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학기 초, 축제 때면 어김없이 대학 캠퍼스는 수많은 자보로 뒤덮인다. 동아리, 학생회 등 여러 단체에서 학기 초에는 신입 회원 모집을 위해, 축제 때는 축제 부스 홍보를 위해 자보를 붙인다. 보다 많은 학우들이 신입 회원으로 지원하고, 축제 부스에 참여하길 바라는 욕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런 욕심은 지나가던 학우의 눈길을 단번에 멈춰 세울만한 창의력 넘치는 디자인과 문구의 개발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해서 만든 자보라 할지라도, 일단은 학우들의 시선에 한 번이라도 노출이 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각 단체들은 엄청난 수의 자보를 캠퍼스 곳곳에 부착한다. 단체의 수 또한 워낙 많다보니 학기 초, 축제 때 자보가 범람하는 상황은 가히 ‘자보 전쟁’이라 불릴만하다.

자보 전쟁은 몇 가지 폐해를 가져온다. 우선, 덕지덕지 붙은 수많은 자보는 캠퍼스의 미관을 해친다. 캠퍼스에는 학우들이 유달리 자주 오가는 지역이 있기 마련이다. 그 지역은 자보 전쟁의 가장 치열한 전쟁터가 된다. 각 단체의 자보들은 치열한 전쟁터 속으로 뛰어들어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노력한다.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싸움은 혼란과 무질서로 이어진다. 이렇게 자보들이 마구잡이로 붙여진 광경을 보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비가 오거나 강한 바람이 불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비와 바람을 견디지 못한 자보들은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테이프 언저리 부분만 너덜너덜 남게 된다. 이 때문에 일부 단체에서는 자보가 비와 바람을 견딜 수 있게 청테이프를 사용한다. 청테이프까지 붙은 캠퍼스의 경관은 더욱 망가진다. 청테이프는 접착력이 강한 탓에 떼기 힘들뿐 더러 떼고 난 후에 잔해가 남는다. 자보를 다 떼더라도 청테이프의 잔해는 굳건히 남아 캠퍼스의 미관을 지속적으로 해친다.


자보 전쟁으로 인한 종이 낭비도 심각하다. 카이스트 환경 동아리 G-ink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카이스트의 50여개 동아리는 자보를 만들기 위해 3월 한 달 동안 A4용지 2만부를 사용했다. G-ink 측은 조사에 포함시키지 못한 단체들의 자보까지 합하면 2만부보다 훨씬 더 많은 종이가 쓰였을 것으로 예상한다. 학부생 수가 4000명으로 적은 편인 카이스트에서 2만부가 넘는 자보를 사용한다면, 일반 종합대에서는 더 많은 자보를 사용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G-ink 김혜승 회장은 “자보로 사용하는 종이 중에는 정말 좋은 종이들도 많다.”며 “종이를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종이 낭비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캠퍼스를 돌며 수거한 자보를 운동장에 모아서 펼쳐 놓는 퍼포먼스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자보를 붙이기만 하고 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보 구석에 철거일을 명시하는 관습이 있긴 하다. 자보를 부착한 단체에서 철거일에 스스로 철거를 하자는 취지였을 테다. 하지만 대부분의 단체는 형식적으로 철거일을 적어놓을 뿐이지 실제로 철거를 하진 않는다. 그러다보니 철거일이 한참 지난 자보가 남아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자보를 붙이는 사람은 많아도 떼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점은 자보 전쟁의 폐해를 더욱 가중시킨다.


자보 전쟁은 자보를 붙인 각 단체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 각 단체는 홍보를 더 잘하자는 생각으로 캠퍼스 곳곳에 많은 자보를 붙인다. 그런데 같은 생각으로 모든 단체들이 많은 자보를 붙인다. 이로 인해 어느 누구도 자보를 많이 붙인 만큼의 홍보 효과를 얻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아무에게도 이득이 없는 소모적인 경쟁인 것이다. 실제 전쟁을 봐도 승자와 패자는 나뉘지만 전쟁터는 어김없이 폐허가 된다. 자보 전쟁 또한 마찬가지다. 자보 전쟁의 전쟁터인 대학 캠퍼스는 자보 전쟁의 폐해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