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면서,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일베 유저에 대한 경계심 높아져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을 ‘일베충’으로 낙인찍고 공격하기도
‘광의의 일베충’ 개념 적용하는 일베 혐오 정서, 오히려 일베 내부를 단결시키는 효과만


일베(일간베스트의 줄임말)는 여전히 ‘핫’하다. 전두환을 찬양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말하는 극우적 정치색을 보여주며,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과 편견을 극단적으로 표출한다 . 여론의 비난에도 일베 유저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를 문제화시키는 것을 즐긴다. 세력을 확장한 일베 유저들은 어느새 포털 댓글란마저 장악하면서 그들의 정체성을 방방곳곳에 아로새긴다.

그러나 일베는 인터넷상에서 소수다. 여전히 중도,진보적 색채의 커뮤니티가 더 많고, 정치색과 관련 없이 일베의 반 사회성에 반감을 가진 네티즌이 대다수다. 결국 일베는 인터넷상의 ‘절대악'이 되었고, ‘안티MB'가 지나간 자리에는 ’안티일베‘가 남았다. 


ⓒ 안티일베 페이스북 페이지 '너 일베충이니'


'일베 용어' 언급하는 연예인, ‘일베충’(일베유저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낙인찍혀

시작은 시크릿의 전효성이었다. 전효성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다. '민주화' 시키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일베에서 글을 ‘비추천’할 때 쓰이는 말이 ‘민주화’인데, 전효성 역시 ‘민주화’라는 말을 일베 유저들처럼 부정적인 맥락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았다. 동시에 전효성 본인은 일베 유저임을 부정했음에도, “전효성도 일베충이다”는 의혹은 확산돼갔다. 전효성은 ‘민주화’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했다는 점 보다는, 네티즌들에 의해 일베와 결부되면서 더 큰 비난을 받았다. 

아이돌 그룹 크레용팝 역시 ‘일베충’으로 몰려서 곤욕을 치러야했다. 크레용팝의 멤버 웨이가 크레용팝 트위터 계정에 “오늘 여러분 노무노무 멋졌던 거 알죠” 라고 쓴 것이 화근이었다. “‘노무노무’라는 말은 일베에서 쓰는 노무현 비하 표현이다”라는 의견이 올라오면서, 크레용팝은 어느덧  ‘일베 아이돌’로 낙인찍혔다. 심지어 네티즌들은 지난 겨울에 크레용팝이 찍은 영상에서 ‘쩔뚝이’(일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할 때 쓰는 말)라는 말이 나온 것을 찾아내면서, “크레용팝 멤버들은 일베충이다”라는 심증을 굳혀나가고 있는 분위기다.

밴드 10cm의 멤버 권정열 역시 ‘일베충’으로 몰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크레용팝이 일베논란에 휩싸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크레용팝을 공개적으로 좋아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덧붙여 권정열은 ‘유머저장소’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구독하고 있는데, 그 페이지에 일베에서 퍼온 유머 자료가 많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이쯤 되니 일베충으로 몰아가는 방식 자체가 너무나 황당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일베충 낙인찍기’는 연예인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마스터셰프코리아2에 참가한 김영준씨는, 트위터 계정 (@kyjfood)에서 일베저장소와 극우인사인 변희재, 남성연대 성재기를 팔로우 하고 있다는 이유로 ‘일베충’으로 몰려서 비난 받았다. 그는 트위터상으로나 방송으로나 정치적인 의사를 밝힌 적도 없고, 심지어 일베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를 말한 적도 없다. 

작년 6월 무렵에 가수 김진표가 ‘탑 기어 코리아’에서 ‘운지’(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비하)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김진표의 사과 이후에는 여론이 잠잠해졌다. 전 프로게이머 홍진호와 해설자 김태형은 작년 초 온게임넷 프로그램에서 “민주화시킨다”라는 말을 쓴 것이 뒤늦게 논란이 되었지만, 정작 방송 당시에는 조용히 지나갔다. 최근들어 ‘일베충 낙인찍기’가 유난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일베에 대한 혐오감과 경계심이 과도하게 높은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크레용팝을 '일베충'으로 만든 문제의 트위터 글.



