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대입에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수능시험에 국사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포함시키고, 각 대학이 국사 과목을 입학전형자료로 반드시 반영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학능력시험에서 매해 한국사 응시자 비율이 줄어들고 있고, 청소년들의 잘못된 역사 인식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 이러한 ‘국사 교육 의무화’ 주장의 배경이다. 그러나 ‘의무화’를 통한 역사 교육의 강조는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며, 민족주의적인 생각이라는 점에서 위험성을 안고 있다.

국사 교육은 사실 이미 의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는 이미 국사 과목이 필수 이수 교과목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는 당연히 ‘내신’ 평가 요소에 해당되는 상황이다. 중고등학교 역사 과목에는 총 255시간이 배정되어 있다. 중등교육 이상을 이수한 경우라면, 모든 국민이 국사교과서의 내용을 한 번 이상은 교육받는다는 이야기다. 암기 위주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현행 국사 교육 하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험 이후에 배운 내용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수능시험에서 한국사 시험을 본다고 해도 그 망각 효과는 지연될 뿐, 상쇄돼지 않는다. 소위 ‘국영수’가 필수과목이라고 해서 모두가 ‘국영수’를 잘하지는 않는 것처럼, 한국사가 필수과목이 된다고 해서 모두가 한국사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갖게 될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 파악이 잘못됐다. 오히려 이미 국사 교육은 ‘너무 많이’ 강조되고 있다. 국사 교과서의 첫 장에는 역사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 기술되어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카(E.H.Carr)의 유명한 말이 제시된다. 그러나 이미 한국사 교과서에는 현재와의 관련성을 찾기도 어려운 수많은 ‘단편적 지식’들이 가득한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시험에서 써먹고 버리는 ‘일회성 지식’에 대한 교육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장의 교사들과 학원 강사들은 이러한 암기 지식들을 만들기 위한 ‘암기 비법’을 만들어서 가르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내신, 수능, 심지어 최근에는 ‘취업 스펙화’ 되어 가고 있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까지, 다중의 방식으로 이미 수많은 한국사 지식들이 ‘쓸데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노출되고 있다. 더 이상 의무화할 한국사도 없으며, 더 많이 강조하고 의무화한다고 해서 교육 목적을 성취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사 교육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들에는 어떤 다른 욕망들이 꿈틀거린다. 전국민에게 ‘단일한 역사관’을 교육시켜 ‘하나의 민족’을 구성하고 싶어 하는 민족주의적 욕망이 가장 크게 보인다. 이런 생각은 민족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다문화가 이루어지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한국사회과교육학회의 이윤호 회장은 “독일 극우학생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독일사 교육을 강화하자는 주장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로, 한국사 교육 강화 주장의 ‘민족주의적 모순’을 비판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 같은 외국의 ‘극우 민족주의’는 비판하면서, 그에 대한 대책으로 한국사 교육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자기모순에 다름 아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의 전형적 사례다. 한국사의 ‘의무화’를 주장하는 것을 그만두고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