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사는 건가?”

2013년의 대학교. ‘캠퍼스의 낭만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대학생들은 마치 스펙 수집가처럼 이런저런 스펙을 쌓기 위해 바쁘게 몸을 놀린다. 남들보다 더 나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공부를 한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대학교 생활을 하고, 어느덧 졸업을 한다.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쩐지 무언가 중요한 게 빠진 느낌이다. 과연 대학교에 다니면서, 내가 하고 싶어서 한 활동이 얼마나 될까? 내가 하고 싶은 생각은 정말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걸까? 과연 나는 나의 의지에 의해서 나를 움직였나? 수많은 대학생이 딜레마에 휩싸인다.

이러한 딜레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청년들의 다양한 움직임이 있다. 주류 사회가 은연중에 청년들에게 요구하는 스펙, 경쟁을 넘어, 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고안한 독창적인 활동을 통해 주류 사회의 프레임에 약하게나마 반향을 주고 있다. 그중에는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리는 활동들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영향을 줄 수 있는 활동들도 많다. 생각에 변화를 일으킨다거나, 새로운 행동을 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날 행사 오프닝 공연을 한 인디밴드 레드 커뮬러스.


지난 23일 저녁, 홍대 공중캠프에서 자치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생활도서관 네트워크가 주최한 <생도살롱: 자치를 말하다>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자치공동체들이 모여 자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자치활동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까?’, ‘자치활동이 과연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지속 가능한 자치활동의 방향은 무엇일까?’ 등 자치와 자치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였고, 서로 간에 고민을 공유하였다.

생활도서관의 고민, 결국 모든 자치공동체의 고민이기도 해

이번 행사를 주최한 생활도서관 네트워크는 7개 대학(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인하대, 이화여대, 한국외국어대, 서강대)의 생활도서관이 느슨하게 모인 공동체다. 90년대 초 당시에 지정된 금서들을 학생들이 모으는 과정에서 생겨난 생활도서관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장서를 관리하고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대학교 내의 학생자치공간으로써 자리매김하였다. 자유롭게 책을 읽고, 어떤 주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생활도서관은 스펙과 학점 이상의 무언가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생활도서관 네트워크가 결성된 것은 각 생활도서관 간에 연대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학교가 취업을 하기 위한 필수 경로로서 인식되고 학생 사회가 파편화되면서, 생활도서관을 위시한 대학교 내 학생자치활동이 위축되는 상황임을 인식한 것. 이번 행사 역시 이러한 고민 위에서 진행되었다.

<생도살롱: 자치를 말하다>는 지난 5월 13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 ‘2013 생활도서관 네트워크 페스티벌의 마지막 행사다. 그 이전에 5개의 생활도서관에서 개별적으로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청소노동자, 시간강사 등 다양한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기도 했고, ‘나의 욕망과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으며, 여성주의 관련 영화를 상영하고 여성주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날 생도살롱은 페스티벌에서 열린 모든 행사를 총괄하는 자리이자, 생활도서관 네트워크가 이번 페스티벌을 개최한 이유를 보여준 자리이기도 했다.

행사는 총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부 행사는 각 학교의 생활도서관 소개였다. 각각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학교 내에서 주체성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주체성을 회복하는 공간을 자칭하는 생활도서관의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 생활도서관에서의 활동을 통해 일상을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 것인가, 생활도서관에서의 담론을 어떻게 하면 바깥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인가, 등에 대한 고민이 나왔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2부 행사에서도 이어졌다. 2부 행사는 노리단, 자유인문캠프, 씨앗들협동조합, 민달팽이 유니온 등 네 개의 자치공동체가 참여해, 생활도서관 네트워크 측이 던진 네 개의 질문에 답하고 청중들의 질문에 자유롭게 답하는 시간이었다.

