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생각의 좌표. 낯익다 못해 생활어로 자리잡은 '생각'과 왠지 초등학교 수학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좌표'가 만들어내는 조합은 의외의 '끌림'을 불러일으켰고, 언젠가 꼭 읽어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저자가 그 유명한 홍세화라니. 진보 진영에서 지속적으로 글을 쓰며 자신의 주장을 많은 사람들에게 피력하는 홍세화가 6년만에 낸 신작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생각의 좌표』는 스포트라이트(까진 아니더라도 상당한 관심)를 받을 만한 책이었다.




▲ 출처 : http://image.yes24.com/goods/3599844/L




 주 2회 아침 8시에 회의를 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그 회의 덕에 적어도 1권의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매주 금요일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신나게 독서토론을 하는데 주마다 책을 바꾼다. 지난주 선정 도서가 『생각의 좌표』였다. 하지만 이런 인기도서를 왜 학교에는 두 세 권밖에 비치해 놓지 않는 건지, 예약자수도 많고 구하기도 지나치게 어려워서 결국 사고 말았다. 몇몇 도서만 심하게 사랑받는 더러운 세상!!!!!!!!!!!!!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빌리지 못하는 더러운 세상!!!!!!!


 읽기는 무척 금방 읽었다. 250여쪽 정도 되는 보통 두께였는데 소설책 읽듯 술술 읽었다. 처음부터 책읽기에 가속을 붙일 수 있었던 까닭은 1장 구성이 탄탄하고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이래서 처음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 일단 한 번 책을 거침없이 읽기 시작하면, 그동안 읽은 게 아까워서라도 책장의 끝을 보려 애쓰기 때문에- 첫 장을 신경 썼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느끼는 '저자 홍세화'는 항상 자기 주장이 강했다. 주관적 글쓰기에 강했고, 어느 정도의 필력도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도(아, 어느 정도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필요하겠다) 잘 먹힌다고 믿었다. 그 진가는 이 책에서도 발휘되지만, 어딘가 모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더 많은 독자를 품을 수 있는 대중성 혹은 모두를 홀릴(?) 수 있는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라든지, 더 깊숙하게 폐부를 찌르는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문제 많은 세상에 불만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별다른 부연이 필요 없었겠지만, 글쎄- '우리는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 하나만으로 사람들이 그 생각에 동조하는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라고 본다.


 물론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문제가 워낙 다양한 분야에 걸쳐 퍼져 있고, 그 뿌리도 오지게 단단하기 때문에 홍세화라는 개인 하나가 딱 들어맞는 멋진 답을 내려주는 '마법'을 부리는 것은 불가능할 게 뻔하다. 그 점을 감안하고라도, 대표적인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하고 있는 그가, 새로운 층위의 사람들까지는 끌어들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가 책 속에서 표현했던 '회색층'까지 동지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이 책은 대단한 위력을 가졌다고 감히 평가할 텐데.


 읽은 지 약 1주일 정도 되어서 그런지 자세한 내용까지는 가물하지만, 그의 직설적이고 훈계조에 가까운 이야기는 꽤 강렬했다.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여러 가지 고질병들을 한눈으로 볼 수 있게 잘 정리한 것도 이 책의 미덕이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꼭지로 가득찬 1장이 가장 좋았는데, 메시지가 분명해서 더 만족스러웠다. 어떻게 보면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갈고 닦는 고난을 피하지 않고 자기혁명을 끊임없이 시도하라는 그의 '당연한 잔소리'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두께와 내용 대비 만족도는 한 70% 정도라, 평소 같았으면 구입하지 않았겠지만 이왕 사게 된 것 여러 번 되풀이해 읽으며 정신수양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내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왔는가'라는 마케팅용 메시지에 마음이 동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 기대치에 걸맞은 책은 아니었던 듯싶다. 그러나 책 30권을 읽어야 1권 살 생각을 하는 내 구입 기준이 몹시 높다는 전제를 깔면- 이 책은 분명 그냥 스치기엔 아까운 부류에 속한다. 물량 공세와 거대 출판사의 '만들어진 입소문'으로 전파를 타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영양가 부족한 수많은 책들에 비한다면 『생각의 좌표』는 양반이다.


 밀도가 조금 낮아 헐거운 책을 원망하기보다는, '내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을 구하려 드는 것이 독자로서 할 수 있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 모쪼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자신이 가진 생각의 단초를 찾아내길 바란다.