수난기, 다시 쓰는 그 아홉 번째 이야기. 어렸을 적 배웠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기억하는가? 힘을 이용해 반 아이들을 괴롭히던 일그러진 영웅엄석대. 엄석대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자기 반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차 알려 하지 않던 담임선생님. 더럽고 치사한권력 이야기가 즐거움과 행복의 공간 패밀리레스토랑 안에서도 펼쳐진다. 짬밥이 곧 법이요, 진리인 더럽고 치사한공간. 패밀리레스토랑 알바생 양렐라(22)씨의 한 맺힌 하소연을 들어보자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스물두 살 양렐라입니다. 작년 7월부터 11월까지 4개월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했어요.

Q. 시급은 얼마였나요? 그리고 근무시간은 어땠나요?
시급은 5100원으로 시작했고, 그만둘 때는 5300원이었어요. 일을 잘한다 싶으면 200원씩 올려줬죠 

근무시간은 그때그때 달랐어요. 많이 할 때는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12시간 내내 일했어요. 억지로 한 건 아니고, 제가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하겠다고 했어요. 적게 일할 때는 4시간 정도 하기도 했고요. 자기 스케줄은 자기가 정하는 거라, 일 하기 싫은 시간에 억지로 나온다거나 퇴근을 늦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Q.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맨 처음엔 서버로 뽑힌 거라 서빙 일을 담당했어요. 그렇다고 말 그대로 서빙만 했던 건 아니고요. 주문 받고 음식 나르고 테이블 닦는 건 기본이었고, 유리창 청소, 걸레 빨기, 샐러드바 관리도 했죠. 마지막 한 달은 서버 말고 SPG(smile people greeter)로 일했어요  

Q. SPG?
. SPG는 새로 오신 손님들을 웃으면서 자리로 안내하는 일만 해요. 자리 안내하고, 웨이팅 명단 관리하는 그런 일이요. SPG는 별로 할 일도 없고 육체적으로 힘들지도 않아서, 별로 그만 두지도 않고 그만큼 되기도 어려워요.

Q. 그런데 SPG가 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일을 그만 두셨네요
. 하는 일 자체는 쉽고 편했는데,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컸어요. 텃세가 심하기도 했고, 남자 매니저님도 이상했고요

Q. 텃세가 있었어요?
. 패밀리레스토랑은 대체적으로 텃세가 심해요. 저희 매장엔 유난히 텃세가 심한 한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는 알바를 2년이나 했어요. 매니저님보다도 오래 일한 거죠. 그러니까 매니저님도 그 언니한테는 뭐라고 못 했어요

처음 들어왔을 때는 그 언니가 건강 때문에 일을 한 달 동안 쉬어서 별 일이 없었는데
, 그 언니가 복귀하자마자 지옥이 시작됐어요. 매니저도 아니고 그냥 일개 알바생일 뿐인데, 자기는 음식도 절대 안 나르고 치우지도 않고 감시만 해요. 다른 애들이 안 웃으면 왜 안 웃냐고 지적하기도 하고요. 다른 애들이 바빠서 발 동동 거리고 있을 때, 자기는 음료 잔에 에이드 채워서 그거 마시고 다녀요. 자기가 주문을 잘 못 받아놓고, 다른 사람한테 뒤집어 씌기도 하고요.

Q. 매니저나 점장도 그 사실을 알았나요?
자세히는 몰랐을지라도 대충은 알고 있었을 거에요. 근데 일 한지도 오래됐고, 자기들하고도 친하고 하니까 그냥 쉬쉬하는 거죠, . 그 언니가 매니저, 점장이랑 사적으로 술도 마시러 다니고 정말 친했어요. 관둘 때는 열 받아서 그 언니가 여태까지 어떤 식으로 애들을 괴롭혔는지 매니저, 점장한테 다 말하고 그만 뒀어요. 근데 그 이후로도 별로 달라진 건 없대요.

Q. 남자 매니저도 이상했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제가 무덤덤한 성격이라 그 당시엔 별 생각 없었는데, 그만 두고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정말 불쾌했어요. 굳이 귓속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 꼭 귓속말로 말을 해요. 그리고 항상 시덥지도 않은 불쾌한 농담을 하는데, 제가 싫어하면 아으~ 우리 렐라는 이런 거 싫어한단 말이야~’ 이래요. 변태같은 말투로요

오래된 일이라 정확히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한 번은 성희롱에 가까운 말도 했어요.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아무런 대응을 못했는데, 나중에 같이 일하는 오빠한테 물어봤더니 기겁을 하더라고요. 다시는 저 사람이랑 상종하지 말라면서

Q. 여자 알바생들에게만 그랬던 건가요?
여자 알바생들한테는 그런 불쾌한 농담들을 했고, 남자 알바생들한테는 폭언을 했어요. 조금만 열 받으면 소리 지르고 화내고, 심하게 욕하고요. 가끔씩 장난인 것처럼 주먹으로 팔도 때리고 막대했어요.