그 이전에 생활도서관 네트워크의 자치에 대한 기조발제가 있었다. 기조발제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타자라는 개념이었다. 자치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자치공동체를 억압하는 권력도 아닌, 자치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다가도 때로는 무관심해지기도 하는 일반인들을 그렇게 규정한 것이다. 이들은 자치공동체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타자와의 관계 설정이 중요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타자를 끌어들이고 타자와 소통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 잘 알고 있기에 그 지점에 대해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기조발제문을 쓴 박원익(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 위원) 씨는 “‘이게 사는 건가?’ 라는 질문을 생도페스티벌 제목을 통해 했고 이를 통해 자치공동체의 공동체성을 향유하려고 시도해 왔지만, 여전히 타인들을 고려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면서 기본적으로 자치란 타인에 대한 의존을 함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자치공동체가 모든 것과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 혹은 타 공동체 및 사회와 관계를 맺으며 존재해 나간다는 의미다. 박 씨는 그러면서도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에 의존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타인에게 의존할 수는 있지만, 그런 관계를 늘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나아가 어떤 주류적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는 형태로 관계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생활도서관 네트워크에서 제기한 이러한 문제의식들은 비단 생활도서관에서만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날 참석한 네 개의 자치공동체들 역시 그러한 문제의식에 각자의 방식으로 충분한 공감을 표했다. 다만 서로가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가 속한 분야에 따라 조금씩 사안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자치, 결코 혼자서 할 수 없어

서관 박원익 씨, 노리단 양기민 씨, 씨앗들협동조합 이환희 씨, 민달팽이유니온 권지웅 씨, 자유인문캠프 곽동건 씨.


이날 행사에 참여한 네 개의 자치공동체는 자치란 무엇인가, 자치적인 공동체의 활동을 통해 타인의 자유와 자치의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가, 타인과의 네트워크 경험이 있나, 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선 자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각 단체마다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씨앗들협동조합의 이환희 씨는 획일적이고 타율적인 체제의 구조 하에서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이 자유와 자율권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으로 자치를 규정하면서 우리가 자율적으로 텃밭 가꾸기 활동을 선택한 것 자체가 자치와 의미가 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씨앗들협동조합은 텃밭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모여 협동조합을 구성한 형태다.

민달팽이 유니온의 권지웅 씨는 우리가 이룬 공동체만으로 자치가 성립되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실제 자기의 권한을 획득하는 과정을 거쳤을 때 비로소 자치가 성립된다고 본다면서 자치활동이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유인문캠프의 곽동건 씨도 이에 동의했다.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활동하면서도 즐겁게, 끈질기게 그 영역을 넓혀가는 것으로 자치를 정의하면서 그것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닌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고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 나가는 과정을 자기교육이라 정의하면서, 이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역량을 확보하여 자치를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자치적인 공동체의 활동이 타인의 자유와 자치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각 단체들 간 입장이 엇갈렸다. 사회적기업 노리단의 양기민 씨는 여기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나는 자치적이고 주체적이다라고 강하게 표명하는 순간 다른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없어진다. 자치라는 건 민주적인 퍼포먼스이다라며 사실상 오늘날 이 시점에서 자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대신 그는 민폐를 끼쳐도 좋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하고 일할 때도, 너무 이익을 생각할 필요가 없고 등가교환을 해야 할 필요도 없어요. 의존하는 걸 꺼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반면에 자유인문캠프 곽동건 씨는 상반된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자치적인 공동체의 활동을 통해 타인에게 작게나마 변화를 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저희 자유인문캠프에서 주최하는) 수업을 통해 대안적인 상상력을 키운 사람들이, 십 년 뒤에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라고 봐요. 최초의 이런 계기마저 없다면 세상을 바꾸는 건 점점 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는 한 시민 수강생이 공부하고 토론하다 보니 다시 대학생이 된 것 같다는 말을 했다면서 거기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원활한 자치활동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네트워킹이 중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양기민 씨는 자치를 통해 스스로 좋은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기에 자치활동 자체는 계속되었으면 한다. 다만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거다. 특히 다른 세대에 대한 포섭이 필요하다. 우리가 변하든, 그들이 변하든 해야 한다면서 타인들과의 적극적 관계맺기를 강조했다. 곽동건 씨도 다른 자치단체들과 만나서 같이 일을 할 때 그들의 자율성에만 모든 걸 맡기면 망한다. 서로 책임감을 가지고 지속하는 연대, 그 연대를 통해 얻는 작지만 소중한 승리의 경험이 네트워킹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지점이라고 본다면서 이에 동조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씨앗들협동조합의 이환희 씨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전에 초등학교에 텃밭 활동을 나갔을 때, 의외로 애들이 정말 좋아했어요. 아이들이 텃밭 활동을 통해 육체노동의 즐거움을 알고 생태적 가치를 인식하다 보면, 적어도 그 중 일부는 기존의 체제와는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거예요.”