‘광의의 일베충’ 개념, 일베 비난하는데 적합하지 못해

일베에서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하는 단어들을 대중 앞에서 쓰는, 무지와 경솔함은 비판해야 마땅한다. 일베에서 쓰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에 모욕적인 함의가 숨겨져 있어서다. 그러나 언행에 대한 비판이 아닌, “특정한 단어를 썼으니 일베충이다”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일베충’이라는 표식을 붙이고, 일베의 이미지를 덮어씌우는 것부터 연예인을 향한 과도한 비난일뿐더러, 비난 방식 역시 일베의 행태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일베에서는 야권, 진보단체는 악의 상징이고, 마치 그 자체로 비난받아야 마땅할 존재들처럼 묘사 된다. 또한 진보적 정치성향을 비난하고, 종북 운운하는 행위가 일베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놀이처럼 인식된다. 누가 더 자극적으로, 재미있게 비난할 수 있는지 경쟁하는 구도가 되는 것이다. 정작 왜 그들이 진보세력을 비판하게 됐는지는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일베를 싫어하는 사람들 중에는 진보적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범야권 지지 세력이 많다.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모욕하고, 야권 정치인과 진보단체들을 무작정 종북이라고 밀어붙이는 일베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모순적인 것은 그들 스스로가 ‘일베충’들의 행동을 따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일베를 절대적인 악으로 상정하고, 일베를 비난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동시에 ‘일베충 낙인찍기’ 역시 하나의 놀이로 만들어서, 약간의 근거만 있어도 “너 일베충이지”라며 일종의 사상검증을 하는게 유행이 되고 있다. 누군가를 종북으로 규정짓는것 만큼이나 폭력적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변희재는 ‘광의의 종북’ 개념을 “특별한 권력욕도 없고, 북한의 적화노선을 추종하지도 않는데 종북세력의 집권에 힘을 보태는 세력”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연예인들을 일베충으로 규정짓는 네티즌들은 “특별한 일베부심도 없고, 일베의 막장노선을 추종하지도 않는데, 일베충이 확산에 힘을 보태는 세력”이라는 광의의 일베충 개념을 만든 것은 아닐까? ‘일베충’을 규정짓는 명확한 기준도 없이, ‘크레용팝을 좋아하면 일베충’이라는 황당한 논리가 적용되는 수준까지 왔다면, 훗날에는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보이면 모두 ‘일베충’으로 분류되는 극단적인 상황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일베를 자주 보거나, 또는 일베에서 나오는 단어를 쓰는 사람을 전부 ‘일베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일베를 즐기는 깊이도 다르고, 일베를 지배하고 있는 정서에 공감하는 정도도 다르다. “일베에 들어가느냐 아니냐”가 비난의 잣대가 되는 것은 우습다. 어떤 글을 쓰고, 어떤 말을 하느냐에 비난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일베를 ‘악’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일베와 관련된 모든 걸 부정하고 타자화 시키다보면, 정작 일베를 ‘왜’ 싫어하는지는 망각하게 된다. 

그런데 정말 일베만 문제인 것일까? ‘일베 문화’ 중 가장 심각하게 봐야 할 부분은 사회적으로 약자로 분류될 수 있는 여성, 노동자, 재중동포, 호남출신 사람 등이 오히려 특권을 누린다며 비난하는 행태다. 이것이 극우적 정치성향과 맞물리면서, 파시즘의 징후로 비춰진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베가 아닌 다른 커뮤니티에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싫음’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분위기이고, 재중동포들은 악질 범죄자의 상징인 것처럼 이야기 된다. ‘김여사’ 유머를 통해 여성 운전자에 대한 편견은 당연한 듯 여겨진다. 일베라는 사이트 자체가 공격 대상이 되어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이미 일베가 상징하고 있는 ‘차별과 편견의 폭력’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일베는 그것을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뿐이다. 


‘우리안의 일베’ 경계해야

일본에는 일베와 비슷하게 인터넷에서 시작한 재특회(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가 있다. 그들은 재일 한국인이 특권을 받고 있다며 여론을 조작하고, 재일 한국인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 시위를 한다. 이들을 인터뷰해서 ‘거리로 나온 넷우익’을 쓴 야스다 고이치는 이들이 우리의 편견처럼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이라고 말한다.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사는 소시민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재특회를 일베와 등치시킨다면, 일베를 하는 사람들도 역시 '평범한' 10대~20대 남성이 대부분일 것이다. 일베 문화가 ‘이웃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면, 민주당 의견을 따라 일베 폐쇄를 하더라도 또 다른 일베가 생길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일베의 이미지가 나쁘다는 걸 이용해서, 연예인들을 일베충으로 낙인찍는다고 한다고 해서 일베의 세력이 약화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부당한 공격이라고 생각하고, 그들끼리 똘똘 뭉칠 것이다. 실제로 일베 유저들은 무분별한 ‘일베충 낙인찍기’에 대응해, ‘일베충’이라는 단어에 대한 피로를 증폭시키기 위한 작전을 짠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아무 글에나 “너 일베충이지”라는 댓글을 달면서, 오히려 일베를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한 여론을 약화시키자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일베충 낙인찍기'는 역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일베가 괴물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외계에서 온 괴물이 아니라, 우리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임이 분명하다. ‘우리 안의 일베’를 경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베라는 사이트를 비난하면서도, 정작 맹목적이고 편견에 가득 찬 ‘일베의 논리’를 인터넷 상에 배출하는 것, 나아가 ‘광의의 일베충’ 개념을 만들어 일베를 비난하는 행위는 괴물을 잡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재작년 브레이빅 테러사건이 일어났을 때, 노르웨이 옌스 스톨텐베르크 총리의 애도사가 화제가 됐었다. 그는 끔직한 테러 앞에서도 굳건하게 “더 많은 민주주의, 더 큰 개방성, 더 많은 인간애로 대응 하겠다”고 말해서 전 세계의 박수를 받았다. ‘일베의 광풍’에 맞서는 대응방법 역시 일베를 마녀사냥하고 없애려고 드는 것이 아니라, 일베가 주장하는 편견과 차별의 논리가 틀렸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이 아닐까. 일베를 공격하기 전에, ‘우리 안의 일베’를 되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