Q. 그 외에 힘든 일은 없었나요?
많죠. 무엇보다 유니폼이 정말 싫었어요. 패밀리레스토랑에서는 서버들이 테이블 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아서 주문을 받잖아요? 그런데 여자들은 까만 미니스커트를 입어야 해요. 짧은 치마를 입고 쪼그려 앉자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어요. 원래는 한 쪽 무릎만 꿇고 쪼그려 앉은 채 주문을 받는 건데, 그럼 치마 안이 보일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자들은 아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아요. 정말 굴욕적이죠. 치마를 입힐 거면 주문을 서서 받게 하든가, 쪼그려 앉게 할 거면 바지를 입히든가 해야죠

그리고 여자 알바생들은 항상 풀 메이크업을 해야 해요. 가끔 피곤하거나 바빠서 화장을 연하게 하고 온 날이면, 매니저님이 들어가서 화장 다시하고 오라고 해요. 도대체 짧은 치마, 진한 화장이 음식 나르는 일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어요.

Q. 그럼 유니폼은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전부 지급하는 건가요?
아뇨. 티만 지급해줘요. 검은 치마, 검은 페도라, 신발은 제가 사야해요. 치마는 평소에도 입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나머지는 정말 돈 아까웠어요. 검은색 신발을 신어야 하는데 운동화는 안 되고, 구두도 미끄러질 수 있으니까 안 된대요. 그래서 돈 줘도 안 신을 것 같은 효도화를 샀어요. 요즘 세상에 검은 페도라랑 효도화를 누가 하고 다녀요.

Q. 별명을 사용한다거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거나 하는 건 어땠나요? 패밀리레스토랑만의 특징이잖아요.
정말 끔찍하게 싫었어요. 창피하잖아요. 이 나이 먹고 쑤, 예니, 리미 이런 이름으로 불려야 하니까요. 본명으로 하겠다는데도 본명은 절대 못쓰게 하고 무조건 가명을 만들어 오래요

생일 축하 노래는 창피한 건 둘 째 치고, 생일 축하 노래 한 번 하고 나면 일이 개판이 돼요. 테이블을 구역으로 나눠서 한 구역 당 두 명이 담당하는데, 생일 축하 요청이 오면 한 테이블에 대여섯 명이 가야 하잖아요. 그럼 나머지 구역은 그야말로 마비가 되는 거 에요. 그래서 바쁜 날에 생일 축하 노래 요청 들어오면, 정말 싫어했어요.

Q. 진상 손님은 없었나요?
정말 많아요. 음식 다 먹었으니 리필해 달라는 손님, 크림 파스타 시켜놓고 느끼해서 못 먹겠다는 손님, 원래 그을려서 나오는 스모크 음식인데 겉이 탔다며 바꿔달라는 손님, 스프 하나만 시켜놓고 왜 하나만 주냐, 더러워서 어떻게 둘이 하나로 먹겠냐는 부부.

할인과 관련해서도 무리한 요구가 많았어요. 카드사 포인트가 있어야만 할인이 적용 되는데,포인트도 없으면서 할인 해달라고 떼쓰는 경우도 여러 번이었고요. 할인 안 되는 통신사 카드 가져와서, 왜 나만 안 해주냐며 막무가내로 뭐라 하기도 해요

어떤 이상한 손님들은 음식은 안 시키고, 음료만 시킨 채로 보드게임을 하세요. 부루마블 같은 걸요. 밖에는 웨이팅이 30분이 잡혀있는데도 말이에요. 음료를 시켰으니 차마 내쫓을 수는 없고, 정말 짜증나죠. 근데 더 웃긴 건 그 손님들이 한 달에 한 두 번은 꼭 오셨다는 거에요. 하도 그러니까 나중엔 알바생들도 다 그러려니 했어요

Q. 크게 실수했던 적은 없나요?
어요.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요. 테이블 정리를 하다가 실수로 칼을 떨어트렸는데, 그게 손님 핸드폰 액정에 딱 꽂힌 거에요! 안 믿기시죠? 근데 진짜에요. 핸드폰에 칼이 딱 박혔어요. 저도 놀라고 손님도 놀라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죠

Q. 수리비는 어떻게 했나요?
패밀리레스토랑 회사에서 부담했어요. 확실히 대기업이라 그런지 이런 일에는 관대했어요. 알바 하다가 다치면 치료비도 회사에서 내 줬고요. 근로조건이 열악하지는 않았어요.

Q. 마지막으로, 패밀리레스토랑을 찾는 손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없나요?
버가 추천하는 메뉴는 절대 드시지 마세요! ‘이번에 새로 나온 거다, 맛있다, 인기가 많다하며 추천하지만, 사실은 재고가 많이 남은 거 에요. 사실 알바생은 그게 무슨 맛인지,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요. 먹어 보지도 못한 메뉴를 지시 내려오는 대로 추천할 뿐이에요. 그냥 원래 먹고 싶었던 걸 시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