서로 처한 상황 등에 따라 생각하는 바는 달랐지만, 자치공동체의 자치활동이 단순히 어떤 사명감주체성만으론 성립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선 모두들 동의하는 모습이었다. 세대와 이념을 넘어서는 다양한 네트워킹이 필요하고, 자치공동체가 보다 적극적으로 타자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점이 논의의 핵심이었다. 민달팽이 유니온의 권지웅 씨는 이에 대해 자치의 영역이 고되고 열정적이라면, 나와는 다른 누군가가 들어왔을 때 불편함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면서 이 활동이 가치가 있다고 주목을 받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들어왔더라도 그런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자기의 자치 공간을 잘 만드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진 청중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에서는 자치공동체들이 서로의 고민을 보다 직접적으로 공유하였다. 자치공동체가 협력할 수 있는 타자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자치공동체가 어딘가에 깊이 의존하게 되면 자칫 무너질 수 있는 건 아닌지, 자치활동이 보다 생활 깊숙이 침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가 말하고 있는 자치라고 하는 게 낡은 개념은 아닌지, 등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토론을 함으로써 나름대로의 해답을 마련하려는 모습이었다.

오늘 제기된 고민들이 한 번의 토론만으로 명쾌하게 해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치공동체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서로의 생각을 치열하게 논했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미가 있는 자리였다.
 

*참여 단체 소개
 

민달팽이 유니온: 2, 30대 청년들이 만성적으로 겪고 있는 주거불안을 해결하고자 활동하는 단체이다. 주거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대학생들은 '집 없는 달팽이'인 민달팽이와 같다는 뜻에서 민달팽이 유니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기숙사 확충, 주거환경개선, 주거상담, 주거실태조사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대학 4곳의 민달팽이 자치 모임을 지원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주거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사회적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함으로써, 임대시장에서 소외된 많은 이들의 주거안전망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노리단: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으로, 이 분야에서는 최초의 사회적 기업이다. 2004년 6월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의 창의적인 문화예술 작업을 통한 창업 프로젝트에서 시작하였고, 2007년에 정식으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공연사업, 교육사업, 디자인사업, 기획/행사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역 재생과 커뮤니티 활성화, 청년세대의 새로운 자립모델 확장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자유인문캠프: 중앙대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구성한 기획단.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한 뒤 중앙대 내에서는 학과구조조정, 언론탄압 등 학생사회에 직접적 피해를 주는 일들이 잇달아 일어났고, 이는 학생들이 자유인문캠프를 결성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자유인문캠프는 기본적으로 중앙대 내에서 자체적으로 강연을 기획하는 일을 한다. 연사를 초청하고, 강연의 틀을 짠다. 이 밖에 새내기교양학교를 개최해 새내기들과 요즘 대학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함께 모여 책읽기 활동을 하는 등, 학교의 기업화로 인해 무너져가는 대학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씨앗들협동조합: 함께 텃밭을 가꾸어 나가는 협동조합. 처음에는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란 이름의 연합동아리로 시작하였는데, 대학교 내의 자투리 땅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게 그 시초였다. 그러다가 동아리 회원들이 졸업을 하면서, 이들이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였다. 기본적으로 텃밭을 가꾸어 텃밭에서 나는 작물들을 파는 일을 하며, 이 밖에 텃밭학교를 열어 사람들에게 도시농업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