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미리니름(스포일러) 있습니다.

스킨스는 얼마 전 4시즌을 끝마친 고등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국 청춘 드라마이다. 청춘 드라마라는 말이 무색하게 마약, 술, 섹스가 가득해 ‘막장’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거식증 환자, 게이, 무슬림, 바람둥이 이라는 특징을 가진 주인공들이 등장하여 드라마는 이들의 성장과정을 보여준다. 1,2시즌과 3,4시즌은 각각 다른 주인공들로 진행되었고 그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졸업할 때까지를 보여준다. 회별로 한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형식이다.

‘루저’들의 청소년기

<스킨스>가 <가쉽 걸>등의 다른 청춘물과 가장 차이나는 부분은 바로 주인공들이 마약이나 달고 사는 ‘루저’라는 점이다. 재벌도 없고 쌔끈한 파티 드레스도 없다. 이것은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 된다. 이들은 판타지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세계에 살고 다른 어떤 청춘물보다도 우리에 근접한 이들이다.

우리가 스무 살이 되기 이전에 마약과 섹스를 했기 때문에 이들과 비슷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불안하다. 아직도 나에 대해서 모르고, 다른 사람을, 관계를 알아가야 하고. 계속되는 상처를 경험한다. 이런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실수를 거듭한다. 결국에 그들은 사랑과 우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되거나. 혹은 영영 알지 못하게 된다.

주인공들은 어른 흉내를 내지 않는다. 치밀한 복수극이나 권력 싸움과 경쟁은 이 시리즈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은 언제나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알고 싶지 않은 상황에 직면하면 도망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질서에서 어긋난 것을 즐기며 어른이 되는 것을 지독히 무서워한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은 순전히 자신의 책임이 되고. 재미가 없는 끊임없는 반복이. 나의 부모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킨스>가 그리는 어른들

<스킨스>의 어른들은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학교의 선생님들은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고, 부모들은 바람을 피고, 자식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무능력 하고, 섹스에만 관심이 있고, 자식을 버리고, 자식을 없는 셈친다. 위에 열거한 1,2시즌의 부모들은 그래도 사실적인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3,4시즌에서는 어른들에 대한 반감이 뚜렷해지고, 그들에 대한 묘사도 훨씬 더 과장한다. 딸에게는 남자하고는 친하게 지내지도 못하게 하는 독실한 크리스챤이지만, 옆집 아저씨와 몰래 SM플레이를 즐기며 섹스를 즐기는 엄마와, 아들의 여자친구를 꼬시려 하고 엽기적인 행동만 하는 아빠, 자신이 잔 모든 남자의 성기를 주제로 전시회를 여는 엄마 등은 이들이 어른이 되고 싶지 않게 만든다.

<스킨스>에서 어른들과의 대결구도를 가장 전면에 드러낸 부분은 2시즌과 4시즌에 한 번씩 등장한다. 2시즌의 등장인물 토니는 잘생기고 똑똑하지만, 사람들을 가지고 장난치기를 좋아하고 사랑을 하는 법을 몰라 친구들을 다 잃는다. 갑작스런 교통사고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토니는 대학 면접을 보러 가서 자신의 미래를 본다. 토니가 지금처럼 산다면 그가 가졌을 미래는 이혼한 중년 교수, 새로 들어온 신입생과 잠자리를 갖는 것에서만 오르가즘을 느끼고, 허영과 자기 위로에만 가득 찬 껍데기 같은 존재이다. 절대 내가 되고 싶지 않았던 내가 혐오하던 모습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토니’는 그런 미래의 자신에게, 절대 당신같이 되지 않을 거라고 그를 이겨내며 새로운 자기 자신이 된다.

4시즌의 엔딩은 이러한 대결구도의 결정판이다. 환자인 “에피”에 집착하게 되어 그녀의 연인 “프레디”를 죽인 정신과 의사 “존 포스터”는 애들을 자신의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고, 10대들을 통해 욕망을 실현하려 하는 <스킨스>가 그리는 어른의 결정체다. 그리고 프레디의 친구 “쿡”은 그의 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나는 공간 낭비야, 그냥 멍청한 애지. 나는 개념도 없고, 범죄자에, 쓸모없지. 난 아무것도 아니야.” 이런 사람이고 <스킨스>의 주인공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이다. 이 둘은 만나고, 서로를 죽이려 달려들며 드라마는 끝난다. 이런 4시즌의 마지막 장면은 3,4시즌의 <스킨스>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린 너희처럼 되지 않을 거야. 우린 우리의 방식대로 살 거야. 라는 10대의 외침. 그들은 어른들을 비판하며 자신의 10대를 긍정한다.

영국 드라마

<스킨스>가 극단적인 것은 단순히 그 드라마의 속성인 것만은 아니다. 영국 드라마는 언제나 극단적이고, 사실적이며 엘리트를 그리기보다는 평범하거나, 그보다 못한 사람들을 그린다. 같은 Geek(과학 매니아:과학 덕후)를 그린 미국드라마 <빅뱅 이론>과 영국 드라마 <IT 크라우드>를 보면 차이는 명확하다. <빅뱅 이론>의 주인공들은 연애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찌질이들로 묘사되지만 실상 그들은 세계적인 천재이고 좋은 학교의 학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IT 크라우드>의 주인공들은 모든 분야에서 실패자다. 컴퓨터에 대한 일을 하지만 그들은 그저 ‘컴퓨터가 안되시나요? 켰다가 꺼 보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 그들 업무의 전부이다. 영국 드라마에서는 배우들도 완벽한 미남미녀보다는 평범하고, 통통한 주인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스토리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빅뱅 이론>은 그래도 현실적인 반면에, <IT 크라우드>는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기 힘들 것 같은 이야기를 만든다. 주연이 갑자기 자살하고, 응급번호 999번이 ‘0118 999 881 999 119 7253’번으로 바뀐다. 이러한 황당한 방법은 드라마의 전개를 절대 예상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전개는 기존의 식상한 내러티브에 질린 사람들에게 작품 자체로의 기쁨을 주며, 극단적인 상황설정은 현실을 왜곡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오히려 현실을 더 사실적으로 대변하기도 한다.

영국 드라마에서 할리우드식 문법이 아닌 작가 자신만의 색채를 드라마 안에 그릴 수 있는 것은 영국의 드라마들이 1시즌에 10회가 보통 넘지 않는 짧은 구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리 모두 제작된 후 방영되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개입도 없으며, 한 시즌에 열편이 안 되기 때문에 시청률에 대한 강박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드라마가 각기 다른 작가의 세계관을 가지고 자유롭게 만들어 질 수 있는 환경은 공장에서 찍어낸 프로그램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작품이 나오게 하는 토대가 된다.

스킨스의 스타일

<스킨스>의 스토리와 캐릭터에 적응을 하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도 <스킨스>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는 것은 영상미와 새로운 연출, 그리고 음악이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세련된 영상은 굳이 이 이야기를 책이 아니라 TV드라마로 해야 하는 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며, 수없이 다양한 종류의 연출기법, 광각을 사용한 초현실적 영상, 그리고 모든 장르의 완벽한 음악들과 결합하며 그 장면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부분이다.

브릿팝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드라마에서 핵심적인 요소를 하며, 주인공들이 직접 노래를 하는 장면이 뮤지컬 식으로 연출되는 장면들, 연극 무대장치를 활용한 부분들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스킨스>는 문화의 뷔페 그 자체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영국 특유의 알록달록하고 파격적인 옷들을 보는 것도 즐겁다. ‘스타일’. 이것 하나만으로도 스킨스는 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